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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대학교 강의 시간 중에도 탄핵 축하의 탄성이 터지다

마음 같아서는 헌재 앞에서 박근혜가 탄핵되는 순간을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전부터 수업이 있어서 아쉽게도 그 순간에 함께 할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수업이 있는 건물로 달려갔다. 지나가는 길에 복사실 아저씨가 휴대폰으로 탄핵 심판 생중계를 보고 계셨다. 내가 인사를 하며 복사실을 지나가자 아저씨는 “탄핵!”이라고 짧은 구호를 외치며 인사해 주셨다.

복사실을 지나 강의실로 향하는데 아는 후배에게 ‘우리 수업은 탄핵 심판 생중계로 보여 준다’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부럽다고 답장을 하고 강의실에 5분 가량 늦게 도착했는데, 강의실 문을 여니 우리 교수님께서도 커다란 스크린에 탄핵 심판 생중계를 크게 틀어주고 계셨다. 자리에 앉고 주변을 둘러보니 학생들은 약간 긴장된 분위기로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평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학생들은 때때로 웅성거렸다. 특히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에 나서는 것은 박근혜의 의무가 아니었다는 둥 성실한 직무 수행은 상대적인 개념이어서 판단할 수 없다는 둥의 이야기가 재판관의 입에서 나올 때는 강의실 여기저기서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마침내 탄핵 인용 평결이 내려지자 강의실에서 박수 소리와 환호성, 휘파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탄핵 인용이야말로 압도적 민심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탄핵 평결이 끝나자 교수님께서는 ‘입이 근질거려서 바로 수업을 할 수가 없다. 쉬었다가 12시에 다시 시작하자’고 말씀하셨다. 쉬는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강의실에 있던 같은 과 친구들 몇몇을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이들은 ‘세월호 평결은 맘에 안 들었다’, ‘이제부터 시작인 거다’하고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다.

비단 이런 반응은 내 친구들만이 아니었다. 강의실 한 구석에서는 ‘세월호로 [파면]됐어야 하는데’라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헌재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로서 박근혜는 마땅히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상식’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수님께서는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한 회상하셨다. 유신 헌법 이후 학교에 갔더니 정치·경제 시간에 배우던 내용이 확 뒤집어져서 당황스러웠다고 하셨다. 그때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역사적 순간이 오늘이라고도 하셨다.

다시 수업이 시작됐지만 탄핵 인용의 순간에 느꼈던 전율은 가시질 않았다. 수업 내내 고향 친구들, 대학 동기들, 가족들로부터 탄핵의 기쁨을 전하는 문자 메시지가 끊임없이 왔다. 오늘이 생일인 한 친구는 ‘오늘은 잔치국수를 먹어야겠다’고 했다.

이러한 열기를 한껏 끌어안고, 친구들과 함께 오늘 저녁과 내일도 광화문으로 나가야겠다.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의 구속은 물론이고 온갖 적폐를 깨끗이 청산하기 위한 움직임이 더 전진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