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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트로츠키 외, 《그들의 윤리, 우리의 윤리》:
인간 해방과 노동계급 자력해방 사상에 기초한 마르크스주의 윤리

《그들의 윤리, 우리의 윤리》 레온 트로츠키 외 지음, 최일붕 편저, 책갈피, 10,000원

트로츠키의 《그들의 윤리, 우리의 윤리》는 군자인 체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윤리를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날카롭게 비판한 저작이다. 이 책이 쓰여진 때는 모스크바 재판이 한창이던 1938년, 스탈린 체제의 끔찍한 실상이 일부 드러나던 때였다. 1936년부터 시작된 모스크바 재판은 스탈린의 유혈 숙청을 정당화하기 위한 여론 조작용 재판이었다. 당시에 자유주의자들은 스페인과 프랑스, 미국 등지의 혁명이나 계급투쟁 분출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 쪽으로 좌경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꾸준히 우경화하고 있었다. 그들의 우경화는 1950년대에는 우르르 몰려가는 수준으로 가속된다.

트로츠키는 1930년대 내내 스탈린 체제의 참상을 좌파에 경고하면서 십년 동안 홀로 싸웠다. 그는 무시당하고, 매도당하고, 심지어 망명하는 나라마다 따라다니는 소련 보안경찰의 괴롭힘을 당했다. 그도 잘 알고 때로는 자기 저작에서 언급했듯이, 스탈린이 보내는 히트맨(암살자)들이 그를 바싹 추격하고 있었다. 결국 1940년 그는 그런 암살자의 하나이자 당시 소련 보안경찰 NKVD(내무인민위원부) 요원 라몬 메르카데르에 의해 멕시코 망명지에서 살해당한다.

당시 서구 자유주의자들은 자기 국가가 소련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스탈린과 소련 체제의 만행을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1934년 가을부터 냉전 시작 때까지 약 12년 동안 스탈린의 소련공산당과 각국 공산당들은 민중전선이라는 이름의 정책을 추구했는데, 이 정책에 따르면 전 세계의 공산당들은 소련의 민간외교 사절이나 소련의 국경수비대 구실을 해야 했다. 자유주의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처음에 약간 경계하다가 이내 우호적으로 대했고, 소련을 외교상의 우방으로 여겼다. 이제 트로츠키가 피에 굶주렸거나 정신 나간 몽상가로 여겨졌고, 스탈린보다 더 사악한 인물 취급을 받았다. 사실, 레닌과 함께 10월혁명을 이끈 게 트로츠키였고 혁명 직후 내전에서 적군 사령관으로 활약한 게 트로츠키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반응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

트로츠키는 《그들의 윤리, 우리의 윤리》에서 볼셰비키가 ‘비윤리적’이라는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비난을 논박한다. 그는 먼저, 이들의 설교가 이들의 중간계급 기반과 관계있다고 지적한다. 중간계급은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의 투쟁의 본질에 관해 진정으로 인식하는 게 별로 없다 보니 양비론을 취하기 십상이다. 특히 ‘국민’이나 ‘시민’ 운운하며 계급간 충돌의 예각을 무디게 만들려고 애쓴다. 그러면서 위대한 역사적 운동에 대한 무지,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사고, 우쭐해 하면서도 옹졸함, 정치적 비겁함 등의 모습을 보인다. 또한 연구실과 도서관의 학술 서적과 학술지, 상식 등과 함께 평화를 누리도록 역사가 자기들을 그냥 놔두기를 바란다. 1920~30년대 같은 격동기에는 그게 거의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혁명과 반동 사이에서, 차르 체제와 볼셰비키 체제 사이에서, 사회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 사이에서 친중간계급 자유주의자들은 생각이 짜증스러울 정도로 자꾸 바뀌고 흔들리면서 둘 다 똑같다며 당혹해 한다.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비난은 볼셰비키가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예수회의 악명 높은 금언을 따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트로츠키의 논박은 여러 측면으로 제기됐는데, 그중 하나는 역사적 비방에 맞서 예수회를 (다소 농담조로) 변호하는 것이었다. 목적이 수단을 규정하는 것은 맞다. 트로츠키는 당시에 잘 알려진 테러 사건을 예로 든다. 1938년 한 유대인 청년의 나치 외교관 암살 사건이 그것이었다. 이 사건을 윤리적 측면에서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암살로 제3제국은 전혀 약화되지 않았다. 사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치는 그해 11월 9~10일 독일 전역에서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했다(이른바 Kristallnacht, 즉 “깨진 유리의 밤”). 이 사건들은 개별적 테러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닐지라도 정치적 효과는 없거나 아니면 아예 역효과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의 목적은 노동계급의 승리와 이를 통한 인간 해방이다. 따라서 목적은 수단을 규정한다. 즉, 노동계급의 해방은 스스로 이룩해야 한다.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 그는 군자인 체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윤리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보편 윤리?

