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416특조위원 이호중 교수 강연:
세월호 참사, 무엇을 어떻게 밝힐 것인가?
〈노동자 연대〉 구독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전 조사위원 이호중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가 최근 ‘분노의 촛불 세대를 위한 토론광장’(4월 29~30일)에서 ‘세월호 참사, 거짓말과 진실’을 주제로 연설한 것이다
반갑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 많이 와주셨네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3년이 지났어요. 3년 동안 줄기차게 진실 규명을 외치고, 박근혜까지 구속시켰는데, 아직도 속시원하게 밝혀진 내용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6월 30일에 1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사실상 끝났죠. 정부는 특조위 시작 시점을 2015년 1월 1일로 계산했어요. 그래서 특별법상 1년 6개월의 활동 기간이 지난해 6월 30일에 끝났다는 거죠. 7월 이후에는 예산도 제대로 배정되지 않았고, 직원들의 신분도 보장되지 않아서 사실상 조사를 진행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공식적으로 정부 기준에 따라 특조위 활동이 종료된 것은 종합 보고서 작성 기간까지 포함해서 9월 30일이었어요. 사실상 10월 1일부터는 청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지난해 박주민 의원 등이 2기 특조위 법안(‘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그 법안이 현재 환노위에 계류돼 있습니다. 원래 세월호 상임위는 농해수위인데, 농해수위는 당시에 여당과 야당이 반반 정도 되는 상황이어서 신속 처리 안건 지정(상임위 내 5분의 3 동의)을 할 수 없는 상임위였어요. 그나마 환노위가 상임위 중에서 야당의 힘 만으로 신속처리 안건 지정이 가능한 상임위였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합치는 전술적 판단을 한 거죠. 이제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더라도 국회법상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안건이 상정되고 표결을 하게 됩니다. 이 기간을 꽉 채운다면 [법 제정까지] 11개월 정도 걸립니다.
그러던 차에 인양 속도가 좀 빨라졌죠. 원래 인양 공법은 플로팅독을 선체 밑에 받쳐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는데 굉장히 지지부진한 상태였죠. 박근혜가 인양을 시작하겠다고 말한 게2015년 4월 15일이었는데, 인양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그 해] 하반기부터였어요. 금방 올라올 것처럼 얘기했지만 계속 지연됐죠. ‘도대체 언제 올라올지 모르겠다’ 하고 의심하던 차에, 지난해 11월에 인양 업체인 상하이샐비지가 인양 공법을 바꿨습니다. 지금 들어올린 방식으로요. 그 뒤 불과 3개월 만에 들어올렸습니다.
인양 초기에도 그 공법이 논의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배제됐는지 앞으로 밝혀져야 될 대목입니다.
[특조위가 종료돼서] 선체를 조사할 기구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일단 ‘선체 조사를 먼저 진행하자’고 해서 선체 조사에 관한 특별법을 지난 3월에 제정했습니다.
선체조사위원회 기간이 10개월입니다.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간이 언제 시작됐는지를 두고 계속 싸웠잖아요. 그 경험이 있으니까 선체 조사 특별법을 제정할 때에는 ‘위원회에서 조사 개시를 결정한 날부터 시작한다’는 규정을 뒀습니다. 그런데 선체조사위원회는 조사 개시 결정을 하지 않았어요. 아마 직원 채용을 하고 예산이 나오고 난 뒤에 정식으로 회의를 하면서 결정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10개월이라는 활동 기간이 내년 상반기까지 갈 것 같아요.
2기 특조위 법안은 빠르면 올해 12월 정도에 제정될 수 있어요. 그러면 [두 위원회 활동이] 겹치는 문제가 생겨요. ‘위원회가 두 개가 동시에 가는 게 맞냐’, ‘이걸 어떻게 정리할 거냐’ 하는 문제도 조금 묘하게 남아 있습니다.
2기 특조위가 얼마나 실효성 있게 조사를 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 지켜보고 압박도 해야 할 문제 아닌가 합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1기 특조위 때는 사실상 정부가 협조를 하지 않을 거라는 게 분명했던 상황이었죠. 정권이 바뀌면 정부에서 협조를 잘 할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안 그래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과거 청산 작업이 많이 진행이 됐죠. 그 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청와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서 그 기관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의문사나 군사 정권 시절에 가해졌던 여러 가지 폭력 사건들[에 대한] 조사 대상 기관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기관들이잖아요? 국정원, 경찰, 검찰, 군대. 정권이 바뀐다고 이 기관들이 말 잘 듣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면 완강하게 저항합니다. 당시에 실제로 그랬어요. 국정원이나 군 기무사에 대해서 조사하는 게 당시에 쉽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부도 사실 제대로 우리의 열망만큼 하지 못했죠. 오히려 거꾸로 갔죠. 그러면서 과거 청산 운동이 힘을 잃어가면서 더 어려워지게 됐고요.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명박 정부까지 계속됐지만 거의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한 채 마감을 했습니다.
