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협상 개시:
지배자들의 내분을 이용해 급진적 대안을 제시하며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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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이하 브렉시트) 협상이 3월 29일 공식 시작될 예정이다. 유럽연합 회원국의 탈퇴 방법을 담은 리스본조약 50조에 따라 앞으로 최대 2년 동안 영국과 유럽연합은 탈퇴 협상을 벌인다.
유럽연합은 영국이 유럽단일시장에라도 남으려면 유럽 내 ‘이동의 자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보수당 소속의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는 유럽단일시장에서까지 탈퇴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그러면서 영국 내 유럽 출신 이주민 권리를 제약하겠다고 했다. 인종차별적 브렉시트 구상이다.
사실 지난해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 보수당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유럽단일시장에 남고자 하는 영국 대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한편, 이민 규제를 대폭 강화해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인 영국독립당에 빼앗긴 지지층을 탈환하려는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도 반영해야 했기 때문이다.(물론 유럽연합의 ‘이동의 자유’라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고, ‘요새화된 유럽’ 정책에서 보듯이, 특히 난민과 무슬림을 배척한다는 점을 동시에 봐야 한다.)
영국 지배자들 내 의견 충돌은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법원이 제동을 걸고, 내각 안에서도 장관들마다 각자 다른 강조점을 피력하는 것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은 메이가 보수당 내 갈등을 일시 봉합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투표 이후 영국 경제가 여러 예측과는 달리 파국을 맞지는 않은 덕분이다. 2016년 말 영국 경제성장률은 상승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집권한 것도 메이에게는 자신감을 주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유럽단일시장 탈퇴로 영국 기업들이 입을 타격을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통해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을 법하다. 실제로 영국 외무장관 보리스 존슨은 1월 초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의 측근들을 만나고 돌아와서 브렉시트 협상이 원활히 이뤄지면 영국이 미국의 최우선 무역 협상 대상국이 될 것임을 트럼프 측으로부터 확인했다고 전했다. 물론 ‘미국 최우선주의’와 ‘보호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가 메이의 바람대로만 움직일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메이가 위기를 빠져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유럽연합 잔류파의 혼란도 한몫했다. 잔류파의 일부(토니 블레어, 녹색당, 자유민주당, 일부 급진좌파)는 국민투표 결과를 뒤집으려 한다. 비민주적이고 엘리트주의적 발상이다. 또한 무책임한 행태이다. 유럽연합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인종차별적 우익들만이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잔류파의 다른 일부(노동당 우파의 다수)는 국민투표 결과를 영국 노동자들의 인종차별적 성향이 표출된 것으로 잘못 해석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지지를 다시 얻으려면 노동자들의 ‘걱정’을 대변해야 하고, 그러려면 불가피하게 유럽 출신 노동자들의 이동의 자유를 제약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브렉시트 협상이 추진되는 것을 이유로 당내 좌파인 제러미 코빈 대표를 또 밀어내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노동조합 일부 지도자들도 유럽단일시장에 남는 것을 지지한다.
코빈
문제는 제러미 코빈이 이런 압력에 밀려 후퇴한다는 것이다. 1월 초 제러미 코빈은 노동당이 유럽 출신 이민자들의 이동의 자유를 “고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전반적 저임금을 낳는다는 식으로도 말했다. 지난해 6월 코빈은 노동당이 유럽 출신 노동자들의 이동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옹호한다고 주장했는데, 크게 후퇴한 것이다.
물론 코빈은 소득 상한제나 최저임금 10파운드 실시 등 괜찮은 정책들도 주장했다. 그러나 코빈 자신이 이민자 연대 운동에 헌신해 왔고, 그 운동의 성장 덕분에 노동당 대표가 될 수 있었음을 고려하면 그의 후퇴는 매우 아쉬운 일이다. 코빈의 후퇴는, 영국 지배자들의 내분을 이용해 긴축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코빈은 유럽단일시장 잔류를 위해 이동의 자유 문제에서 후퇴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럽단일시장은 전혀 노동자 친화적이지 않다. 유럽단일시장은 유럽사법재판소의 규율을 받는데, 그동안 유럽사법재판소는 국유화에 제동을 걸고 노동자 파업을 금지하는 판결을 해 왔다. 좌파 측으로서도 반대해야 할 기구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불평등과 영국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분노를 반영하는 것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심지어 브렉시트에 반대 투표를 한 영국인들 중에서도 62퍼센트는 “세계가 소수 권력자들에 의해 운영된다”고, 55퍼센트는 “대기업과 엘리트들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가졌다”고 답변했다. 또, 영국인 다수가 민영화된 철도를 재국유화해야 한다고 보고, 80퍼센트 이상이 브렉시트 이후에도 유럽 출신 이민자들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기를 바란다. 이런 정서 때문에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고, 3월 18일 런던에서만 3만 명이 “인종차별에 맞서자”, “난민을 환영한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고 외치며 행진한 것이다.
영국 지배자들이 앞으로의 협상 과정에서 겪을 모순도 봐야 한다. 우선 현재 영국 경제의 회복은 투자나 수출의 상승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가계 대출과 소비 증가에 힘입은 것이다. 즉, 안정적 경제 성장이 아니다. 지난해 국민투표 이후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하며 수입 가격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임금을 옥죄고 소비자들이 돈을 빌리고 쓰는 것을 줄이게 할 수 있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의 압박도 클 것이다. 유럽 곳곳에서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정당들이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유럽연합 탈퇴 도미노를 일으킬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당장 상당한 액수의 ‘이혼 위자료’가 청구될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 협상 개시를 계기로 스코틀랜드 독립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데, 이는 영국의 해체를 부를 수도 있다.
즉, 브렉시트가 영국과 유럽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키우지만, 브렉시트 협상을 둘러싼 지배계급 내 갈등이 계속 일어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들이 사태에 개입해 브렉시트 결과가 노동자에게 유리하고 인종차별적이지 않도록 만들 여지가 있다. 비록 적절한 대안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당 예비내각 재무장관 존 맥도넬이 “민중의 브렉시트”를 주장하거나 영국노총 TUC 사무총장 프랜시스 오그래디가 노동계급 사람들이 “브렉시트로 말미암은 경제적 불확실성의 대가를 치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내용을 채우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몫이다. 물론 영국 좌파와 노동운동이 약해 좌파적 브렉시트 구상이 실제로 현실화할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 좌파와 노동운동의 약점만을 얘기하며 관조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