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붉게 타오른 1917: 만화로 보는 러시아 혁명》:
쉽고 재미있는 러시아 혁명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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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917년 러시아 혁명 1백 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출간된 《붉게 타오른 1917: 만화로 보는 러시아 혁명》은 평범한 여성 노동자 나탈리야와 병사 표트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1917년 러시아에서 벌어진 일을 묘사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러시아 혁명에 관한 탁월한 입문서다. 평범하던 삶들이 뒤흔들리고 바뀌는 얘기가 러시아 혁명을 쉽고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번역도 평범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감칠맛 나게 옮겨서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익히 알려진 러시아 혁명가들도 등장한다. 트로츠키가 때 이른 봉기에 반대하며 노동자와 병사를 설득하거나, 레닌이 혁명 와중에 《국가와 혁명》을 저술하는 장면 등이 나온다(레닌은 10월 혁명 직전에 체포를 피하려고 가발을 쓰고 위장하려다 실패하는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볼셰비키로 결집한 혁명가들이 혁명의 승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평범한 노동자와 병사다. 노동계급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통제하게 됐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10월 혁명으로 나아가게 됐는지를 평범한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매우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러시아 혁명을 다루는 어느 책보다도 혁명의 진실을 잘 담아낸다.
이 책은 1917년 2월 세계 여성의 날, 러시아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제1차세계대전에 반대하는 파업을 호소하고 다른 노동자들도 이에 동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음 날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군대가 동원되는데, 병사들은 발포 명령을 거부하고 오히려 시위대 편으로 넘어간다. 러시아 황제 차르를 물러나게 만든 2월 혁명이 온전히 노동자와 병사의 행동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2월 혁명이 성공한 이후 노동자들은 더욱 급진화한다. 공장 경영진이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을 해고하려 하자, 오히려 노동자들이 경영진을 내쫓고 공장을 접수해 직접 운영하는 장면이 생생히 묘사된다.
또 이 책은 러시아 혁명을 국제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당시 전쟁을 벌이던 러시아와 독일의 지배자들은 이윤과 영토 확장을 위해 노동계급에게 끔찍한 희생을 강요했다.
이 책에는 소위 ‘적국’의 병사들이 마침내 진정한 적은 자신들을 사지로 내몬 악랄한 자본가임을 깨닫고 연대하는 감동적인 모습이 나온다. 당시 유럽의 지배자들이 혁명이 자국으로 번질까 봐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도 잘 보여 준다.
10월, 드디어 노동자들이 임시정부를 끝장내고 권력을 잡는다. 러시아 혁명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간 제1차세계대전을 마침내 끝냈다. 온갖 차별적 조처를 폐기했고, 평범한 사람들은 평등과 자유를 누렸다.
노동계급은 독자적 대의기관인 소비에트를 만들어 사회 전반을 운영하려 했다. 노동계급이 직접 운영하는 러시아는 놀라울 만큼 많은 것을 개선한다.
인상적인 장면 하나는 한 여성이 공장에서 혁명과 사회주의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하는 모습이다. 이혼의 자유, 피임과 낙태의 합법화, 공동 탁아소 운영 등을 성취할 것이라고 발표하는데, 실제 10월 혁명 이후에 이런 조처가 성취됐을 뿐 아니라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 고용 평등과 동일임금이 법으로 보장됐다.
혁명 이후 러시아 여성의 권리는 당시 서방 자본주의 나라보다 더 신장됐다. 낙태 합법화는 세계 최초였다. 공공식당, 공공세탁소 등 덕분에 여성은 가사와 육아에서 해방됐다. 혁명 이후 곧바로 동성애를 비범죄화하고 동성 결혼을 인정했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매우 급진적 조처다.
러시아 혁명의 성공은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스스로 투쟁에 나섰다. 이 책은 전 세계 곳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러시아 혁명을 보며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 얇은 책으로 러시아 혁명을 완전하고 상세하게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주류 역사계가 외면하거나 왜곡해 온 러시아 혁명의 진실을 훌륭히 묘사하고 핵심을 담아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주인공은 평범한 노동자였다.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가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줬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이다. 이 책 머리말에서 강조하듯이 “노동계급은 자력으로 해방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