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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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6일에 ‘다함께’가 주최한 ‘진보적 대학생이 꼭 알아야 할 10가지 주제’에서 두 이주노동자가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두 사람이 전해 준 이주노동자들의 진솔한 삶과 투쟁 이야기는 많은 청중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라디카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저는 한국 땅에서 1992년부터 살고 있습니다. 20대 나이에 들어와서 30대가 다 됐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까운 나이를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저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하고 싶습니다.
오래 전부터 한국에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여러 방식으로 들어오면서 자기 살림과 자기 가족을 살리기 위해 노동을 해 왔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오랫동안 한국에서 힘들게 살면서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한국 노동자들 그리고 시민들은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일 빼앗긴다고 오해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이 일 빼앗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3D업체의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거에요.
3D업체의 일이라는 것은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노동자들이 안 하는 일이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14시간, 15시간 일하면서도 낮은 임금 제대로 못 받고, 강제로 일 하다가 다쳐도 산재 안 되고, 일하는 현장에서 폭행당하고 차별받아야 하고, 누구한테 맞아도 입 다물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이주노동자입니다.
우리는 많이 고통받고 노예처럼 일해 왔습니다. 가족 생존권 위해 모두 아픔을 참고 일해 왔습니다. 언젠가는 한국 정부도 우리의 아픔을 알고 좋은 제도 만들거라는 기대감이 항상 있었어요.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마침내 2003년 7월 31일 국회에서 고용허가제가 통과됐습니다. 그 때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합법화될 수 있구나.” 기대감도 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주노동자를 세 부류로 나눴습니다. 한국 체류 3년 미만자만이 합법적 신분을 얻었습니다. 4년 이상 불법 체류한 이주노동자는 모두 2004년 1월 15일까지 한국에서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합법화된 3년 미만자들도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어 불법 체류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한국 경제를 위해 일해 왔던 우리 이주노동자들을 아무 책임도지지 않고 나가라고 말하는 한국 정부 때문에 우리는 많이 고생했습니다.
고용허가제 때문에 너무 힘들게 일하고 있습니다. 고용허가제로 합법화된 3년 미만자들도 체류 기간이 다 돼 불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12월 15일부터 지금까지 심하게 단속하고 있습니다. 단속을 언제까지 하는지 언제 끝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잡히고 있습니다. 지난주 의정부에서도 우리 친구들이 많이 잡혀 갔습니다. 한 여성분도 잡혀 갔어요. 나이도 어린데요. 출입국 직원들이 그녀를 잡다가 그녀의 손을 부러뜨렸어요. 손 부러지고 그 분은 쓰러졌어요. 그런데 출입국 직원들은 그녀를 그냥 두고 갔어요. 그 책임은 누가 지나요. 공장도 책임 안 지고 출입국 사람들은 도망가고. 우리의 존재와 마음이 한국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생존권까지 걸려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왠지 단속·추방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은 해결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003년 12월 15일부터 명동성당에서 이주노동자들 80명과 20명의 한국 활동가들이 함께 농성했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단속·추방 저지,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사업장 이동 자유였습니다.
농성중이었던 2004년 2월 15일에 우리 농성단의 이주노동자 대표 연행됐습니다. 또, 같이 투쟁하는 이주노동자 3명도 집회하다가 출입국 직원들에게 잡혀 갔습니다. 그 분들 석방을 요구하면서 단식 투쟁도 했습니다. 그 분들은 보호소에서, 저와 이주노동자 3명은 농성장에서 한 달 동안 단식했습니다.
추운 겨울 농성장에 모인 우리는 서로가 국적도 민족도 피부색도 말도 달랐지만 1년 동안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하며 뜨겁게 투쟁했습니다.
1년 동안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아픔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강제 추방과 인간사냥 때문에 14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와서 돈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가족과의 약속은 단 1분 만에 무너졌습니다.
그 가족들은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들을 잃어 버린 엄마, 사랑하는 남편을 잃어 버린 아내, 하나밖에 없는 아빠를 잃어 버린 아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17년 전부터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탄압과 차별을 받으며 노예처럼 살아왔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아왔습니다. 바로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많이 이용당했습니다. 많은 이주 여성들은 성폭행도 당했습니다. 이렇게 입 다물게 하고 우리를 언제까지 써먹을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참을 만큼 참아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알려 주고 싶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노동자는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지역에서 수도권 노동조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이주노동자들이 지금까지 받았던 고통과 탄압에 맞서, 권리를 위해 싸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숨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지금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우리한테 큰 성과가 있어요. 왜냐하면 오늘 학생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우리한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지금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40만 명이 넘어요. 바로 앞에도, 자기 동네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있어요, 자기 나라에서 자기 가족 다 놔두고 한국에 돈 벌려고 나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를 자기 가족처럼 대우해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지금 이주노동자들이 모두 합법화하면 자본가들에게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이익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요?”
