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의 목소리 <다함께>
〈노동자 연대〉 구독
정부와 사장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내세워 대량해고와 비정규직을 양산한 지난 몇 년 간 노동자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저들은 ‘고액연봉’을 들먹이며 노동자들을 ‘집단이기주의자’로 내몰고, ‘회사가 살아야 일자리도 있다’며 찬물을 끼얹는다.
이것은 다른 노동자들의 연대를 막기 위한 것이다.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이런 악의적인 공격에 둘러싸이게 된다.
그런데 나는 보수언론이 퍼부어대는 독설을 직장의 주변 동료들에게서도 자주 듣곤 한다. 같은 노동자들이 노동자 편을 들지 않고, 사장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을 보면 나는 너무 속상하다.
그래서 나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편인 〈다함께〉를 구독하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호의적인 동료들에게 〈다함께〉를 사서 읽을 것을 열심히 권한다.
같은 직장 동료들이 “한 부만 사서 돌려보겠다”고 말하면, 나는 “안 보는 것보다는 좋지만, 사장들이 조선일보를 한 부만 사서 돌려보냐. 따로 시간 내서 읽기도 어려운데, 늘 들고 다니면서 출퇴근 때나 점심 때에 간편히 읽을 수 있도록 한 부씩 사서 보라”고 권한다.
나는 점심시간 동안 직장 근처에 있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 서너 곳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새 신문을 판매하고, 새로 나온 소책자를 소개하고, 각종 투쟁 지지 모금을 호소하고, 지역사회포럼 홍보물을 노조게시판에 붙일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한다.
처음 몇 개월 간은 쉽지 않았다. 상대방이 낯설어하기도 했고, 나 자신도 그들의 얘기를 듣기보다는 바깥의 투쟁 소식들과 지지 호소를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미숙함 때문에 서로 무안해진 적도 여러 번이었다.
얼굴이 빨개지고, 뒤통수가 간지러운 어색한 순간들을 견디고 꾸준히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들고 가는 〈다함께〉가 나 같은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신문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쉽고 짧게 쓴 다양한 얘기들과 날카로운 분석, 해외투쟁소식과 투쟁의 전통에 관한 기사들, 무엇보다도 싸우는 노동자들을 “골칫거리”로 여기는 세상의 여론에 당당히 맞서면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고, 아낌없는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는 신문을 노동자들이 접해 볼 기회를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신문을 판매하면서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문이 나오면 하루 이틀 안에 배포하는 것이다. 그 시기에 가장 민감한 쟁점을 다룬 〈다함께〉를 읽으면서 보이는 반응들을 상상하면 늘 설렌다.
나에게서 1년 정도 신문을 받아보는 독자가 다른 노동자들의 정기구독 신청을 받은 일도 있었다. 최근 들어온 신입사원들에게 〈다함께〉 정기구독을 받았다는 그 독자의 말을 듣고, 나는 너무나 기뻐 날아갈 뻔했다. 그 노조는 3.20 국제반전행동을 후원하고, 조합원들에게도 개인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줬다.
한 번은 내가 직장 근처에서 반전캠페인 한 것 때문에 회사로부터 “그만두고 나가라”는 황당한 얘기를 듣는 곤란에 처한 적이 있었다.
이 때 고맙게도 평소 〈다함께〉를 구독하던 인근 노조의 위원장이 나를 방어해 줬다. 그는 비정규직이고 조합원도 아닌 나를 방어해 줄 것을 우리 작업장의 노조위원장에게 찾아와 호소했다.
이 일은 나와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 같다. 그들은 신문은 사양했지만, 이주노동자 투쟁 모금에는 참여했다.
나는 또, 회사 근처의 지하철역을 찾아가 신문을 파는데, 여기에는 반 년 넘게 〈다함께〉를 읽는 노동자가 있다. 이 지하철 노동자는 기사를 꼼꼼히 읽는 편인데, 특히 국제적 규모의 반전·반자본주의 투쟁 기사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늘 “수고한다”는 격려를 잊지 않는다.
눈코뜰새없이 바쁜 근무시간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 조합원도 있지만, 작년 궤도연대 파업 당시 ‘다함께’의 연대투쟁 이후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나를 친하게 대해 주는 조합원들이 몇 명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