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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외교·국방 정책:
진보·좌파가 ‘문재인, 잘하라’ 응원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집권기에 견줘 훨씬 더 어려운 대외환경에 처해 있다. 먼저 이 점을 살펴봐야 한다. 2008년 세계 공황 이후 경제 침체가 장기화한 가운데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경쟁은 계속 점증해 왔다.

트럼프 정부의 등장은 동아시아에서 불확실성을 더 키운 요인이 됐다. 취임 직후 트럼프는 국방비 10퍼센트 증액안을 내놓으며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증액분만 해도 한국 국방예산보다, 북한 GDP(국내총생산)보다 많다.

올봄에 트럼프의 군국주의는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돌 만큼 긴장을 일으켰다. 북한 ‘위협’론을 부각시켜 항공모함을 한반도 인근에 추가 배치하는 등 긴장을 높였고, 그 틈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려 했다. 항모 칼빈슨 호가 동해로 진입할 때 사드가 성주로 반입된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사드 배치 외에도 트럼프는 한국의 MD(미사일방어체계) 편입 공식화 같은 동맹 강화, ‘사드 10억 달러’로 대표되는 군비 분담 요구를 관철시키려 한다. 아마도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은 한미FTA 재협상을 비롯한 트럼프의 여러 요구를 받아 오게 될 것이다. 진보·좌파가 문재인에게 한·미 정상회담을 이용해 “한반도 위기 해소의 돌파구 마련하라”고 (비현실적으로) 주문할 것이 아니라, ‘미국에 가지 말라’고 해야 하는 까닭이다.

문재인이 트럼프의 동아시아 정책에 타협할 것을 경계하라 트럼프를 만나 문재인의 친서를 전달한 홍석현 ⓒ사진 출처 백악관

현재 트럼프가 대선 때보다는 중국을 향해 덜 위압적으로 말하지만, 머지않아 미·중 간 긴장 악화 상황은 재발될 것이다. 미국의 군국주의에 관한 중국의 대응이 지속·강화되는 등 핵무기 경쟁까지 포함한 군비 경쟁이 악화돼 왔고, 미국·일본의 중장기적 정책 방향이 긴장 재발을 예고한다.

러시아도 동북아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과거 북한과 일본을 오가던 북한 여객선 만경봉 호가 이제 북한 라선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정기 운항한다. 미국의 안보 전문 정보분석업체 ‘스트랫포’는 러시아가 최근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것을 틈타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러시아는 북한을 서방과의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로 삼고자 한다. 이는 미국의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 기조와 어긋나는 것이고, 러시아가 중국과 별개로 한반도에 독자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북·러 관계만 봐도, 이른바 ‘신냉전론’보다 현 동아시아 질서가 훨씬 더 유동적이고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 반대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이 집권했다. ‘안보 위기’ 때문에 한국 지배계급이 받는 압력이 매우 크고, 내부 견해차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은 중국을 되도록 자극하고 싶지 않아 고심하겠지만, 결국 미국과의 협력을 선택할 것이다. 그 자신이 ‘한미동맹은 외교·안보의 근간’이라는 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망설일 테지만, 결국 성주에 들어온 사드 배치를 인정할 것이다. 문재인의 대미 특사 홍석현은 미국에 가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다고 설명했지만, 동시에 “한미동맹의 정신에 기초한 해결”도 언급했다. 결국 사드 배치를 철회하지 않은 채, 타협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등 우파들이 사드 배치의 국회 비준을 강하게 반대하지만, 설사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더라도 이는 배치를 사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도, 평택미군기지 확장과 이라크 파병 모두 국회 비준을 거쳐 노무현이 실행한 배신 행위였다.

유엔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뤘던 강경화가 외교부 장관으로 지명돼 기대감이 일 수 있겠지만, 이미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서 조금씩 후퇴해 왔다.

대일 특사 문희상은 ‘위안부’ 합의 재협상·파기가 아니라 제3의 길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군사적으로 한·미·일 공조를 기본으로 한다면, 군사적 문제와 경제 협력 등에서 미래 지향적으로 생각할 문제가 여러 가지 있다”고 했다. “미래 지향”은 역대 한국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접고 한·일 유착을 강화할 때마다 동원한 용어다.

문재인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지만, “특정한 상황”이 될 때에야 남북 대화를 하라는 트럼프를 상대해야 한다. 그간 강화돼 온 대북 제재 구조 때문에 문재인의 공약인 개성공단 재개조차 만만치 않은 난관이 앞에 놓여 있다.

게다가 문재인은 미국 특사단을 만나 “제재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고 합의했다. “모든 수단”은 미국이 북한을 압박할 때 즐겨 쓰는 특수 용어다. 거기에는 군사적 옵션이 늘 포함돼 있다. 따라서 문재인도 미국의 대북 정책에 보조를 맞추며 대북 군사 압박 강화에 협력한다는 얘기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교수도 문재인이 미국과의 합의로 대북 정책 면에서 “명백히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춰 대북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겠다는 것을 두고 서재정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최대의 제재를 가해서 ‘대화’의 장에서 북의 굴복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라면 외교도 아니고 대화는 더욱 아니다. 협박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런 기조 위에서는 문재인 정부 자체가 남북 관계 속의 모순에 봉착해 좌충우돌할 것이다.

경고

진보·좌파는 문재인 정부가 대외 정책에서 민중의 바람을 결국 배신할 것임을 일찌감치 경고하고, 정부의 본질적인 친제국주의·친군국주의 정책을 반대해야 한다. 미국의 군비 분담 압력을 받으며 문재인 정부는 대대적인 군비 증강을 공언한다. 그러나 현 경제 침체 상황에서 군비의 대폭 증강은 정부의 노동자 공격 시도와 뚜렷하게 대비될 것이다.

근래 한국 정부의 친미 외교·국방 정책에 반대하는 데 앞장서 온 것은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이었다. 성주·김천 현지의 주민 운동은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낳았다. 그러나 주민 운동만으로는 중앙 정부의 핵심 정책을 저지하는 데까지 힘이 미치기는 어려웠다.

서울에서 주요 진보 단체들은 여러 쟁점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사드 반대 운동 내에서 굳건한 행동 통일을 하지 못했다.(짐작하겠지만 그 근본에는 북핵 문제에 관한 첨예한 이견이 자리 잡고 있다.) 주요 진보 단체들은 이 문제의 ‘정치적 해결’, 즉 국회 설득에 주력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아 여의치 않았다.

강대국간 갈등이 일으킨 해일 앞의 문재인 모순투성이 대외정책으로 그 해일을 넘을 수 있을까? ⓒ사진 출처 청와대

그러나 위기와 함께, 기회도 다시 찾아올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은 좌우 양쪽에서 불만족스러워하게 될 것이다. 때로 남북 대화나 교류·협력으로 노동자 운동의 시선을 돌리려 할 테지만 말이다. 정부 안팎에서 지배계급 성원들이 대외정책을 놓고 논쟁하고 쟁투를 벌일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진보·좌파들은 지금 문재인 정부를 향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의 촉매가 되라고 고무할 게 아니다. 훈수 둘 일도 아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제국주의론이 주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결론은 제국주의 문제의 해결이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고무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 잠재력이 미래에 실현될 가능성은 분명 있다. 따라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앞서 설명한 중장기적 전망 하에 지정학적 갈등이 낳을 이데올로기적·정치적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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