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항쟁들이 진정한 저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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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하먼이 미국이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레바논 등의 ‘민주항쟁’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크리스 하먼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자 계간지 《인터내셔날 소셜리즘》의 편집자다. 국내에서는 《민중의 세계사》(책갈피), 《세계를 뒤흔든 1968》(책갈피) 《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책갈피), 《저항의 세계화》(북막스) 등 여러 권이 번역돼 있다.
그는 8월에 ‘다함께’가 주최하는 ‘전쟁과 변혁의 시대’에서 연설하기 위해 한국에 올 예정이다.
독재정권과 준독재정권 들은 세계 도처에 존재한다. 이 모든 곳에는 분노하고 저항하고자 하는 여러 부문의 대중이 있다.
내가 최근 방문했던 이집트의 예를 들면,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1981년부터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 무바라크 정권은 지난 24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어떤 사회 단체도 국가로부터 독립적으로 조직을 건설할 수 없다.
이것은 노동자와 농민의 투쟁을 고무하고 지원하길 원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또,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자유주의 지식인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이는 무슬림형제당같이 온건한 이슬람 운동과 좌파 무슬림에도 해를 끼쳤다.
또, 무바라크를 좋아하지 않지만, 서구식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집단들은 모두 억압받고 있으며 정권과 충돌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이 분출하면 적어도 처음에는 독재정권에 대한 그들의 일치된 반대 때문에 각 집단들 간의 차이점은 덮어진다.
그러나 이는 불안정하고 모순적인 상황을 낳는다. 이들 운동 가운데 일부는 노동자나 하층 중간 계급이나 농민 등 인구 대다수의 요구를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 때 주요 쟁점은 보통 실업·인플레이션·빈곤 등이다. 이는 1998년 인도네시아 봉기와 최근 에콰도르·아르헨티나·볼리비아 봉기의 주요한 배경이었다.
좀더 애매한 상황들이 존재한다. 많은 독재 정권들이 애초에 미국의 지지를 받아 수립됐지만, 미국이 나중에 그 독재 정부에 반대하는 저항을 조종하고 이용하려 할 수 있다.
이것은 미국이 한때 지지했지만 그 뒤 사이가 틀어진 정권에 반대하는 저항일 경우에 특히 두드러진다. 시리아의 예를 들어보자. 시리아 정부는 1991년 걸프전 때 미국의 동맹국이었다.
시리아는 약 30년 전에 우익 팔랑헤 당 ― 미국·프랑스·이스라엘이 후원한 ― 에 맞서 투쟁하는 레바논 좌파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레바논에 군대를 보냈다.
현재, 이라크의 석유 통제권을 직접 장악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부시 주변의 네오콘들은 중동 정부들을 손 봐 더 확실히 미국 편으로 만들려고 한다.
네오콘들은 독재 혹은 준독재 정권을 미국식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바꾸려고 한다. 그들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들이 참가하는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가 레바논과 시리아를 통치하기를 바란다.
미국은 특정 반정부 운동들을 친미적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미국은 운동에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고 운동 지도자를 선택하려 했다.
몇몇 반정부 지도자들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싸우길 진정으로 원한다. 그러나 작년 말 우크라이나 같은 경우에, 반정부 지도자들은 자기 지위를 끌어올릴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던 부패한 옛 지배 집단의 구성원들이었다.
물론 우크라이나에서 거리로 나온 사람들 중 다수는 사유화로 한몫 잡은 마피아식 집단들이 지배하는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사회를 끔찍이도 증오했다.
그러나 그들이 지지했던 운동은 하나의 마피아식 집단을 또 다른 마피아식 집단으로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중부 유럽의 지배권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가 벌이는 치졸한 공작에도 이용당했다.
이러한 정황들을 잘 판단하려면 누가 관련됐고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다른 상황에서는 세력 균형도 우크라이나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1980 ∼ 81년에 폴란드에서 일어났던 연대노조 운동은 지식인들이 투옥될 위험을 무릅쓰고 조직했던,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운 진정한 운동이었다.
이는 민주적인 자유, 진정한 노동조합을 조직할 권리,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요구하는 노동자 대중의 자생적인 운동을 촉발했다.
