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줄타기에 여념이 없는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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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의 세월호 희생자 유골 발견 은폐 파문으로 지난 주말, 정부 취임 이래 최대 시험대에 섰다.
그 사건은 문재인 정부가 등장하는 데서 크게 빚진 세월호 참사와 직결된 일로, 그로 인해 문재인 정부 지지 기반의 큰 부분이 이반하는 결과가 빚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관련 기사: 김승주, ‘해수부 장관, 세월호 유해 발견 은폐 알고 있었다’). 특히, 해수부 장관 김영춘이 여권 주요 인사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그래서 11월 26일 청와대는 노무현이 2004년 8월 이라크 파병 사실을 덮고자 국가보안법 “개정”에 착수하겠다고 해 4개월간 진보진영을 자기에게 묶어 뒀던 것과 비슷한 책략을 부리기로 했다.
당시 진보진영은 노무현의 파병에 크게 환멸을 느끼고 그에게서 이반하려던 찰나에 보안법 “개·폐”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그 희대의 악법 폐지 운동에 나섰다. 그해 12월 중·하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매서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민통계 활동가 5000명과 다함께(노동자연대의 전신) 회원 300명 등 민주노동당원 중심의 시위대 6000명이 며칠 동안 보안법 폐지 촉구 집회를 열었다. 결과는 노무현에게 우롱당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말이다.
해수부 은폐 파문 확대를 막고자 청와대는 낙태죄가 “부작용이 많으므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다”고 서둘러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진보 측 무마하기에는 보수 측 무마하기도 수반돼야 했다. 특히 낙태죄 완화(또는 그 제스처!)에는 그리스도교 우파를 무마해야 했다.
그래서 민정수석 조국은 마치 가톨릭 교회 프란치스코 교황(이하 교종)이 낙태 허용을 시사하기라도 했던 양하는 냄새를 풍겼다.
그리고 개신교 우파를 무마하고자 청와대는 종교계 요구를 대폭 수용한 반쪽짜리 종교인 과세 방안을 발표했다. 악명 높은 개신교 우익단체 한기총 등은 자신들의 “요구가 대폭 반영돼 다행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 측은 조국의 책략에 발끈했다. 반박으로 한국 가톨릭 교회는 낙태죄 폐지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전국 교구에 100만 서명 운동을 지시했다.
사실 가톨릭 교종은 낙태를 허용한 적이 없다. 만약 그랬다면 가톨릭 교회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프랑스/오스트리아계 브라질인으로 노동자당(PT) 지지자였던 미카엘(미셸) 뢰비는 그의 저서 《신들의 전쟁》(그린비, 2012)에서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심지어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조차 상당 부분 받아들였어도 낙태 문제를 포함한 전통적 가정 가치관 문제에서는 보수적 입장을 유지했다고 지적했다.
모르면 몰라도, 가톨릭 교회가 낙태 허용 입장을 취하려면 교종의 입장 변화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교황 무오류’ 교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당
세월호 참사 항의 중에 방한한 가톨릭 교종의 발언이든, 지금 미얀마 방문 중인 (로힝야 관련으로 기대되던) 그의 발언이든, 조국이 거두절미하며 인용한 그의 발언이든 가톨릭 교종이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들에 대해 직설을 발화하는 일은 없다.
지배자들이 책망받기를 원하는 고통받는 사람들은 교회 지도층에게서 그런 예언자를 발견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노동 관련 개혁입법 문제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개악 시도와 이를 위한 포퓰리즘적 줄타기가 가관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유지시키고자 근로기준법 개악을 기도하고 있는 집권당은 건설근로자법 개정을 내세워 온건 노동계를 저당 잡힌 신세로 만들려 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 운동도 이런 덫에 유의해야 한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매우 중요하다. 바로 그렇기에 낙태죄 폐지 운동은 민주당 정부에 저당 잡히지 않도록 그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특히, 태아 대 여성 ‘이분법’의 지양 따위 운운하는 중도파의 본질 흐리기에 시간 낭비를 해선 안 될 것이다.
또한 국가와 남성에게 모두 책임을 묻기보다 국가에 책임 묻기에 집중해야 한다. 여성의 삶과 건강은 개혁가인 척하는 위선자들의 장기판 졸이 되기에는 너무도 사회에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