2기 특조위는 조사 기간을 조사 개시 결정을 한 때로부터 3년으로 잡고 있습니다. 굉장히 긴 기간입니다. 법이 제정되면 직원 채용, 예산 배정 등에 몇 개월이 걸려요. 짧으면 3~4개월, 길면 6개월가량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실상 차기 정부 말까지 가는 거죠. 경찰, 검찰, 국정원, 해군, 청와대 등 다 조사해야 되잖아요. 정권이 바뀐다고 ‘잘 하겠지’가 절대 아닙니다. 계속 관심 가지고 압박할 수 있는 자세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왜 ‘참사’인가?
‘참사’라는 표현은 사실 많은 생명이 희생됐다고 해서 다 참사라고 부르는 건 아니잖아요. 사회의 병폐가 깃들어 있다는 인식이 담겨 있는 단어가 바로 ‘참사’일 겁니다.
해경이 구조를 못 했죠. [해경은] 바깥에 있는 승객들만 구했다고 합니다. 당시 해경 123정장이 업무상 과실치사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는데, 법원은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123정이 방송을 한다든지, 아니면 직접 세월호에 해경이 직접 진입을 해서 승객들을 유도한다든지 이런 방식으로 승객들을 퇴선을 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했다면 전원을 구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니까 과실이 인정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럴 능력이 있었을까? 해경은 그런 훈련을 받지 않아요. 2011년에 수난구호법이 개정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구조 업무의 민영화예요. 당시에 국회의원이 해경 차장 임창수에게 질문을 해요. “그렇게 [법 개정]하면 긴급한 해양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생명을 구할 수 있겠냐? 국가가 그런 장비나 인력을 보유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자 해경 차장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해양 사고는 연간 계속 발생하는 게 아니다”,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민간과의 네트워킹을 잘 만들어 놓으면 예산도 절감된다.” 국가는 최소한의 초기 개입 인원만 남겨 놓고 나머지 구조 업무는 전부 민간에 이양하겠다는 거예요. 이런 식의 정책은 그 전부터 써 왔지만 법으로 못 박아버린 게 당시의 수난구호법 개정이었어요.
이렇게 개정되고 나니까 해경은 선박 사고에 대응해서 승객들을 구조하는 훈련을 받을 이유가 없는 거예요. 마치 육상에서 119가 출동하듯이 초기에 출동할 수 있는 소수의 인력만 있으면 되는 거고 나머지는 그냥 민간에다 맡겨버리면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해경은 선박 사고에 대응한 장비나 인력을 보유하지 않습니다. 예산 절감하겠다는 게 법 개정의 이유였잖아요. 특조위에 있으면서 해경의 3, 4년치 훈련 기록들을 보니까, 바다에 빠진 사람 건져 올리는 훈련만 해요. 제가 123정장을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만, 123정장이 그 상황에서 판단을 아마 못 했을 거예요.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훈련을 해본 적도 없어서죠. 그러니까 이게 단순히 123정장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구조 업무 시스템이 민영화됨으로써 발생하는 가장 극단적인 경우를 보여 주는 게 바로 세월호 참사라는 걸 봐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안전 점검 업무가 기업의 손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사실 세월호가 그날만 과적한 건 아니었어요. 세월호가 출항을 [시작]한 게 2013년 3월이었죠. 1년 1개월 정도가 지나서 참사가 발생한 건데, 그 1년 동안 과적을 안 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이건 검찰의 공소장에도 나와요.
과적의 위험성에 대해 이미 선원들이 많이 문제제기를 했다고 합니다. 특히 [세월호와] 쌍둥이 배로 알려져 있는 오하마나 호의 선장은 완강하게 저항을 많이 했었다고 해요. 자기는 [과적하면] 출항 안 한다는 식으로까지 버텼다고 합니다. 실제로 세월호가 떠나기 전에 먼저 떠난 오하마나 호에 과적을 많이 못 했대요. 그래서 이날 유독 [세월호에] 더 많이 과적을 했다고 당시 화물 기사들이 증언했습니다. 물론 인양된 선체 안에 남아 있는 화물들을 분석해서 정확한 적재량을 확인해봐야겠지만, 그런 증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과적을 일삼을 수 있었을까요?
