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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전선의 부상:
파시즘의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기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프랑스 대선에서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이 박빙으로 지지율 1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주류 언론은 마린 르펜을 “극단주의”라 부르며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르펜과 국민전선은 극단적이고 경계해야 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매장돼야 할 세력이다.

그런데 주류 언론은 르펜이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것을 “극단주의”의 주된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지난해 영국인들의 유럽연합 탈퇴 표결에서 보듯 평범한 노동계급의 다수도 유럽연합에 반대한다. 유럽연합이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를 확산하는 구실을 해 왔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브렉시트는 영국 노동계급과 세계 노동계급의 일보 전진이다’) 주류 언론은 이런 유럽연합을 옹호하려고 “극단주의”를 경계하자고 떠드는 것이다.

또한 르펜은 지독하게 인종차별(특히 무슬림 혐오)을 부추긴다. 주류 언론은 이에 대해서도 극단적이라고 논평하지만 똑같이 인종차별적인 다른 주류 우파 후보들에 대해서는 ‘온건하다’고 비판한다.

르펜이 주류 우파 후보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그가 파시즘 운동을 부활시키려 한다는 사실이다. 파시즘 운동은 영국독립당 같은 우익 포퓰리즘과 달리 의회제 대의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르펜이 본질적으로 파시스트라는 점을 지적하는 이유는 파시즘이 노동자계급 조직들을 다 분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마린 르펜은 ‘정장 입은’ 나치다.

파시즘은 다른 우익 정권과 어떻게 다른가?

흔히 파시즘을 권위주의 정권 정도로 느슨하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파시즘이 권위주의 정권 수립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맞지만 통상적인 권위주의 정권보다 훨씬 반민주주의라는 점을 간과한다는 문제가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같은 군부 독재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억압하지만 노동자계급 조직을 몽땅 파괴하는 데서는 파시즘에 미치지 못한다. 박정희-전두환 치하에서도 민주노조들과 이들의 지지를 받은 (김대중의) 민중주의적 야당이 (제약 속에서나마)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파시즘은 이런 단체들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노동조합뿐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유기적 관계를 맺는 정당, 사회단체와 소모임 등이 모두 파괴 대상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파시즘이 대중 운동이고 그 핵심 구성원이 중간계급 소속이기 때문이다. 중간계급은 노동자계급 거주 지역에서 함께 살고 노동자들의 작업장에도 드나드는 등 노동자계급과 밀착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지역과 공장에 앞잡이와 지지자들을 두고서, 가장 사악한 경찰국가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노동자계급 조직들을 공격할 수 있다.

1930년대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로 악명 높지만 독일 자본주의 입장에서 히틀러의 주된 사회적 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했던 독일 노동자계급의 조직들을 완전히 박살내고 노동자들을 원자화해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었다.

이를 두고 당시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파시즘의 역사적 기능은, 자본가들이 민주주의적 기구의 힘을 빌어 통치하고 지배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노동계급을 분쇄하고 노동계급 조직을 파괴하며 정치적 자유를 말살하는 데 있다.” (이하 모든 인용은 트로츠키)

왜 반파시즘 운동에서 노동자계급이 중요한가

주류 평론가들은 파시스트가 성장하는 데 핵심 요인이 빼어난 웅변술이나 대중 심리 조작인 듯이 말한다.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평범한 대중은 멍청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시즘의 성장 비결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파시즘의 성장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에서 비롯한다.

예사로운 시기에 중간계급은 자본가 계급에 경제적·정치적으로 종속돼 있고, 그 구성원들은 서로 잘해야 ‘남남’이고 많은 경우에는 경쟁자다. 그래서 객관적 처지를 볼 때 노동자계급과 달리 정치적으로 단결할 동력이 없어 원자화돼 있다. 그래서 중간계급은 독자적 정치 세력을 이루기 어렵다.

그러나 극심한 위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 계급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틀로는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는 한편, 노동자계급도 혁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얘기가 크게 달라진다.

