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치의 양극화, 브렉시트, 나치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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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노동자연대의 한 회의에서 한 발표 내용을 편집한 것이다.
유럽의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럽 각국에서 득세하던 주류 정당들의 지지가 크게 추락하고, 아웃사이더나 정치 신예로 표현되는 세력이 성장하고 있다.
올해 4~5월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서는 중도우파 공화당과 중도좌파 사회당이 모두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지난해 오스트리아 대선에서는 중도우파 국민당과 중도좌파 사민당이 합쳐서 22퍼센트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는 올해 10월에 조기 총선이 실시된다.
지난해 국민투표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결정된 것도 영국(과 세계) 지배계급들이 원치 않은 ‘이변’이었다. 유럽연합에서 경제력이 2위, 군사력이 1위인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세계사적 전환”(알렉스 캘리니코스)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다.(브렉시트와 영국 조기 총선에 대해서는 '노동당 제러미 코빈이 승리하기를 바란다'를 참고하시오.)
이런 정치적 불안정은 세계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가 낳은 결과이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들이 기득권층에 그 책임을 물으며 반란 표를 던진 결과이다.
정치 위기로 수혜를 입은 우파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표출된 유럽연합에 대한 반감은 영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유럽연합이 각국에 긴축을 강요한다는 점이 많은 평범한 유럽인의 불만을 사고 있다.
게다가 2015년 7월 초 그리스인들은 국민투표로 긴축에 대한 압도적 반대 의사를 표명했는데, 유럽연합은 이를 묵살해 버렸다. 유럽연합이 민주주의도 업신여긴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유럽연합의 제국주의적 성격도 빠뜨릴 수 없다. 유럽연합은 미국과 함께 중동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왔다. 이것이 유럽에 끼친 결과의 하나가 난민 위기이다. 유럽연합은 중동에 개입할 때도, 난민을 대할 때도 무슬림 혐오를 확산시켰다. 이는 유럽 곳곳에서 84시간에 한 번씩 발생한다는 크고 작은 공격의 배경이다. 5월 22일 맨체스터에서 발생한 폭탄 공격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유럽 지배자들은 이런 공격을 이용해 무슬림 혐오를 더욱 부추기며 악순환을 심화시킨다.
경제적·정치적 위기, 유럽연합에 대한 반감, 지배계급이 퍼뜨리는 무슬림 혐오 등 인종차별을 이용해 나치와 우익 포퓰리즘이 성장하고 있다.
프랑스의 나치 국민전선은 이번 대선 결선 투표에서 무려 1천만 표 이상을 득표했다. 다행히 당선하지 못했지만, 다음 달에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국민전선은 대선에서의 성과를 총선에서도 이어 가겠다고 벼르고 있다.
국민전선의 성공은 다른 유럽 나라들의 나치와 우익 포퓰리스트들을 고무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좌파 개혁주의도 성장하고 있다
양극화의 왼쪽 측면으로서 좌파 개혁주의의 성장도 관찰된다. 프랑스에서는 장뤽 멜랑숑이 대선에서 거의 20퍼센트를 득표했다. 영국에서는 코빈의 인기가 상당하다. 얼마 전까지는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가 전 세계 좌파의 관심을 받았다. 이런 좌파 개혁주의 세력의 성장은 긴축과 유럽연합에 대한 반감을 좌파 사상으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사회주의 정치의 경청자가 늘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리스 시리자가 집권 후 급속히 후퇴하며 개혁주의 전략의 한계를 빠르게 드러낸 것에서 보듯이, 사회주의자는 좌파 개혁주의의 성장을 비판적 지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아쉽게도 유럽에서 계급투쟁이 아직 본격적으로 되살아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노동자 운동이 이전의 패배에서 아직 충분히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또 그 패배로 말미암아 역설적으로 노조 상근간부층의 영향력이 현장조합원의 힘보다 더 세기 때문이다. 이처럼 낮은 계급투쟁 수준은 급진좌파, 특히 혁명적 좌파의 성장을 제약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러나 경제적·정치적 위기는 투쟁을 부를 수 있고 실제로 몇몇 대단한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유럽 곳곳의 난민 연대 운동, 폴란드 낙태권 옹호 운동, 프랑스 노동법 개악 반대 파업과 이에 고무된 청년들의 밤샘 시위가 대표적 사례다. 올해 초에는 트럼프에 항의하는 운동이 있었다.
이런 운동들이 제공하는 기회를 잘 살리려면 사회주의자가 능동적으로 관여해야 한다. 인종차별, 긴축, 유럽연합에 맞선 좌파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무엇보다 독립적이고 응집력 있는 사회주의 조직이 필요하다.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에게도 이것은 중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