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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과 영국 총선:
왜 영국 노동계급의 다수는 브렉시트를 선택했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이하 브렉시트) 협상이 시작됐다. 이제 최대 2년 안에 영국은 어떤 식으로든 유럽연합을 탈퇴하게 된다.

6월 초 조기 총선이 실시돼 영국의 새 정부가 본격적으로 협상하게 될 테지만, 현재 상황을 보더라도 그 과정이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4월 27일 이렇게 말했다.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나면 지금 같은 권리를 유지할 수 없다. … 영국 일부 국민은 여전히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시간 낭비다.” 영국이 유리한 조건으로 탈퇴해 선례가 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영국 총리 테레사 메이는 유럽단일시장에서까지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최근에는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는 영국 지배계급 내 이견을 반영하는 것이다. 영국 자본가들은 큰 변화를 원치 않는 데다, 집권당인 보수당 내에서조차 의견이 통일돼 있지 않다.

게다가 브렉시트 협상 개시를 계기로 스코틀랜드 독립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데, 이는 영국의 해체를 부를 수도 있다.

이처럼 브렉시트는,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열강이 공들여 세운 국제 질서의 핵심 기구 하나인 유럽연합에서 경제력 2위(세계 5위), 군사력 1위의 영국이 이탈하는 “세계사적 전환”이다.(알렉스 캘리니코스, ‘브렉시트: 세계사적 전환’, 〈노동자 연대〉 179호)

브렉시트는 유럽연합과 기득권층에 대한 항의 표시

국민투표

이런 점에서 2016년 6월 실시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탈퇴 투표는 권력층에 의해 삶이 파탄 나고 있다고 느낀 영국 노동계급 다수의 항의 투표였다. 숙련 노동자, 반숙련 노동자, 비숙련 노동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탈퇴에 투표했다.

2007~15년 영국은 OECD 회원국 중 그리스에 이어 둘째로 실질임금이 많이 떨어진 나라다. 반면, 영국 최상위 부자 1천 명의 재산은 갑절 이상으로 늘어 5천7백60억 파운드(1인당 평균 8천억 원)가 됐다(영국노총).

이는 역대 영국 정부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고, 특히 2007~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에는 긴축재정을 시행한 결과다. 구제금융을 미끼로 그리스에 고강도 긴축을 강요한 것에서 보듯이, 유럽연합은 유럽 각국에 노동자 쥐어짜기 정책을 강요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전 발표된 유럽연합 호감도 여론조사 결과에서 유럽연합 반대 정서를 확인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2004년 54퍼센트에서 44퍼센트로, 프랑스에서는 2004년 69퍼센트에서 38퍼센트로, 스페인에서는 2007년 80퍼센트에서 47퍼센트로, 이탈리아에서는 2007년 78퍼센트에서 58퍼센트로 급락했다. 경제 위기와 혹독한 긴축으로 고통받고 있는 그리스에서 유럽연합 호감도는 27퍼센트밖에 안 됐다.”(차승일, ‘유럽연합 호감도가 급락하다’, 〈노동자 연대〉 178호)

유럽연합이 태생부터 유럽 자본의 이익을 위한 기구라는 점, 그런 만큼 비민주적으로 운영된다는 점, 각국에 긴축을 강요하는 점,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저지르는 만행을 나토와 함께 돕는 핵심적 제국주의 기구라는 점, 해마다 수많은 난민이 지중해에서 수장되는 데도 오히려 해상 순찰을 강화하는 등 인종차별적이라는 점을 보면 당연한 결과다.

착각

그런데 주류 언론은 유럽연합의 이런 실체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 채로 지배자들이 벌일 협상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이런 분석을 따라가면 보통 사람들은 향후 사태 전개에 개입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식의 접근은 국민투표 양 진영을 주도한 정당들과 그들의 의도로 시야를 좁힌다.

친기업 언론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진보계 언론으로 분류되는 〈한겨레〉가 전하는 메시지가 지독히 엘리트주의적이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 메시지를] 요약하면,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저학력자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알지도 못한 채 유럽 통합의 꿈을 망쳐놨다’는 것이었다. 1년 넘게 진행된 논쟁 속에 투표에 참가한 영국 노동계급 다수의 선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장이다.]”(김종환, ‘브렉시트에 대한 다른 관측들이 놓치고 있는 점들’, 〈노동자 연대〉 177호)

"내 동료들을 건드리지 마라" 병원 노동자들의 이주노동자 방어 행동

좌파들은 대부분 국민투표 결과에서 영국 노동계급의 항의 의사를 읽었다는 점에서는 〈한겨레〉보다 나았다. 그러나 유럽연합을 모종의 진보적 국제기구라고 착각해서, 또는 진보적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품어서, 국민투표 결과를 ‘구 시대적 민족주의’나 ‘신고립주의’로 봤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하고 외쳤을 때 그는 노동계급의 국제주의를 말한 것이지, 지배자들의 ‘국제주의’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본가 계급은 국민국가 별로 분리돼 있어서 진정으로 국제주의적일 수 없다. 즉, ‘어느 계급의 국제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국민투표 결과를 노동자들이 인종차별적 우익 포퓰리즘에 포획된 결과로 보는 견해도 흔했다. 물론 국민투표 기간 영국독립당 등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두드러졌고, 이는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먼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해야 한다.

영국독립당 등은 지난 수년 동안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이 긴축에 대한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영국의 전쟁 참여를 정당화하려고 이민자를 공격하고 속죄양 삼아 온 것에서 힘을 얻었다. 잔류 찬성 진영의 많은 인사들이 그런 일을 벌였다. 예를 들어 2013년 당시 내무장관이던 테레사 메이는 이주민들을 겨냥해 다음의 문구를 넣은 ‘공익’광고 차량을 운행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체포될 줄 아시오.”

유럽연합도 마찬가지다. 최근 유럽연합의 산하 기구인 유럽사법재판소는 직장 내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조처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바로 이 과정에서 인종차별과 우익 포퓰리즘이 온갖 형태로 기승을 부릴 조건들이 조성됐다. 유럽연합은 인종차별과 우익 포퓰리즘들의 해결책이기는커녕 원인 제공자인 것이다.

좌파의 과제

그러므로 국민투표 기간에 노동운동 지도자와 좌파들이, 이주민‍·‍난민을 탓하며 긴축을 자행해 온 보수당 지도자들과 함께 잔류 찬성 진영에 서서 ‘영국은 유럽연합 안에서 더 강력하다’는 메시지를 퍼뜨리고 다닌 것은 옳지 않았다. 유럽연합에 대한 정당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을 영국독립당 같은 우익에게 떠미는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영국 노동자들이 인종차별적 우익 포퓰리스트들에게 포섭됐다고 여기면, 난민 연대 운동과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어떻게 계속되고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게 여기면 또한 이런 운동에 노동계급을 동참시킬 의욕을 잃는다. 그러면 그 운동들 자체도 약해지고, 인종차별적 우익이 더 기운을 얻을 것이다.

이렇듯 유럽연합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장차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예정돼 있지 않다. 그러나 브렉시트 협상 본격화로 유럽연합의 ‘권위’가 이제 더 많은 나라에서 도전받을 것임은 분명하다.

현실을 바꾸려는 좌파의 개입은 중요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긴축에 저항하는 유럽 곳곳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진보적’ 유럽주의 대신에 계급투쟁과 국제주의를 설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