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금지 위헌 결정과 교육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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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4월 27일 현행 과외금지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함으로써 20년간 금지돼 온 과외가 전면 허용됐다.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받을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전교조는 이번 결정으로 “공교육 부실의 가속화와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이 가중될 것”이며, “교육 기회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야기”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교육에서도 20대 80의 사회 모습이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들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평범한 학원조차 보내기 어려운 대다수 국민들은 언론에서 수천만 원, 수백만 원짜리 과외를 들먹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과외 문제뿐 아니라 그동안 쌓여온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이 사방에서 터져나오자 다급해진 정부는 고액과외를 처벌하거나 자금출처를 조사하겠다는 식의 대책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이조차 7월 이후로 연기된 상태다. 교육부장관은 사교육을 인정하고 저소득층의 과외비를 지원하겠다고 발언했다가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
공교육 붕괴
공교육인 학교교육의 현실은 사교육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다.
부족한 교육재정을 이유로 법에 명시돼 있는 전면적인 중학교 의무교육이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 학급당 학생수가 40∼50명이 넘는 과밀학급이 허다하고, 초등학교에서는 아직도 2부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여전히 암기식 위주의 학습을 받고 있고, 컴퓨터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거나 낙후한 실정이다. 에어컨 시설은 고사하고 찜통 같은 교실에서 선풍기 돌리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한다.
반면 사교육은 기형적으로 비대해져 있다. 현재 과외비는 교육예산을 압도할 만하다는 게 중론이다.
교육부가 조사한 1999년 사교육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과외비 지출 총액은 6조 7천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는 교육부 예산의 35퍼센트 수준이다. 하지만 이 조사는 순수과외비만 조사하고 유치원생 교육비, 초중고교 육성회 기부금, 교재구입비 등은 조사항목에 넣지 않은 것이라 실제 사교육비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과외대책 마련을 위해 진정으로 고민한다면 의무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등 공교육을 내실화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는 전교조의 주장은 백번 옳은 얘기다
정부는 ‘수혜자부담 원칙’을 거론하면서 교육받는 주체가 교육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교육은 졸업 후 여러 산업의 노동수요를 충원하는 데 복무한다. 자본주의에서의 교육은 산업과 노동시장이 필요로 하는 노동자를 양산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각 시기마다 산업의 필요에 의해 교육정책이 변화해 온 과정이 이를 입증한다.
정부 말대로 수혜자부담 원칙에 의거하더라도 교육받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자본가들과 국가가 교육 비용을 대야 한다. 그런데 교육비가 순전히 개인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교육받은 노동력이 사회로 환원된다는 점을 볼 때, 교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소비자 선택의 자유?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은 “교육 서비스의 사적 거래를 금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논리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오히려 시장의 효율성에 근거해 사교육을 양성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과외가 허용되면 질좋은 사교육을 받을 수 있고, 과외비도 경쟁에 의해 싸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과외허용이 사교육비 경감을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지희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이렇게 지적한다. “이번 조처로 과외의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보지만 과외비가 내려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외는 공급이 늘면 생산 단가가 낮아지는 상품의 성격이 아니다. 순전히 인건비라 오히려 고학력자와 뛰어난 강사의 고용으로 과외비가 더 높아질 것이다. 총체적 사교육비는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다.”
안승문 전교조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과외를 전면 자율화하면 질좋은 사교육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스러운 견해다. 도시 중심으로 IMF 이후 교육 불평등이 심화됐고, 특히 빈부 격차에 따라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소위 “자율화”, “소비자 선택의 자유”라는 말들은 교육에 시장의 원리를 도입하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권리 확대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에 시장경제의 원리를 도입한 정책은 이미 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루어졌다. 1995년 5·31교육개혁안이 바로 그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고도 기술을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조정을 해야 할 필요에 직면했다. 그리고, 이에 필요한 숙련 노동력을 양성하기 위해 정부는 공교육에 시장경제의 논리를 도입하고자 했다.
김대중 또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교육발전 5개년’의 핵심인 BK21은 대학의 서열화와 학교간 경쟁 강화를 담고 있다. 서울대 공대만을 집중적으로 밀어주고 나머지 대학에 대해서는 정부 지원을 축소하려는 것인데 이 축소된 비용은 고스란히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떠넘겨질 것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학생들에 대한 공격뿐 아니라, 계약제·연봉제·성과급제 도입으로 교사들마저 경쟁의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 5월 22일치 〈조선일보〉 ‘학교에도 경쟁의 바람을’이란 시론에서 김원식 교수는 시장경쟁의 효율성을 찬양해 마지 않는다.
