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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인권운동 지도자들과 문재인 정부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 문재인은 공개적으로 “동성애 반대”를 밝혀, 동성애 차별 반대 운동 측의 공분을 샀다.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사실상 반대했는데, 이는 2012년 대선 때보다 후퇴한 입장이다. 차별금지법은 노무현 정부 때 입법 예고된 이래로 우파의 눈치를 보느라 수년째 표류해 왔다.

그뿐 아니라 백남기 농민 사망 책임자는 아직 처벌받지 않았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양심수도 전혀 석방되지 않고 있다.

안타깝게도 주요 인권단체 지도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이런 위선에 비판의 날을 세우길 꺼린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와의 협력적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9월 19일 국회 앞에서 열린 ‘혐오에 편승하며 인권을 인질 삼는 퇴행을 멈춰라! 인권, 시민사회단체 대국회 규탄 기자회견’ ⓒ조승진
ⓒ조승진

궤적

한국의 인권운동은 크게 보아 지금까지 세 시기를 거쳤다. 1970~80년대 인권운동은 군부독재 반대 민주화 운동의 희망이자 기수였다. 또, 군사독재 잔재 청산 운동의 일부로서 1990년대에도 민중운동에 큰 공헌을 했다.

당시 인권운동은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대중운동과 함께하며 이들의 권리 획득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인권운동이 반정부 운동과 함께하는 전통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등장과 그 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을 계기로 2000년대부터 인권운동은 대중 투쟁과 항의보다 개혁입법으로 강조점을 옮겼다. 이때부터는 엔지오(NGOs)라고 불러도 되는 사상과 실천으로 급속히 변모한다.

이처럼 국가 정체(政體)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전환하면서 인권운동은 엔지오로, 개혁주의적으로 변모했다. ‘인권운동사랑방 20년을 돌아보다’도 이렇게 기술(記述)한다. “인권의 제도화가 눈에 띄게 이루어졌다. 정부기구, 각종 위원회, 제도적 절차들이 세상을 바꾸는 유력한 수단으로 부각되었고 운동의 의미는 좋은 정책을 관철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지도적인 인권운동가들의 정치는 갈수록 의회와 국가기구·국제기구 등에 로비를 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법·제도 개선에 몰두해 왔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유주의적 친자본주의 정당들과의 공조를 통한 국회 대응을 중시하는 태도가 자라났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인권운동 지도자의 일부를 체제 안으로 포섭하면서, 정부와 ‘거버넌스’(이하 협치)를 추구하는 전략이 인권운동 안에서 강화됐다.

인권 엔지오 활동가들은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를 비롯해 주로 민주당이 운영하는 지방정부의 관련 위원회에 참여를 늘려 왔다.

그러나 9년 간의 이명박근혜 우파 정부는 엔지오들의 협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또, 인권운동의 제도화라는 측면에서 인권 엔지오들이 성과라고 봤었던 국가인권위원회도 사실상 정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구실을 했다.

게다가 용산참사, 진보당 강제 해산, 백남기 농민 살인 진압, 제주 해군기지, 쌍용차 파업 폭력 진압 등 국가 폭력이 계속되면서 우파 정부와의 협치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거의 10년에 걸친 이런 경험이 ‘민주당은 그래도 다르다’는 식의 생각을 자라나게 했을 법하다. 그래서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지지하고, 민주당이 계속 집권해 우파 정부가 다시 못 들어서도록 민주당 정부의 성공에 협력으로 일조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커질 법하다.

그렇다면, 문재인 민주당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노동자연대 같은 좌파가 눈엣가시로 여겨질 법도 하다.

포퓰리즘 (민중주의)

인권 엔지오 지도자들이 민주당을 협력과 지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의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이 민주당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가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다.

인권 엔지오 지도자들은 퇴진행동이 활동의 초점을 민주당과의 공조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폐 청산도 당시 퇴진 운동이 아래로부터 힘을 강화해 성취할 과제로 보기보다는 민주당이 주도해 국회에서 통과시킬 개혁입법 과제로만 봤다.

그들은 퇴진행동을 이런 방향으로 이끌려고 끊임없이 애썼다. 그래서 퇴진행동 주최 대중 집회에 주류 야당 국회의원들과 대선후보들을 연단에 올리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인권 엔지오 지도자들은 좌파와 노동단체들의 주도권을 계속 문제 삼았다. 좌파와 노동단체들이 박근혜 퇴진 운동을 발의해 퇴진행동을 출범시키고 전국 230만 집회로 성장하게 한 선구자였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인권 엔지오 지도자들 자신은 퇴진 운동에 매우 굼뜨게 동참했으면서도 말이다.

적폐 청산도 대중의 지지를 거리로 끌어내어 운동을 아래로부터 강화하려 애쓰기보다는 민주당 지도부와 면담해 약속 받아 내기를 더 중시했다.

자연스레 이 과정에서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을 공산이 큰 노동개악 철회, 한상균 위원장 석방, 진보당 지도자 석방 문제 등을 퇴진행동의 주요 요구의 일부로 내놓기를 거부했다.

심지어 주말 촛불집회 연단에 노동운동가 세우기를 반대했고, 연설 중에 한상균 위원장 석방 등을 주장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런 방침은 운동이 아래로부터 성장하는 것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효과를 낸다. 그래서 노동자연대는 퇴진행동 내 온건파들이 민주당과의 공조를 강화하려는 것에 반대했고, 그러한 시도를 일부 좌절시켰다.