이주노동자들 한국에 들어오는 이유는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서에요.
그런데 한국 자본가들은 왜 이주 노동자를 고용할까요? 이주노동자들을 이용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에요. 그것은 또 한국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위해서에요. 이주노동자들이 장시간 일하고 적은 월급 받으니까 한국노동자들한테 “니네도 그렇게 해라.” 하는 거에요.
지금 점점 비정규직 늘어나고 있는 상태예요. 한국의 어느 집안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없는 집안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지는 조금 있으면 학생들도 잘 아시게 될 거에요.
이주노동자들이 합법화돼서 한국에서 일할 수 있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훨씬 좋아질 거에요.
건설 현장에 가면 거기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너무 적은 월급으로 일해요. 그래서 한국노동자들이 “니네들 때문에 우리가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식으로 말해요.
한국 노동자들도 월급이나 일당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태예요. 우리가 허가 얻고 한국에서 제대로 당당하게 일할 수 있으면 한국 노동자들과 같이 그 사람들 월급 적으면 올라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같은 일하고 장시간 일하니까.
한국 노동자들도 지금 받는 착취가 덜해질 것 같아요. 이주노동자들은 일 잘하는 사람이고 일 잘하면 그 사람 대우받고 싶어하죠. 인간이니까.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대우를 요구할 수 있어요.
난 한국 노동자들과 똑같은 월급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나도 노동자니까.
나를 이용해 한국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은 나도 인정하지 않아요. 그 노동자는 내 형제예요. 그 분이 착취받는 것은 싫어요. 그렇게 안 되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투쟁하고 있어요.
이주노동자 가족의 교육 문제를 말해 볼께요. 1999년에 이주노동자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이 허용됐어요. 국제노동기구 협약에 의하면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자기 가족들 데리고 와서 같이 살고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데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거기에 서명하지 않았어요.
그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리비아, 싱가폴 같은 데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자기 가족을 데리고 가서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는데 한국은 초등학교밖에 안 돼요.
미안한 일인데, 제가 9년째 와이프와 떨어져 있는데, 얼굴이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해요. 데리고 오고 싶어도 돈 때문에 못 데려 오고. 우리 딸 데리고 와서 학교에서 교육시키려고 생각해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제가 일하는 것으로는 못 데리고 와요.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 같은데서 일하는 사람들은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적은 돈으로 자식들을 교육시킬 수 있어요. 고등학교, 대학교 가면 큰 돈이 나가겠지만요. 한국에는 아직까지 제대로 되는 게 없어요.
어떤 분이 외국의 이주노동자 정책과 그 시행에 대해 질문했어요.
저는 방글라데시 출신이에요. 중동에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엄청 많이 가 있어요. 정부들은 “지금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 몇 만 명 필요하다” 하고는 데리고 가요. 거기서는 노동자가 일하고 싶은 공장에서 일해요. 자기가 너무 힘들면 자기 편한 데로 일자리 옮길 수 있어요. 사업장 이동 자유가 있어요. 싱가폴 같은 데도 비슷해요.
현재 한국에서는 내가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기분 나빠도 “오늘 일 못한다.” 이거 안 돼요. 나는 일 안하면 바로 잘려요. 잘리면 새로운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어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제대로 된 허가, 노동허가를 원해요.
동지들은 1970∼80년대 한국 노동자들이 독일에 가서 투쟁해 노동허가제를 얻어 놓은 것 알고 계세요? 그 때 간호원들이나 광부들이 독일에 가서 많은 탄압이나 차별받았어요. 투쟁하기도 했구요.
지금 한국에 있는 우리는 40만 명인데, 그 때는 2천5백 명이 투쟁해 노동허가 얻었어요. 독일 사람들이 미등록이나 차별받는 3D업체에서 일하는 분들과 적극 연대하고 도와줬기 때문에 빨리 노동허가 얻은 거에요.
아직도 그분들은 거기에서 살고 있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잘 살고 있어요.
끝으로, 이주노동자들이 테러리스트 아니냐는 얘기가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정부는 반전 집회에 외국인들이 나오면 사진 찍어요. 다 테러리스트로 몰아요. 우리는 한국에서 좋은 추억 갖고 가고 싶어요. 우리는 테러리스트 아니고요. 반한(反韓), 안 했어요.
또, 한국의 정당한 투쟁들을 다 지지하고 적극 연대하고 싶고요.
정부가 아무리 탄압해도 우리는 우리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 길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거 보다 더 좋은 길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싸울 거에요. 동지들이 우리와 같이 있으면 우리가 더 힘차게 싸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