안전 점검을 한국해운조합의 운항관리자라고 하는 사람이 합니다. 운항관리자는 권한이 굉장히 세요. 안전에 문제가 있다면 출항을 금지시킬 수 있는 권한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법적인 권한일 뿐이고요. 실제로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느냐? 절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해운조합은 선주 회사들이 돈 내서 만든 이익단체거든요. 청해진해운도 회원이고요. [선사가 번] 돈으로 운항관리자 월급을 준단 말이에요. 그러니 선주 말을 거부할 수가 없잖아요. 이런 구조에서 안전 점검이 이뤄졌던 거예요. 그러니 과적을 해도 제재 받을 일이 없었던 겁니다. 안전 점검을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신자유주의 민영화 정책으로 추진됐던 내용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이 안전 점검 업무는 해운조합에서 빠졌습니다. 그래서 선박 안전기술공단이라고 하는 공공 단체[가 맡게 됐]죠. 좀 더 공익성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기존의 운항관리자들을 다시 채용하는 형태로 갔습니다. 사실상 큰 의미가 없는 상태죠.
선령 제한을 늘린 것, 선박 안전 점검에 관한 규제를 대폭적으로 완화한 것 등이 큰 틀에서 보면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인 배경입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이후에 크고 작은 해양 사고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납니다.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늘리고 나니까 한국의 연안 여객선 중 노후 선박의 비율이 50퍼센트를 넘습니다.
난항을 겪은 진상 규명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얘기를 했었죠. ‘진상 규명 철저히 하겠다,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언제든지 찾아와라.’ 그런데 찾아가려고만 하면 다 막았죠. 현장에서 책임자가 나오지도 않고요. 어떻게 구조 작업을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아요. 계속 거짓말 하고요. 그래서 [유가족들이] 대통령한테 직접 얘기하겠다고 했죠.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농성을 했습니다. 그 장소를 경찰 차벽으로 꽁꽁 둘러싸서 외부에서 보이지도 않게 하고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진상 규명을 방해했습니다. 2014년 6월에 국회에서 국정 조사를 했습니다. 청와대에 1백85건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어요. 그런데 [청와대는] 별 내용 없는 세 건만 제출했습니다. 김기춘 증인 채택은 거부하고, 특별법은 ‘사법 체계를 교란한다’ 등의 이유로 수사권을 줄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텼던 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였습니다.
특별법상으로는 [특조위가 증인에게] 출석을 요구해서 진술을 들을 수 있고,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고 실지 조사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어요. 출석을 안 하면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고 청문회를 할 수 있는 권한들이 있습니다. 청문회만 빼면 나머지 권한들은 다 과거에 진실화해위원회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주어졌던 권한들입니다.
실제로 동행명령장을 몇 건 발부했죠. MBC 사장 등에게요. 그런데 동행명령장이 강제로 데려올 수 있는 게 아녜요. 체포는 영장이 있어야 되죠. [하지만] 조사위원회는 수사권이 없었기 때문에 체포 권한을 가질 수 없었던 거죠. 동행명령장은 거부해도 강제로 데려올 방법이 없어요. 물론 1천 만원 이하의 과태료는 처분은 받을 수 있어요. MBC 사장 같은 사람들이 이게 무서워서 출석하겠습니까?
자료 제출 요청도 특조위가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정말 안 줍니다. 일단 공문을 보내잖아요? 답이 없어요. 재촉을 하면 그때서야 몇 개 주는데 정말 영양가 없는 것들입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엄청나게 끌어요. 실제 필요한 자료들은 제출도 안 한 거예요. 압수수색 권한이 없다 보니까 방법이 없는 거예요.
이것을 조금 보완할 수 있는 게 실지 조사의 권한이었어요. 실지 조사는 현장에 가서 조사할 수 있는 건데, 저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 실지 조사 권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입니다. 예를 들면, 해경이 자료를 안 주면 해경에 가서, ‘우리 실지 조사 하러 왔다’ 해요. 안 보여 주면 그 안에서 농성 하는 거예요. 실지 조사 하러 가면 장소를 제공해야 되거든요. 그러면 그 안에서 ‘이 자료 내놓을 때까지 나 안 가’ 라고 해버리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실지 조사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서 압박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런 권한을 활용하지 않았어요. 아쉬운 부분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방해 공작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 많이 나왔기 때문에 여러분들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가장 대표적인 게 새누리당 김재원이 2015년 1월 중순 즈음에 ‘세금 도둑’이라는 발언을 하죠. 특조위가 예산안도 안 만들었는데 ‘세금 도둑’이래요. 그런 식으로 여론 공작을 시작했어요.
