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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노동자 인간선언 1987 노동자 대투쟁》, 《잃을 것은 사슬 뿐이었다》:
생생하게 기록한 87년 노동자 투쟁

한 혁명가의 말처럼 역사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재를 설명해 줄 뿐 아니라 현재를 변화시킬 열쇠를 제공해 준다.

그 열쇠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최근 출판된 양규헌의 《노동자 인간선언, 1987 노동자 대투쟁》(이하 《선언》)과 정병모의 《잃을 것은 사슬 뿐이었다》(이하 《사슬》)는 유익한 참고가 될 것이다.

70년대 말부터 노동운동을 시작해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경험하고 94년 전노협위원장을 지낸 양규헌과 1987년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건설의 선두에서 투쟁을 이끌었던 정병모의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한국 노동자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됐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노동자 인간선언: 1987 노동자 대투쟁》, 양규헌 지음, 한내, 294쪽, 15,000원 / 《잃을 것은 사슬 뿐이었다 ─ 현대중공업 87년 투쟁 기록》, 정병모 지음, 도서출판 광장, 412쪽, 20,000원

노동계급의 거대한 진출

《사슬》은 1987년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건설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조선소 공돌이’라는 천대까지 받으며 하루빨리 돈 벌어 도망갈 생각만 하던 노동자들이 투쟁 속에서 변화하는 과정은 인상적이다.

투쟁이 시작되자 노동자들은 평상시 회사 중역들이나 밟을 수 있었던 회사 운동장 잔디에 모여 그동안 쌓여 왔던 불만들을 토해냈다. 인사고과 폐지, 임금 인상, 두발 자유화, 식사 개선, 민주적 노동조합 건설 등 노동자들의 요구는 끝이 없었다.

노동자들은 지도부가 계획하지 않은 집회를 스스로 열거나 시청으로의 진출을 막는 지도부를 옆으로 들어 옮기고 거리행진을 할 만큼 높은 자신감을 보여 주었다. 《사슬》의 표현대로 투쟁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통제했고 노조 간부들은 그들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고 할만하다.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회사에, 그다음에는 현대 그룹을 대표하는 정주영에 그리고 경찰과 정부에 대항하며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연대의 중요성을 체득해 나갔다.

《선언》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상황을 지역별 투쟁 사례들을 통해 생생히 보여 준다. 울산의 노동자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노동자들이 보여 준 투쟁 사례들은 지금도 귀감이 될 만하다.

예컨대 인천의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문 앞 아스팔트 바닥에서 사측과 노조 지도부가 협상을 진행하도록 강제했고 그 결과 성과를 따냈다.

이리 후레아훼숀 노동자들은 7월에 회사의 노동자 탄압에 대한 국회 진상조사단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점거 농성에 돌입해 성과를 따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예전엔 구사대 역할을 했던 남성 노동자들이 8월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 동참하면서 더 많은 성과를 얻어냈다.

노스웨스트항공 노동자들은 회사의 분열 정책에 반대해 정규직과 파견 노동자들이 함께 파업을 벌여 정규직 전환과 임금 인상을 쟁취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운동과 노동계급 운동

《선언》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어느 날 갑자기 도래한 것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준비된 것”이라고 옳게 지적한다. 즉 70년대 민주노조운동과 80년대 크고 작은 투쟁들을 통해 발전해 온 노동자 투쟁이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선언》이 노동자 투쟁의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는 것은 《사슬》의 현대중공업 투쟁 이야기와 더불어 5·18 광주항쟁과 6월 항쟁 등 ‘민주화 투쟁’의 역사만 강조하고 노동자 투쟁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자유주의 또는 민중주의 입장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선언》과 《사슬》이 주로 노동조합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전체 노동계급 운동의 관점에서 87년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노동계급 운동은 노동조합 운동뿐 아니라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이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 등을 포괄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운동뿐 아니라 5·18 광주항쟁과 6월 항쟁도 노동계급 운동의 중요한 전통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 노동계급 운동은 노동조합운동으로만 발전해 온 것이 아니다. 70년대와 80년대의 한국 노동계급 운동은 경제 투쟁이 정치 투쟁에 영향을 주고 다시 정치 투쟁이 경제 투쟁에 영향을 주며 강화돼 왔다.

《선언》도 지적하듯이 1979년 YH 노동자 투쟁이 부마항쟁에 영향을 줘 ‘유신체제를 막 내리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지배자들의 분열을 비집고 분출한 투쟁의 정점에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선언》이 광주항쟁의 패배를 87년 광주 지역 노동자 투쟁이 크지 않았던 이유로 설명하는 것은 좁은 시각이다.

