4.24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관련 김영익 씨 재판 방청기:
한 편의 희극이었던 재판
〈노동자 연대〉 구독
2017년 1월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김영익 씨의 결심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2015년 4·24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서 신고 범위를 벗어난 행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김영익 씨(노동자연대 회원)를 일반교통방해죄로 기소했다. 김영익 씨에게는 2백만 원에 이르는 벌금 약식명령이 떨어졌다. 김영익 씨는 이 부당한 결정에 항의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이번이 세 번째 공판이었다. 선고는 2월 9일에 나올 예정이다.
일반교통방해죄는 시위 참가자를 법적으로 탄압하는 손쉬운 핑계 거리다. 특히 집시법으로 탄압하기엔 애매한 단순 참가자들을 마구잡이로 옭아매는 데 자주 동원된다.
김영익 씨의 재판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은 작성자 이름과 날짜조차 기재돼 있지 않아 진위가 의심스러운 문서들, 촬영 날짜도 없고 기소와 연관이 있는지도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불법적으로 채증된 것인지 의심스러운 사진들 투성이었다. 또, 어떤 사진은 검찰이 증거물에 기록한 촬영 일시와 디지털 카메라에 기록된 촬영 일시가 일치하지 않았다.
이번 공판은 희극 자체였다. 검찰은 채증 경찰관을 증인으로 불렀다. 검찰은 스크린에 사진을 한 장 띄워 놓고는 증인이 그 사진을 찍은 게 맞는지를 물었다. 증인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말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사진은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사진과 구도는 비슷했지만 파일명이 다른 사진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사진은 캐논 카메라로 찍은 것이었다. 증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 카메라는 니콘입니다.”
판사가 한참 동안 여러 사진을 뒤져 드디어 니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발견해 냈다. 정확하게는 ‘니콘 D3s’로 찍은 것이었다. 증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 카메라 기종은 ‘니콘 D3’이고, 뒤에 ‘s’가 붙지 않습니다.” 검찰 측 증거의 허술함은 판사도 도저히 ‘커버’해 주기 힘든 지경이었다.
이런 허술하기 짝이 없는 증거들을 가지고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법원은 이재용 구속 영장 기각에 이어 다시 한 번 “돈도 실력”이라는 정유라의 말을 확인시키는 셈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최후 진술에서 김영익 씨는 당당하게 4·24 총파업 집회의 정당성과 집회·시위의 자유를 옹호했다. 정권 퇴진 촛불을 언급하며 노동자들의 노동개악에 맞서 싸운 게 정당했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김영익 씨가 미르 재단을 언급하자, 판사가 “사건과 관련 있는 이야기만 하라”며 끼어들었다. 이재용 구속 영장 기각에 따른 사법부에 대한 광범한 비판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모양이었다.
김영익 씨는 “우병우 같은 검사 출신은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후배 검사들이 그를 제대로 조사했는지 의문”이라며 검찰의 위선을 속 시원히 꼬집었다. 검사는 약이 올랐는지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재판은 누가 이기든 2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무죄가 나오면 검찰은 기계적으로 항소를 할 것이고, 유죄가 나오면 김영익 씨는 굴하지 않고 항소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될 김영익 씨의 싸움에 지지를 보내자! 이 싸움은 노동개악에 맞선 투쟁의 정당성을 다투는 싸움이다. 1심 판결은 2월 9일에 나온다. 다음은 김영익 씨의 최후 진술문이다.
“이재용·우병우는 봐주고, 노동운동 참여자에게 벌금 지우는 게 정의입니까?”
2015년 4·24 총파업은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경제 위기의 부담과 고통을 떠넘기는 것에 맞선 행동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공무원 연금 개악 등을 밀어붙였습니다. 정부는 청년 실업이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며, 그 문제들이 정규직 탓인 양 거짓말을 하며 노동자들을 이간질했습니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은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깎고,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한마디로 전체 노동자에게 피해를 주는 개악이자 공격이었습니다. 4·24 파업과 집회·행진은 노동자 전체를 위한 정당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불법 운운하고 매국 딱지를 붙이며 집회의 내용을 문제 삼았습니다. 정부는 우편향적이고 부당한 정치적 판단 하에서 집회·행진 참가자를 물리적·법적으로 탄압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수만 명이 참가한 이 집회와 행진을 마구잡이로 채증했고, 저처럼 단순 참가자로 보이는 사람도 마구잡이로 소환·수사했습니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증명도 하지 않은 채 불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기소를 남발했습니다. 이것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시도이며 이런 시도를 사법부가 계속 방조해선 안 됩니다.
4·24 총파업으로 본격화된 노동자들의 요구와 행동이 정당했다는 것은 최근 정권 퇴진 촛불을 통해 더 분명해졌습니다. 삼성·SK·롯데 등 재벌들이 정권에게 돈을 건넨 것은 단지 강요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들 각자의 소원을 수리하고 법인세 인하, 노동개혁 등 재계의 요구를 밀어준 것에 대한 답례였다는 정황이 뚜렷합니다. 2015년 10월 27일 재벌들이 미르재단에 입금한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노동개혁 통과를 호소했습니다. K스포츠재단 입금이 끝난 다음해 1월에는 경제활성화법 입법을 촉구하는 재계의 서명 운동에 대통령이 몸소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노총 등 노동자 운동이 반대한 노동개혁은 기업주들의 이윤만을 위한 개악이었고 이 모든 과정 이면에는 재벌 총수, 대통령, 비선까지 얽히고설킨 부패 커넥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검찰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노동개악에 저항하자고 호소한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기소하고 중형을 선고받게 했습니다. 반면 이와 연관된 부패 추문에 대해선 언론이 파헤친 지 한참이 지나서야, 공범들이 증거를 인멸하고 말을 맞출 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야 움직였습니다. 우병우 같은 검사 출신은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후배 검사들이 그를 제대로 조사했는지 의문입니다.
면죄부
재벌들은 면죄부를 받게 생겼습니다. 삼성은 노동개악 추진에 대한 답례 외에도, 경영 승계를 위해 박근혜가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동원해 준 데 대한 감사의 의미로 웃돈을 얹어서 줬습니다. 이재용이 그렇게 해서 넘긴 돈은 4백억 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를 구속하지 않고 풀어 주는 게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법원은 버스비 2천4백 원을 누락한 버스 노동자는 횡령으로 해고해도 된다고 판결하면서 이재용에 대해선 ‘범죄 소명이 부족’하다고, ‘그의 생활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구속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노동자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범죄 소명이 부족하고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기소되고 유죄 판결을 받는 현실, 저처럼 권력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생활 환경’이나 벌이와 상관 없이 수 백만 원의 무거운 벌금을 때리는 현실, 납득할 수 없고 화가 납니다.
4·24 총파업 집회와 행진은 최근 밝혀진 부패 추문을 통해 정당하다는 것이 한 번 더 입증됐습니다. 그리고 사법부는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두르며 ‘묻지마 기소’를 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억누르는 것을 더는 인정해선 안됩니다. 이런 부정의한 일이 계속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