2015년 11월 20일에는 해수부의 문건이 폭로됐습니다. 당시 청와대에 대한 조사 안건을 의결하려고 할 때였어요. 그때 ‘청와대에 대한 조사 안건을 의결하게 되면 여당 추천 위원들은 전원 사퇴해라’, ‘위원회의 구성이나 의사 결정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켜라’ 등등. 행동 지침을 해수부가 여당 측 위원들에게 하달을 한 거죠. 실제로 똑같이 했어요.
무엇을 밝혀야 하나?
진상 규명의 과제는 굉장히 많이 남아있긴 한데, 중요한 것들을 보겠습니다. 침몰 원인을 아직 잘 모릅니다. 선체조사위원회가 지금 활동을 하고 있고 기술적인 조사를 통해서 조금 밝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검찰 수사는 이렇게 돼 있죠. ‘세월호가 무리하게 증톤을 했고 과적으로 복원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운항을 하다가 조타 미숙으로 대각도의 변침을 했고 화물 고박이 부실한 상태에서 화물이 쏠리면서 복원력을 상실하게 됐다.’
그런데 정작 재판에서는 조타 실수가 증명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조타 실수가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서 배가 침몰했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판결문에서도 남겨 놨습니다. 선체 조사를 해서 정확하게 침몰 원인을 밝히는 게 중요하고, 현재까지의 증거로만 봤을 땐 선원들의 조타 실수가 있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대각도 변침을 하기 직전 항적 기록이 사라졌습니다. 항적 기록은 위성을 통해서 위치 정보를 수신을 해서 국가 전산 서버에 자동으로 저장이 되는 건데, 우리 나라 시스템이 그다지 좋지가 않은가 봐요. 신호가 자꾸 끊긴대요. 세월호만 그런 게 아니고요. 세월호도 해당 구간만이 아니라 인천에서 출발했을 때부터의 전체 항적 기록을 보면 중간 중간에 조금씩 비어 있는 데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30초씩 비는 구간은 없어요. 그러니까 뭔가 조작의 흔적이 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고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한 달쯤 지나서 세종시에 있는 국가 전산 서버에 대한 대대적인 수리 작업이 시작됩니다. 정상적인 점검과 수리였다고 정부는 얘기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정확한 화물 적재량도 우리가 모르는 거죠. 인양된 선체를 조사하다 보면 남아 있는 화물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테니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평형수를 감축하고 운항했다는 건 분명합니다. 평형수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화물을 많이 실으려다 보니까 평형수를 줄이는 방법을 썼던 거예요. 그런데 평형수를 얼마나 감축했는지 정확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배를 인양하는 과정에서 평형수 탱크에 구멍을 뚫어서 뭐가 얼마나 남아 있었는지, 어떻게 돼 있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선원들을 배에서 먼저 탈출시킨 것도 있죠. 해경은 선원인 줄 몰랐다고 얘기하는데요. 모를 수가 없어요. 왜 선장과 선원들을 먼저 구조했는지 여전히 의혹이 있는 대목입니다. 해경이 선장을 자기 아파트로 데려간 것도 문제라고 얘기할 수 있죠. 해군이 통영함을 보내겠다고 하는 것도 해경은 저지했고 미군의 지원도 저지했어요. 그런데 왜 저지했을까는 잘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과연 미군이 도와준다는데 해경이 거절하면 그냥 그걸로 끝인가? 그럴 수 있나? 해경이 ‘안 보내도 돼요’ 그러면 해군이 ‘알았어요’ 할 수 있는 관계인가? 이는 조율하는 사람이 있었을 거라는 얘기예요. 결국 누가 했겠어요? 청와대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국방부 등 해군에 대해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 그런데 이 부분도 지금 정확하게 해명이 돼 있지 않습니다.
어제 〈미디어오늘〉이 국정원 개입 의혹 관련 보도를 했습니다. 청해진해운이 참사 직후에 국정원 직원과 통화를 했는데 해경 수사 보고서에는 다른 사람과 통화한 것처럼 작성이 돼 있던 것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국정원이 세월호에 개입했다는 흔적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7월에 건져 올린 노트북에서 복원된 ‘국정원 지적 사항’이라는 문건이죠. 여기 보면 자판기 위치나 휴가 일정 등을 다 국정원에 보고하라고 돼 있었거든요. 국정원은 ‘보안 측정’을 위해서 요구했을 뿐이라고 얘기했지만, 음료 자판기 위치 같은 건 ‘보안 측정’이랑은 무관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해명이 안 되는 대목이고요.