“사회적 위기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상태에 도달하면, 프티부르주아지[중간계급]를 분노하도록 선동하고 그들의 증오와 절망을 프롤레타리아[노동자계급]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을 직접적 목표로 하는 특별한 정당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1930년대 초 독일이 바로 그랬다. 제1차세계대전 전쟁 보상금 지급으로 경제가 파탄 난 데다 거기에 1929년 경제대공황까지 닥쳤다.

바로 이런 조건에서 히틀러는 노동자계급과 대자본을 모두 비난하며, “프티부르주아지 자신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지도자”가 되고 “인간 먼지들로 전투 분견대를 조직”할 수 있었다.

히틀러의 깡패 조직인 돌격대(Sturmtruppe)는 거리를 휩쓸며 노동조합과 유대인 상점 등을 물리적으로 공격했다. “말만 하는 노동계급 정당들과는 달리 무력을 사용해 더 많은 ‘정의’를 확립할 것”이라며 신선한 대안임을 자처했다. 또한 계급 갈등이 사라지고 국민적 단결이 이뤄지는 이상향을 건설하겠다고 주장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중간계급 다수가 파시즘으로 넘어가는 것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편에서 자본가 계급에 맞서는 투쟁을 지원하거나 적어도 중립을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프롤레타리아가 명확한 행동강령이 있어야 하고,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에 나설 태세가 돼 있어야 한다.”

1930년대 독일에서는 노동자계급이 분열해 궤멸적 패배를 당했다. 사회민주당은 당원이 1백만 명이나 되고 정당방위를 위한 자체 무장 조직도 있었지만 ‘헌법 존중’에 집착해 그 힘을 사용하길 한사코 삼갔고, 공산당은 사회민주당을 파시즘의 일종으로 보는 초좌파적 종파주의 노선을 취하는 바람에 반나치 단결의 기회를 놓쳤다.

혁명가들의 과제

오늘날 프랑스는 파시스트 돌격대의 규모가 히틀러 때보다 비할 데 없이 작다. 의회 등 제도권 진출을 위해 폭력을 지지하지 않는 모양새를 취해야 한다는 제약 때문이다. 그러나 르펜이 당선하고 때가 도래하면 유럽 각지에서 파시스트 세력이 급부상하도록 부추길 것이다. 이는 다시 르펜의 기를 북돋아 주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파시스트 돌격대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당장 파시스트 후보의 당선을 막더라도 앞서 말한 파시즘 성장의 동력(특히 노동자계급의 무기력과 분열)을 없애지 못한다면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이 사회를 바꿀 진정한 대안이 누구에게 있는지 중간계급에게 입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당장 유럽연합 문제를 포함한 지배자들의 긴축에 실질적으로 맞서는 것이 파시스트를 막는 데 중요하다.

또한 파시스트는 차별과 천대를 받는 사회집단들(히틀러 시대엔 유대인·성소수자·장애인, 오늘날엔 무슬림·이주민)을 두려움에 질리게 만드는 가두 행진으로 중간계급의 착각과 환상을 자극한다. 노동자 운동과 좌파는 거리에서 이들을 패퇴시키고 무슬림·이주민 등을 방어하는 활동도 조직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파시즘이 다른 우익 세력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 수 있음을 이해하고, 파시즘에 맞선 공동 투쟁을 위해 혁명가들과 개혁주의자들이 단결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공동전선은 전반적인 정치 강령이 아니라 몇 가지 요구 중심으로, 행동 건설을 주목표로 건설돼야 한다.

저항의 잠재력은 있다. 지난해에 일어난 노동개악 반대 파업은 비록 노조 상층 간부들이 정면대결을 회피해 결국 패배했지만, 지배자들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음을 보였다. 2013년에는 인종차별적 강제추방 정책에 맞서 청소년 수천 명이 행진을 벌인 바 있고, 올해 3월 19일에는 ‘인종차별 반대 국제공동행동’의 일환으로 1만 명이 파리 도심에 집결했다.

파시즘의 전진을 막을 열쇠는 바로 이런 노동자·청년·학생의 의지를 수렴하는 것에 혁명가들이 개입하고 노동자계급의 힘을 실제로 발휘하는 데 있다.

파시즘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레온 트로츠키 지음, 최일붕 옮김, 3,000원, 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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