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징병제 부활:
복지국가도 제국주의적 갈등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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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복지국가이자 중립국으로서 평화국가로 알려져 있는 스웨덴이 2010년에 폐지한 징병제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남성과 여성이 모두 징병 대상자인데, 스웨덴 정부는 어처구니없게도 이를 양성평등적 조처라고 광고한다. “이번 징병제는 남녀 평등하게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성도 강제로 군복무시키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평등’일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양성 모두 피해를 입는 퇴보이다. 징병제 부활 발표를 한 국방부 대변인이 여성이라는 사실도 시사적이다.
스웨덴이 여성까지 징병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옆 나라 노르웨이를 따른 것인데, 노르웨이는 2016년 7월부터 여성을 징병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네덜란드도 2018년부터 여성을 징병 대상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스웨덴은 발트 해에 있는 코틀란드 섬에 군 병력을 영구 주둔시키겠다고도 한다. 2016년 6월에는 미국과 방위협정을 체결하고, 7월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만찬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8월에는 미국의 B-2, B-52 전략폭격기가 동원돼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발트 해 상공에서 벌인 나토의 연합훈련에 참가했다. 그동안 미국 중심의 나토와 옛 소련 중심의 바르샤바조약기구모두에 참가하지 않았던 ‘중립국’ 스웨덴으로서는 큰 변화라 할 만하다.
인접국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모두에 참가하지 않은 핀란드는 2016년 국방비를 3년 만에 증액해 28억 8천6백30만 유로로 역대 최고치로 늘렸다. 2016년 10월 미국과 방위협정을 체결하고 최근에는 병력 규모를 20퍼센트 늘리기로 결정했다. 핀란드 정부는 계속 부인하지만 조만간 나토에 가입할 것이라는 얘기도 돈다.
나토 회원국인 노르웨이는 2020년까지 러시아의 미사일과 북부함대의 활동을 감시할 미국의 레이더 기지를 자국 내에 설치하도록 허용하고, 스텔스 기능을 갖춘 전투기 F-35 48대를 구입하기로 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위협을 근거로 든다. 2015년 4월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의 국방장관들은 공동 성명을 내어 “러시아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방위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는 2014년에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해 크림 반도를 병합하고, 2016년에는 북해 한가운데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맞닿아 있는 칼리닌그라드에 핵탄두 탑재 가능 미사일을 배치했다. 최근에는 러시아 전투기가 핀란드 영공을 침범하고 러시아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노르웨이 영해에서 포착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이런 행보는 옛 소련의 세력권을 수복하려는 푸틴의 야망과 미국·나토 등 서방의 움직임이 결합돼 일어난 것이다.
미국과 나토는 2016년 5월 루마니아에서 미사일방어체계(MD)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2018년이 되면 폴란드에 MD 기지가 추가 완공되고 독일에 지휘통제센터가 들어서 나토의 유럽 MD 체계가 완성된다. 미국과 나토는 이란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러시아는 자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나토의 동진(東進)이 있다. 1990년대 초 옛 소련의 붕괴 이후 나토는 동유럽 국가들을 흡수하며 동쪽으로 진출했다. 2014년에는 러시아 턱밑에 있는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할 듯했다.
소련 붕괴의 여파와 경제 위기 등으로 러시아는 2000년대 초까지 속수무책이었지만, 2000년대 중반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발목을 잡히고 경제 위기로 타격을 입은 2008년 러시아는 그루지야(현재 조지아)를 침공했다. 러시아를 압박해 들어오는 미국의 의지가 관철되지만은 아닐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해 이 점을 다시 확인시켰다.
요컨대 북유럽 국가들의 군사력 증강 움직임은 제국주의적 갈등의 점증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유럽에서 군사력 증강 움직임이 일어나는 위험한 상황인데도, 한국 국방부는 올해 3월 핀란드에 K-9자주포 1천9백15억 원어치를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희희낙락했다. 메슥메슥한 일이다.
한편, 양성평등이라는 가면을 씌워 징병제를 부활시킨 스웨덴의 현 정부가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노동당-녹색당 연립정부라는 사실도 눈여겨봐야 한다.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은 장기 호황기에는 스웨덴을 수준 높은 복지국가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해 스스로 복지국가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국가를 인수해 사회를 개혁한다는 개혁주의 전략이 현실에서는 노동계급에게서 개혁을 회수해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나치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은 이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이용해 성장하고 있다. 스웨덴민주당의 득표율은 2010년 5.7퍼센트에서 2014년 12.9퍼센트로 껑충 뛰었다.
사회민주노동당 정부가 징병제를 부활시키고 미국과 방위협정을 맺는 것은, 개혁주의가 자본주의 국가를 지키려 하다가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음도 보여 준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이 보여 주듯,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낳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맞설 수 있는 관점과 운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