또, 사고가 발생하면 국정원에 직접 보고하도록 ‘보고 계통도’에 적혀 있었는데, 이것도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국정원은 그걸 몰랐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국정원이 운항 관리 체계에 대한 심사를 하려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한 달쯤 전에 인천에서 세월호를 타고 제주까지 갔다가 왔어요. 보안 심사를 하면 유사시 보고 계통 심사도 다 하거든요? 그런데도 국정원에 보고하기로 돼 있는 것을 몰랐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돼요?
국정원이 9시 45분쯤에 뉴스를 보고 [사고 소식을] 알았다고 했죠? 그런데 이미 9시 30 분경부터 청해진해운 직원이 국정원 직원과 몇 차례에 걸쳐서 통화를 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국정원은 거짓말하고 있는 거죠.
청해진해운과 국정원의 관계는 〈미디어오늘〉이 상당히 많이 파헤쳤어요. 청해진해운의 내부 자료에 국정원 직원이 왔다 갔다거나 회식을 했다거나 하는 기록들이 다 나와요. 상당히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세월호를 도입할 때부터 이미 국정원이 관여했다는 [직원들의] 증언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실 소유주 여부나 모종의 작업을 하기 위해서 세월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등은 아직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정원이 세월호를 운영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실소유주라고 생각해요. 국정원이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업을 많이 해요. 차명 형태로요. 그중 하나가 아니었느냐는 의구심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7시간’ 미스터리도 여전하죠. 보고를 두 차례를 받고 철저하게 수색하라고 지시도 내렸다고 하는데요. 우리는 그 정도로 [의무를] 다 했다고 얘기할 수 있느냐고 비판도 하지만, 진짜 그나마 라도 한 건지 증거가 없어요. 서면 보고를 했다고 하는데 그 서면을 제출하라 했더니 안 내요. 없는 거예요.
박근혜 대통령이 10시 30분에 해경 청장한테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시각 10시 30분에 당시 청와대 대변인 민경우가 기자 브리핑을 하면서 ‘대통령이 해경 청장과 통화를 했다’라고 말합니다. 동시에 말이죠. 정말 통화를 한 건지, 정말 보고를 받았는지 아직 잘 몰라요. 이 대목도 조사가 필요한데, 특검은 이 부분에 대해서 수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검찰로 넘겼는데, 수사를 안 하고 끝내버렸죠.
세월호 참사의 교훈
저는 세월호 참사와 국정원 관련된 의혹, 대통령이 뭐 했냐는 의혹 등을 당연히 밝혀야 되지만, 어찌 보면 그것들은 본질적인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본질적 내용은 결국 자본의 탐욕을 보장해주기 위한 시스템이 끊임없이 안전에 관한 업무를 민간에 이양하고 규제를 완화해줬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적인 시스템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고였다는 거죠.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방향이라고 하는 건, 안전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고, 영업 이익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희생돼야 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며 결국은 민주주의로 풀어야 될 문제가 돼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안전의 주체로서 참여하는 문제여야 합니다.
우리는 전문가주의에 빠져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안전 문제 관련해서는요. 안전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잖아요. 예를 들어서 원전이 위험하다는 건 후쿠시마 사고라든지 체르노빌 사고 등을 통해서 알고는 있지만, 기술적으로 정말 어떤 것이 위험하고 어떤 경우에 위험성이 커지는 건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몰라요. 현재 우리 나라의 원전이 과연 안전한 상태인지, 시민들은 잘 알 수가 없어요.
가습기 참사도 마찬가지죠. 도대체 어떤 물질을 얼만큼 포함시킨 건지, 위험이 얼마나 커지는 것인지를 몰라요. 선령 제한이 20년이 맞는지, 30년이 맞는지도 당연히 모르죠.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전문가들한테 너무 맡겨버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전문가들은 결국 기업과 정부에 붙어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전문가라고 행세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기업의 이윤 보장을 위해서 국가에 안전 기준들을 끊임 없이 하향 조정하려고 하고 국가가 이를 보증해 주는 시스템이었던 거죠. 전문가와 기업 그리고 국가의 동맹 체제입니다. 이 카르텔 속에서 안전의 문제가 기업의 이윤 논리 속에 종속돼 버리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죠.
이걸 깨려면 안전의 문제를 시민 사회의 민주주의 의제로 복원시켜야 합니다. 우리 동네 공장에 어떤 유해 물질이 있는지 알 권리를 주장하고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들을 기업과 지자체가 마련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원전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해서 에너지 정책이라는 큰 틀 속에서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원전의 필요성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요구들을 시민들이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관철될 수 있을 때, 안전이 담보될 수 있을 겁니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이 민주주의 문제여야 한다는 걸 시민들한테 가르쳐 준 사건이었고 바로 그런 방향에서 시민들이 행동할 때에만 이 교훈을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녹취·정리 김승주, 박충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