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프라이데이’(일찍 퇴근하는 금요일)?:
노동조건 개악 숨기는 생색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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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3월 ‘2017년 공무원 근무혁신 지침’을 발표했다. 유연 근무를 활성화하고, 초과 근무를 줄이며, 연가(1년마다 제공되는 유급 휴가)를 활성화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실현하겠다는 내용이다.
그 일환으로 4월부터 한 달에 한 번 금요일 오후 4시에 조기 퇴근하는 한국판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기획재정부 등 7개 중앙 부처부터 시행하고, 다음 달에는 전 부처로 확대할 예정이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다.
정부는 개인별 근무시간을 자율로 설계하여 유연근무를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예를 들어 월·화·수요일은 8시부터 21시까지 11시간, 목요일은 7시간을 일하고 금요일은 쉬는 식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30분씩 더 일하고, 금요일에 2시간 먼저 퇴근하라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없이 근무 시간만 조정하는 조삼모사 정책이다.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중에서 17퍼센트가 유연근무제를 이용하고 있다고 정부가 떠들어대지만(2016년 6월 말 기준), 그중 73퍼센트가 하루 8시간 근무하되 출퇴근시간만 살짝 조정하는 시차출퇴근제를 이용한다. 그조차도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다. 업무가 많아 정시 퇴근이 어려운데 퇴근 시간만을 5시로 정해놓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밀려드는 민원과 업무 때문에 대다수 공무원에게 ‘자율적’으로 근무시간을 선택하는 것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게다가 유연 근무는 임금 삭감의 효과가 있다. 유연 근무가 아닐 때는 저녁 9시까지 일했을 때 초과 근무 수당을 받을 수 있지만, 유연 근무를 하게 되면 야간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이 줄어들게 된다.
한국 공무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5년 2천2백시간 이상이었다. 서울시 공무원의 경우는 2014년 연간 노동시간이 무려 2천6백8시간이었다. 2015년~2016년에는 서울시 공무원 3명이 과중한 업무로 자살하기 까지 했다. 2010년 이래 전국의 법원 하위직 공무원들은 해마다 10여 명씩 ‘업무상 재해’로 사망하고 있다. 2015년에는 무려 13명이 사망했다.
한편 정부는 “초과 근무에 대한 계획적인 관리를 통해 관행적·습관적 초과 근무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중 한 방법이 ‘집중근무시간 운영’이다. 하루 중 업무 효율이 가장 높은 시간대를 정해 그 시간대에는 업무에만 몰입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전 10~12시와 오후 14~16시를 ‘집중근무시간’으로 정하고 그 시간 내에는 “전화, 인터넷, 티타임, 흡연 등 사적인 용무와 휴식을 금지”한다.
‘초과 근무 총량관리제’도 도입된다. 이에 따르면 개인별로 동등하게 정해져 있는 초과 근무 시간이 부서별 총량으로 바뀐다. 개별 초과 근무를 부서장이 관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 통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노동 강도를 더 높이려는 시도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상사의 눈치를 보며 하루 종일 일만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초과 근무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끊임없는 민원, AI·구제역 방역, 선거, 봄·가을 축제와 행사 등 일은 넘쳐나는데 인력은 부족하기 떄문에 어쩔 수 없이 초과 근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노동자들이 초과 근무 수당을 받는 게 죄인 양 몰아간다. 언론에서 심심하면 나오는 ‘공무원들의 초과근무 부당 수령’ 얘기도 장시간 노동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는 것이다.
낮은 임금도 초과근무의 한 요인이다.
민간임금(상용 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체의 사무관리직 보수)을 100으로 봤을 때 공무원 보수의 민간임금 접근율은 2004년 95.9%로 정점을 찍은 뒤 2009년 89.2%, 2012년 83.7%, 2015년 83.4%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15년 17개 광역시도 공무원 노동자의 월평균 1인당 초과 근무 시간은 38.4시간이고 초과 근무 수당은 41만 원 정도인데, 이것은 임금에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공무원 근무혁신 지침’은 성과퇴출제와도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초과 근무 감축 실적을 부서장 등의 평가에 반영하고 초과 근무 감축에 따른 절감 예산을 ‘업무효율화 성과급’ 등으로 지급하려는 것이 대표적 예다.
‘공무원 근무 혁신 지침’에서 강조하는 “일과 가정의 양립”도 입 발린 말일 뿐이다. 2011년~2015년 서울시 퇴직자 현황을 보면, 남성은 50대가 많은 반면 여성은 30대가 전체 여성 퇴직자의 절반 가까이였다. 출산과 육아가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한국은 OECD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국가지만 공무원 수는 전체 경제활동인구 대비 5.7%에 불과하다(OECD 회원국 평균 15%). 정부가 정말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추구한다면 왜 노동 시간을 줄이고 초과 근무 없이도 살 만한 임금 수준을 보장하지 않는가?
“일은 많이 하는데 생산성은 낮은 비효율적 문화에서 탈출”하겠다는 김동극 인사혁신처장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노동 통제와 노동 강도를 강화하고 임금을 삭감하려는 것이 정부의 진짜 의도다.
정부는 ‘철밥통’으로 공격받는 공무원 사회에 유연근무제 등을 도입해 전체 공공부문을 비롯한 민간부문의 노동유연화로 점차 나아가려 한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공공부문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그것이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청년 실업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