이 때 미국은 연대노조 운동을 어떤 식으로도 지지하지 않았다. 운동이 패배한 뒤인 1981년 말에 가서야 미국은 운동의 지도자들을 회유했고, 그들에게 미국식 세계관을 심기 위해 돈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1998년 인도네시아의 운동은 미국의 동남아시아 주요 동맹 정부 중 하나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미국은 수하르토 정부를 민주적 외양을 취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수하르토와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정부로 대체하려고 무척 애썼다.
1986년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를 전복하고 “민중권력”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운동은 순수한 대중운동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 뒤로 필리핀의 지배계급은 새 정부가 근본적으로 마르코스와 같은 노선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 노력했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한껏 고조될 때, 지배계급의 일부 분파들(과 주로 미국)이 그런 압력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기 전에 먼저 변화를 추진하려고 했던 경우는 많다.
사회적 위기가 심화하는 동안에도 미국은 기존 정부를 계속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반정부 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미국 재단과 비정부기구를 이용해 반정부 운동 지도부에 침투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
1970년대 후반 일련의 학생운동과 노동자 투쟁은 브라질의 군사독재를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장군들은 불만을 달래기 위해 선거 허용을 약속함으로써 이른바 “개방화” 과정이 시작됐다.
상층계급은 자신들만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될 수 있도록 조처를 취했다.
1987년 남한에서는 거대한 시위의 물결이 있었고, 1988년에는 파업들이 벌어졌다.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4년 뒤 선거 시행을 약속하라는 압력이 군부독재 정권에게 가해졌다. “안전한” 야당을 만들어 내는 주의깊은 과정이 있었고, 그 결과 폭발은 없었다.
지금 미국이 이집트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조처다. 무바라크는 선거를 치르겠다고 약속했지만, 미국은 무바라크를 패배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은 오직 가장 명망 있는 자본가 집단에게만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좀더 급진적인 반대 세력에 대한 억압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이번 선거를 묵인해 주고 선거 결과를 받아들인다면 몇 년 후에 그들도 입후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에 맞서 사회주의자들은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 민주적 권리를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과거 독재정권을 수립했던 사람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이용당하지 않겠노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는 한편, 사회주의자들은 옛 정권의 위기를 이용해 독립적인 요구를 내놓고 노동계급의 힘을 강화하며 지배 계급내 어떤 인물이 당선되든 간에 상관 없이 그에 맞설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레바논 사회주의자들은 시리아의 레바논 점령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또한 이스라엘의 시리아·서안지구 점령과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는 찬성하면서 시리아 군의 레바논 주둔을 비난하는 자들의 위선을 지적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미국의 중심 계획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점령에 저항하는 세력을 공격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위가 있을 때는 바로 이러한 쟁점들이 제기돼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계획을 추종하는 동원에 참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집트 사회주의자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당장 물러나라고 요구할 기회가 눈앞에 다가왔다. 무바라크와 관련된 신자유주의 정책, 비상계엄, 노동조합 통제와 같은 것들도 함께 없어져야 한다.
만약 사회주의자들이 그 같은 요구들을 주장한다면 그들은 미국이 의도한 것과는 다른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아무리 강대국일지라도 다른 나라에 개입해서 “정권 교체”를 선동하는 데에는 언제나 위험이 뒤따른다.
독일 정부는 제1차세계대전 중이었던 1917년에,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과 멘셰비키 지도자 마르토프를 태운 기차를 러시아로 보내면 상황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들은 분명 러시아를 격변에 빠뜨렸다. 그러나 1년 뒤에는 독일에서도 혁명이 일어났다!
지금 당장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거리에서 우파 기독교 민병대가 주도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레바논 폭격을 기억하고 있고 레바논 인구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시아파 무슬림을 자극할 것이고, 그들이 거리로 나설 수도 있다. 그들의 요구는 지금 들리는 요구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미국의 네오콘들은 어느 사회에나 자신의 비전에 협력할 자본가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바로 네오콘들이 의존하고 협조하며 권좌에 앉히길 바라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피폐해진 중간 계급과 끔찍한 생활수준을 견디도록 강요당해 온 대다수 노동자와 농민 들이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 그들은 미국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거리로 나설 수 있다.
1백 년 전에 레온 트로츠키는 1905년 러시아 혁명에서 자본가들이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길 회피했지만, 노동자들이 이런 요구를 채택해 사회주의적 요구와 결합시켰다고 지적했다. 트로츠키가 연속혁명이라고 불렀던 그 과정은 중동에서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악몽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