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
심오한 것 같지만 별 뜻이 없는 ‘4차 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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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강명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어가 ‘심오롭다’고 표현했다. ‘심오롭다’는 말은 심오한 것 같지만 사실은 별 뜻이 없다는 야유다. 그는 몇십 년 전의 유행어 ‘제3의 물결’과 4차 산업혁명이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책의 전체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바로 ‘심오로운’ 4차 산업혁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과학기술을 전공한 교수, 출판평론가, 출판마케팅에 종사하는 사람 등)이 요즘 핫이슈인 4차 산업혁명을 다룬 글을 모은 것이다. 이 책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유독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론이 유행하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임태훈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실제 내용은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많이 겹친다고 지적한다. 교양과학자 이정모도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신앙이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마치 창조경제의 허언처럼 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문재인의 ‘창조경제 2기’ 정책 때문에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론이 인기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백미는 부록인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이 쓴 이 글은 한국에 4차 산업혁명 지도사 자격증이 있고, 어떤 학교에서는 4차 산업혁명 전공과정이 생겼다고 폭로하면서 시작한다.
이제 얼추 200주년을 맞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간략하게 재평가하는 글도 흥미롭다. 손화철 한동대학교 교양학부 기술철학 교수는 정체 불명의 지도자 ‘러드’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러다이트 운동의 지지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하는 물음을 던진다. 손 교수는 러다이트 운동의 직공들은 쇳덩어리 기계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 직공들의 분노는 기계를 들이고 값싼 노동력을 사용해서 이윤을 극대화하려 한 자본가들에게 향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손 교수는 러다이트 운동을 기계 파괴주의 또는 기술 혐오주의라는 딱지를 붙인 것이 일종의 모함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쟁점은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과학기술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 하는 문제다. 손 교수는 4차산업혁명이 정보와 권력의 극단적인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일면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빨리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2의 잡스와 하사비스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통제, 견인, 선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하지만 어떤 사회적 합의인지 한걸음 더 들어가지는 않고 있는 게 이 책의 약점이다.
트로츠키는 과학과 기술이 미신을 허물어뜨린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사회의 계급적 성격이 이런 과학기술의 구실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한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기술인 전파를 통해 교회 예배가 방송된다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4차 산업혁명론의 거품을 걷어내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하지만 대안은 취약하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좋을 것 같다.
* 이정구 국립경상대(경남 진주 소재) 대학원 전 정치경제학 강사는 최근 정성진 교수를 공개 비판한 일로 더는 강의를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