김 교수는 “사교육은 교사의 퇴출이 있으나 공교육은 없다. 공교육은 잘못 가르쳐도 정년이 보장되고 봉급도 변하지 않는다.”며 공교육도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술 더 떠 김 교수는 경쟁의 바람을 막으려는 교사들의 저항을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붙였다.
김 교수는 공교육 부실화의 책임을 애궂은 교사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에 대한 투자나 교사들의 처우개선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계약제와 연봉제 도입으로 교사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김대중 정부의 교육정책을 적극 옹호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계약제·연봉제 등이 도입되면, 교사들은 탈락을 면하기 위한 경쟁에 매달려야 할 뿐 아니라, 교장들의 관료적 통제에 더욱 얽매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교사들은 입시를 위한 내신 관리와 잡무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사교육, 입시제도, 자본주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외가 문제라고 하지만, 이것이 어떤 이유에서 왜 생겨났는지는 따지고 들지 않는다.
공교육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면 과외가 사라질까? 입시경쟁이 지속되는 한 과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과외는 대학 입시와 직결돼 있다.
본고사에서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그리고 특기나 적성을 살리는 평가 제도 등으로 입시 제도는 계속해서 변해 왔지만 과외는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증가해 왔다.
1980년 과외금지 당시 과외 학생 비율은 초등학생 12.9%, 중학생 15.3%, 인문고교생 26.3%였으나, 1997년 조사에서는 초등학생 70.3%, 중·고교생 49.5%로 나타났다.
이것은 또 입시경쟁이 더욱 치열해졌음을 뜻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다.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토태되는 다수의 학생들은 소외를 느낀다. 이를 비관하는 일부 학생들은 범죄의 길로 빠지거나 자살을 하기도 한다.
사회는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학생들을 노력하지 않았거나 타고난 머리가 나쁘기 때문인 것처럼 몰아세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기회가 균등하여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가 만약 그런 사회라면 굳이 학교에서 입시라는 이름으로 경쟁과 복종을 가르치지도 않을 것이다. 또 도태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학교 교육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즉 계급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지배할 사람과 지배받을 사람으로 나뉘어져야 함을,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가르친다.
아이들의 미래는 자신의 지적 능력이나 노력에 따라서가 아니라 부모의 계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과외는 이 과정의 한 복판에 있다. 부자집 아이들은 충분한 지원과 사교육으로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과는 이미 다른 조건에서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강남과 서초 등 8학군 지역에서 과외를 받는 학생은 61%, 경기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 지역은 73.85%로 부촌의 과외의존은 평균치를 훨씬 웃돌고 있다.
과외 금지 위헌판결에 대해 국민적 공분이 있었던 이유는 불평등한 사회와 계급교육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문제 해결을 위하여
공교육 부실화에 대한 국민적 반발에 부딪히자, 교육부는 2004년까지 34조 원을 투입해 공교육을 활성화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구체화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다.
정부는 지난 5월 15일 금융기관 부실 정리를 위해 올해안에 공적자금 30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미 금융기관 부실 정리를 위해 공적자금 64조 원과 공공자금 25조 8천억 원을 투입했다.
부실금융을 살리기 위해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격으로 돈을 쏟아 부으면서 교육재정은 여전히 4.3%에 머물고 있다.
전교조는 위기에 처한 공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종합적인 교육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요구안이 관철될 수 있도록 위원장 삭발을 비롯해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재정 6% 확보, 중학교 의무교육 전면 실시, 학급당 학생 수 30명 이하 감축, 교원의 법정 정원 확보, 육아교육 공교육화, 교원의 전문성 확보 방안 등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중요한 요구들이다.
올해 전국의 대학생들도 등록금 인상에 맞서 가열차게 투쟁했다.
이러한 저항은 경쟁을 부추기고 학부모에게 교육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시도를 좌절시킬 수 있는 힘이다.
헌법재판소의 과외허용을 계기로 표출된 분노는 그 동안 곪아 온 교육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다. 입시와 각종 시험을 통해 점수를 매기는 경쟁 교육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과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교육이 문제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는 교육이 사회의 특징을 그대로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온갖 불합리가 교육현실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교육의 진정한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체제의 변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험이나 평가를 통해 아이들을 등급 매기지 않고, 인간의 개성과 창의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은 사회의 근본적 변화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