트로츠키는 친자본주의 윤리학도 비판한다. 그는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낯익은 이슈들을 다룬다. 가령 십계명이나 칸트가 말한 “지상 명령” 또는 “양심의 절대 무조건적 도덕률” 같은 보편적인 도덕률을 우리가 따르려 한다면 명백한 문제들에 부딪히게 된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은 옳은 말인 듯하지만 정당방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또한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시민군은 살인자들이 아니었다. 이렇게 무조건성·절대성이 통하지 않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보편 윤리를 받아들이는 까닭은 계급 지배를 정당화하는 전통의 일부로서 그런 관념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피지배자들을 향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증파하고 한반도 주변에서 군사주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제국주의자들을 향한 것은 아니다.

무조건적·절대적 도덕률보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표어로 요약되는 공리주의 윤리가 있다. 벤담의 공리주의 윤리는 에릭 홉스봄이 말한 “이중혁명,” 즉 프랑스 혁명 및 산업혁명과 동시대 산물이다. 그래서인지 무조건적·절대적 도덕률보다 덜 이상론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자본가 계급은 19세기 초에 리카도의 노동가치론과 함께 공리주의도 버리고 다시 종교와 그 절대적 도덕으로 돌아갔다. 물론 공리주의도 사고의 출발점을 개인으로 잡는다. 그렇다면, 수많은 개인들의 행동 각각에서 비롯하는 인과 사슬을 도대체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진부한 사례를 들면, 물에 빠진 아이를 구했는데 걔가 나중에 연쇄살인범이 될 줄 어떻게 알겠는가?

벤담이 보기에, 행동의 결과들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우월한’ 소수 지배계급의 몫이다. 그리고 그들이 소유한 공장은 전 인류에 좋은 것이다. 트로츠키는 공리주의가 말하는 ‘최대 행복’은 실제로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를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공리주의 윤리의 사각지대는 벤담 자신에게도 천대를 받았다. 가령 재소자들을 위해 그가 한 일은 교도소들을 설계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트로츠키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런 체제는 강제력만으로는 유지되지 못한다. 도덕이라는 접착제가 필요하다. 이를 생산하는 것이 바로 도학자(道學者)와 윤리학자들이다. 이들은 모든 무지갯빛을 가지고 놀지만, 결국 계급 사회에 항복하라고 전도한다. 그러나 도학과 윤리학으로는 역사 속에서 작용해 온 힘들을 분석하고 사회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사회를 명확하게 알아야 비로소 사회가 지금 나아가고 있는 방향과 사회가 장차 달리 나아갈 수도 있는 방향을 이해할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지배자들에 의한 천대와 억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계급들 간의 투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음도 알 수 있다. 특히, 지금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자들도 과거엔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지배자들과 생사를 건 쟁투를 벌인 적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는 옛날부터 있던 게 아니거니와 영구히 존속할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역사 전개 방향과 가능성을 아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목적과 목표가 있다. 인간 해방과 노동계급 자력해방 말이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은 마련돼야 하는데, 바로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이다. ‘그들의’ 윤리와 대비되는 ‘우리의’ 윤리는 이 과제로부터 도출된다. 만일 어떤 행동이 이 과제를 방해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윤리적이지 못한 것이다.

계급투쟁

방해한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사회주의 운동과 경쟁하는 운동 또는 행동이 있다.(경쟁 관계이므로 때때로 방해하기도 한다.) 테러는 노동계급을 대체한 소수 정예가 개인들을 타깃으로 삼고 모의를 통해 조직하는 군사 행동이다. 개혁주의는 노조 지도자들이 배출한 소수 의원들이 노동계급을 대신해서 하는 개혁 입법 운동이다. 스탈린주의는 지배 국가관료의 정당인 공산당이 노동계급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며 노동계급을 억압·착취하는 사회 체제 또는 그 체제를 방어하는 운동이다.

이 상이한 세력들에는 자기 나름의 윤리가 있다. 마르크스주의 윤리와는 일부 공통되기도 하고 일부 상반되기도 한다. 트로츠키는 이 경쟁 윤리들 가운데 특히 자유주의자들의 윤리를 주로 다룬다. 그런데 트로츠키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 개혁주의(주류파)의 윤리는 자유주의적 윤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트로츠키의 이 책은 흔히 개혁주의 세력과 함께 공동 활동을 하면서도 개혁주의적 실천에 종종 반대해야 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훌륭한 분석 도구이자 행위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편저자는 이 책과 함께 다른 몇몇 글들도 함께 묶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이 책이 연대의 원칙과 윤리가 확립되는 데 일조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