광주항쟁은 물리적으로 패배했지만, 이를 계기로 정치적 각성을 하고 노동계급의 중요성을 인식한 투사들이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한국 노동계급 운동은 정치적·조직적으로 더욱 강해진 점을 봐야 한다. 80년대 노동자 운동은 광주항쟁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광주항쟁의 영향으로 강화된 노동자 운동이 6월 항쟁의 배경이 되었고 이것이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현실에 맞다.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선언》은, 《사슬》을 쓴 정병모처럼, 6월 항쟁에 많은 노동자가 참여했던 것을 지적하며 6월 항쟁에서 노동자들의 역할이 결코 적지 않다고 옳게 지적한다. 그러면서 《선언》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6월 항쟁의 ‘연장’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노동자 대투쟁이 ‘민주화 투쟁의 전선 확대’로서 6월 항쟁을 ‘계승’했다고 보는 것은 정확한 평가가 아니다. 노동자 대투쟁을 노동자들이 자신들 고유의 요구를 내세운 독립적 투쟁으로 보기보다 ‘민주화 투쟁’의 연장으로만 보게 되면 노동자들이 민중 속의 일원으로 있어야지 고유의 요구를 내세우고 독립적으로 싸우면 안 된다는 민중주의 주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된다.

이 점은 《선언》의 노동자 대투쟁 평가를 보면 분명해진다. 《선언》은 노동자 대투쟁의 한계가 6월 항쟁이 가진 한계의 연장선에 있다고 주장한다. 6월 항쟁이 ‘군부 독재 타도’로 나가지 못하고 6·29선언 이후 ‘민주세력들(민주화추진협의회)’이 투쟁을 멈추어 ‘민중 진영의 통일된 대응’이 없었기 때문에 ‘지배세력의 공세’가 급속히 진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9월 들어 노동자 대투쟁이 하강하기 시작한 것은 단지 ‘지배세력의 공세’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호황이라는 조건으로 자본가들도 양보의 여지가 있었고(노동자들이 싸우기도 전에 미리 양보한 사업장들도 여럿이었다) 9월 들어 파업이 타결되는 수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투쟁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의 주축이었던 민주당 인사들은 6·29 선언 이후 노동자 대투쟁에 대해서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으려 하지 말라며 노동자들의 자제를 요구했다. 87년 11월 ‘제3자 개입 금지’ 등 대표적인 악법 조항들이 포함된 노동법이 민주당의 동의 속에 통과됐는데 노동자 투쟁에 대한 민주당 식 ‘대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민주당과 ‘통일된 대응’을 하고자 했다면 노동자 대투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민중의 한 부분인 중간계급은 그들의 계급적 특성상 노동자계급의 힘이 강력할 때 따라오는 경향이 있다. 울산에서 노동자 투쟁이 고양될 때 상점·식당·약국 주인들은 노동자 투쟁을 지지했는데 이것이 하나의 예다.

‘군부 독재 타도’는 물론 필요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6월 항쟁의 승리를 바탕으로 투쟁을 더 전진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군부 독재를 진정으로 끝낼 수 있는 세력은 누구이고 그들의 힘을 어떻게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가였다. 바로 노동계급의 힘 말이다.

6월 항쟁에 참여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노동자들이 자신들 고유의 요구를 내세우고 투쟁하면서 노동계급의 힘이 강화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6월 항쟁의 성과도 유지될 수 있었다.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의 결합이 노동계급 운동의 강화에 중요하며, 노동계급의 힘이 최대한 발휘돼야 진정한 사회 변화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위력적 1987년 8월 18일 현대중공업에서 출발해 남목고개를 넘어 시청을 향해 행진하고 있는 울산 현대그룹 노동자들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혁명적 정치와 조직

《선언》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인 자주성과 민주성, 계급성과 투쟁성’을 되살려 내는 것이 노동자 대투쟁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사슬》은 ‘노동조합은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로 노동조합운동이 사회변화와 노동계급 운동 발전에 이바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전투적일지라도 노동조합운동이 사회의 진정한 변혁으로 가는 지름길을 만들어 주진 못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요구에 따라 투쟁하지만, 사용자와 협상하고 타협해야 하는 일상적 압력도 받는다. 이 때문에 관료주의와 개혁주의가 나타나기도 쉽다. 투쟁적인 지도부가 들어서도 투쟁이 어정쩡하거나 불가피하지 않은 타협으로 끝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노동조합은 광범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계급 내의 불균등한 의식을 반영하게 되고, 대중의 지지를 받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활동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전교조 지도부가 비정규직 교사·강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한 것은 최근의 예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불균등한 의식에 개입해 계급적 단결을 일관되게 옹호할 수 있는 혁명적 정치와 조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