그러나 12월 초순 철도 파업을 중단시키려는 자유주의자들의 시도에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개혁주의 성향의 노조 지도자들도 가세해 성공하고, 국회 탄핵소추가 이뤄지자 12월 중순부터 운동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운동의 전망과 목표를 둘러싼 논쟁은 박근혜 탄핵 후에도 계속됐다. 가령 퇴진행동 자진해산 문제가 그런 이슈였다. 저명한 인권 엔지오 지도자는 박근혜가 탄핵됐으므로 퇴진행동은 즉각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민주당이 부담 없이 조기 대선 국면을 주도하도록 하고 싶은 목적 때문인 듯했다. 퇴진행동이 유지되면 민주당 대선후보가 그 눈치를 다소 봐야 하고, 이는 사회 주류 측으로부터의 득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노동자 투쟁이 재발하기라도 하면 더 큰 낭패일 수도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노동자연대는 정권이 확실히 바뀌기 전까지는 적폐청산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퇴진행동이 당분간 해산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노동자연대 측 파견자들은 3월 11일을 마지막 집회로 삼자고 주장한 위 인권 엔지오 지도자가 3월 11일 퇴진행동 집회 사회자로 부적절하다며 반대했다.

이후 황교안의 은밀한 행보, 우익측 태극기 집회,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의 반동 공세, 야권 대선후보 문재인·안철수의 우경적 자세는 퇴진행동이 자진해산하지 않고 운동을 이어간 것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물론 인권 엔지오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전략에 훼방을 놓았다고 보고 노동자연대에 앙심을 품었을 법하다.

정체성 정치와의 융합

인권운동은 2000년 이래 장애인·동성애자·이주자 등 당사자운동과 결합하며 영역을 확대해 왔다. 특히 장애인 이동권 보장,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서 주도적 구실을 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과도 결합했다.

훌륭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권운동가들은 ‘당사자운동’의 정체성 정치를 대폭 수용했다. 정체성 정치는 사회의 근본 분단이 계급이라는 생각을 거부하며, 특정 차별을 겪는 사람들의 특수한 정체성에 호소해서만 운동을 건설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정체성 정치는 계급을 거부하고 각각의 특정한 차별을 강조하므로, 여성과 성소수자 등의 특수한 정체성에 따라 운동을 파편화시키고, 그 특수한 정체성 안에서는 계급을 뛰어넘는 단결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계급 동맹을 고무해 개혁주의 사상을 수용하게 된다.

자본과 노동의 계급 관계를 중심축으로 삼아 사회를 분석하고 그에 걸맞은 전략을 세우는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이 협소할 뿐 아니라 심지어 차별을 강화한다고 보는 것도 이런 관점 때문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 따라 인권 엔지오의 주요 지도자들은 최근 ‘개혁적’ 권력자들과 동맹을 맺기 시작했다. 그래서 심지어 다국적기업의 후원을 기꺼이 받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인권재단사람과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이 주관하는 성소수자 인권 사업이 구글의 재정 후원을 받은 것이 대표 사례다. 그때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기금을 마련해 준 구글에 감사하다. 이 기금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는 인권운동이 점점 자본과 국가와 타협하면서 급진성과 투쟁성을 잃기 시작한 전조인 듯하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을 보면,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중 투쟁을 펼쳐야 인권이 침해되지 않고 더 나아가 실질적 개선도 이룰 수 있었다.

2006년에만 해도 위 박래군 당시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전환기 인권운동, 추상적 보편성 뚫고 민중생존권과 결합하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권의 역사는 민중들의 소수특권층에 대한 피어린 투쟁의 역사였다. 이를 현재의 인권운동도 계승해야 한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인권운동이 더 넓은 사회 변혁 운동과 스스로 분리되면서, 조각난 운동의 한 부분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동전의 앞뒤 관계인 움직임은 노동계급의 핵심적 중요성이라는 사상에 근거한 혁명적 좌파를 백안시하는 것이다.

집단따돌림(배제) 운동

인권 엔지오들이 주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지금 안타깝게도 난관에 부딪혀 있다. 정부는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동성애 차별 폐지는 물론이고 차별금지법 제정 자체를 사실상 지지하지 않는다는 게 갈수록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협치해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게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립적인 대중 운동을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을 노선일 텐데, 인권 엔지오 지도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협력이라는 큰 전략을 수정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러니 더더욱 문재인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위선과 배신을 들춰 내어 비판하고 대정부 독립적 투쟁을 주장하는 노동자연대 같은 혁명적 좌파의 존재가 걸림돌로 여겨질 것이다. 즉, 운동 전망에서 문재인 정부냐 좌파와의 공동 활동이냐 하는 양자택일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주요 인권 엔지오 지도자들이 주도해 차별금지법 제정 연대체에서 노동자연대를 배제하려 한 것은 이런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노동자 연대〉신문 최미진 기자가 쓴 책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논쟁》(책갈피 간, 2017)의 폐기 운동에도 참가했다. 책갈피 출판사는 이 운동에 대한 반박 성명서에서 자신이 출판한 도서가 명예훼손법에 저촉되지도 않고, 책임성과 공공성이라는 윤리를 존중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인권운동가들이 출판물 표현의 자유 제약에 아무렇지도 않게 동참한다는 게 놀라운 일일 따름이다.

이런 인권 엔지오 지도자들의 앞뒤 안 맞는 정치와 달리, ‘인권’이 진정으로 보편적 언어가 되려면 계급적 관점과 실천이 필요하다. 착취와 소외, 차별의 근원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반대해야 하고, 그러려면 이윤 체제를 돌아가게 하는 핵심 동력인 노동계급 투쟁과 연대해야 할 것이다. 지배계급 일부와 동맹하지 말고 말이다. 그래야 인권운동도 전진할 수 있다.

그러려면 당장에는 문재인 정부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