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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제재는 평범한 북한 주민에게 재앙일 뿐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와 북한 정권의 핵·미사일 우선 노선으로 피해를 보는 건 북한의 평범한 주민들 ⓒ출처 Matt Paish (플리커)

미국 정부와 의회 내에서 대북 선제 타격론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는 지금이다. 미국의 대북 압박 수준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올해 9월 채택된 유엔 제재 결의안(2375호)이 북한의 주요 수출품인 의류·섬유의 수출까지도 금지한 사정인데도 말이다.

미국뿐 아니다. 유럽연합도 모든 원유·석유제품 수출 금지 등 현 유엔 대북 제재보다 수위가 높은 독자 대북 제재안을 채택해 실행하기 시작했다.

문재인도 대북 제재 수위 높이기에 가세했다. 대북 제재 수위를 높여야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나오게 할 수 있다면서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게 대북 원유 공급을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시리아에서 병원과 민간인 주거 시설에 집속탄을 투하하는 푸틴의 입에서 “북한의 민간인 피해” 운운하는 기막힌 장면이 연출됐다.

트럼프는 중국에 대북 원유 공급을 완전히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과연 중국이 그렇게 할까? 중국은 북한 핵·미사일 개발이 탐탁지 않아도, 미국 주도의 대북 봉쇄를 반길 수는 없는 처지다. 미국이 북한을 옥죄는 근본 이유가 바로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 때문 아닌가. 당장 미국의 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가 중국 기업을 향해 있지 않은가.

더욱이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면,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는 중국으로서는 막대한 정치적·군사적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대에 비공식 무역 통로가 확대된 것도 중국 대북 제재의 한계로 지적돼 왔다.

또, 대북 제재에 직면해 북한 지배자들은 북한 사회 내부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핵 보유 의지를 높이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다.

2016년 영국 신문 〈가디언〉의 기자 사이먼 젠킨스는 ‘실패한 대북 제재, 그만 끝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 이란, 미얀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이라크, 세르비아, 리비아, 시리아 등에 경제 제재가 시행됐지만 대부분 역효과를 낳았고, 내부적으로는 제재 대상 정권과 그 정책이 강화되는 쪽으로 귀결됐다.”(〈가디언〉 2016년 9월 9일치)

베이징대학교 진징이 교수가 전한, “핵 개발을 하기에 제재를 받는 게 아니라, 미국이 제재로 자기들의 안보를 위협하기에 핵 개발을 한다”(〈한겨레〉 2017년 12월 4일치)는 북한 관변 학자들의 논리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다.

거의 사반세기 동안 시행된 대북 경제 제재는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위기를 고조시키는 한 원인이 됐다. 어떤 국가(이스라엘, 인도)에는 핵무기 개발을 묵인해 주고, 어떤 국가(파키스탄)에는 경쟁국(소련)의 영향력 차단을 위해 경제 제재를 가하다가 결국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주는 게,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실전에서 사용한 유일한 미국의 ‘비핵화 원칙’이다.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에는 어떤 정당성도 없다.


“민간인 피해 최소화”는 거짓말

경제 제재로 정작 고통받는 쪽은 북한의 평범한 주민들이다. 세계적 보건 학술지 《랜싯》의 편집장 리처드 호튼은 얼마 전 트럼프의 대북 경제 제재를 격렬하게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보건에 대해서는) 모자보건에 대한 접근성, 식량의 불안정성, 자연재해에 대한 취약성, 대기 오염, 담배 규제, 필수 구명용품의 절대 부족, 허술한 병원 간 의뢰 체계 등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 지금 북한을 둘러싼 논의에 이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국제 차원의 안전 보장과 국내 차원의 인간 보장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에 계속 실패하면, 이는 북한 주민을 파멸로 이끄는 배신이다.”(〈프레시안〉 9월 11일치에서 재인용)

위선이게도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를 발표하면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경제 제재는 모두 주민들의 불편과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유엔 제재위원회는 이른바 민군겸용 금지 목록을 이용한다. 그 목록에 따르면, 의약품과 관련 예비 부품, 심지어 의약품을 운반하는 냉장 트럭 등이 모두 군사적 용도로도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물품으로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목록이 북한에도 적용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에서 7년간 제약회사를 경영했던 스위스 사업가 펠릭스 아브트는 대북 경제 제재가 북한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를 지적한 바 있다. “2008년 유엔의 대북 제재로 … [제약회사] 약품 실험에 필요한 특정 화학물질을 더 이상 수입할 수 없었다.” 또, 2012년 7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보고서에는 담배, 뱀술, 중고 피아노도 사치품으로 분류돼 제재 품목에 포함돼 있다(《평양자본주의》, 펠릭스 아브트 지음,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15)

그 결과 유엔 세계식량계획은 2011년 북한에서 필수 의약품이 수요 대비 약 30퍼센트 정도만 공급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기대수명은 1993년 72.7세에서 2008년 69.3세로 떨어졌다(《장마당과 선군정치》, 헤이즐 스미스 지음, 창비, 2017).

경제 제재는 제국주의가 그 지역의 주민들의 생명을 옥죄는 사실상 살인 행위다. 이라크에서 경제 제재 때문에 죽은 사람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서 죽은 사람보다 더 많았다.

2003년 이란 지진 때 그토록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도 사실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 탓에 건축 자재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서였다. 2012년 10월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는 ‘제재, 미국이 어떻게 이란 일반 시민들을 힘들게 하는가’ 하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가 이란 주민에게 생필품 부족과 항상적 물가인상의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런 고통을 북한 주민들도 수십 년 동안 겪고 있다.

경제 제재는 북한 주민들의 희생과 생명을 파괴하는 ‘폭탄 없는 전쟁’이다. 이런 전쟁에 문재인은 대북 제재를 ‘대화로 가는 길’이라면서 가세하고 있다. 평화 운동이 대북 제재 반대에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