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든 국내든 사모펀드에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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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가 격렬한 논쟁으로 빠져들고 있다. 외국자본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오마이뉴스〉 4월 14일치). 국세청이 사모펀드 두 곳에 세무조사를 시작하자 논쟁은 더 확산되고 있다.
1998년에는 국민의 80.6퍼센트가 외국자본에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83.6퍼센트가 비판적으로 돌아섰다. 사람들의 태도가 이처럼 바뀐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뉴브리지캐피털은 제일은행을 5천억 원에 사서 1조 6천8백억 원에 되팔고도,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세금 한 푼 내지 않았다. 제일은행 노동자들의 ‘눈물의 비디오’로 상징되는 대량해고와 공적자금이 수익의 원천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외국계 사모펀드는 공적자금이 들어간 부실기업을 인수해서 구조조정과 대량해고를 한 후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이번 세무조사를 정부의 외국자본 규제강화 의지로 보는 것은 섣부른 생각이다.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하는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외국자본을 “배척하지 않겠다”고 했다. 노무현은 4월 14일 “정상적인 영업이익은 많건 적건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며, “정부는 국부유출 용어를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 금감위원장도 24일, “외국자본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규제제도를 도입하거나 강화하지 않을” 방침을 분명히 했다.
국세청이 론스타와 칼라일에 과세한다 해도, 외국계 사모펀드의 한국시장 ‘탈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 2002년에도 11개 외국계 금융기관과 사모펀드를 조사했다. HSBC와 한국마이크로소프트사가 걸려서 세금을 냈다. 작년에는 일본 정부가 론스타저팬에 세금을 추징했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투기자본은 여전히 왕성하다. 게다가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M&A시장”(파이낸셜 타임스)일 뿐 아니라, 최고수준의 수익률을 안기고 있다. 그래서 주한미국·일본·유럽상공인모임 등은 세무조사에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한국시장을 매력적으로 평가한다.
노무현 정부는 대중의 원성이 집중되는 몇몇 외국계 사모펀드의 눈에 띄는 탈법과 횡포를 일부 제한하는 한편, 국내 자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자 할 뿐이다. “지속적인 규제완화”와 함께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게 국내자본과 외국자본이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싱가포르 투자청(정부가 투기자본을 직접 운용한다)을 모방하여, 한국 투자청을 설립중이며, 국내 사모펀드와 국민연금의 인수합병 시장 진입을 허용했다. 이 방침대로라면 투기자본의 횡포가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한편, 국내 사모펀드가 외국 투기자본의 대안일 수 있다는 기대는 우리 운동진영에도 있다. 외국자본처럼 탈세나, 최소한 ‘국부유출’은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자본도 조세피난처를 이용하여 국내에서 탈세를 일삼고 있다. 2002년 국세청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며, 당시 주된 조사대상은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한국인)이었다. 게다가 외국 사모펀드에 국내자금이 상당액 들어 있을 거라는 점은 관계당국도 인정하는 바다.
탈세는 투기자본의 횡포 가운데 단지 한 항목일 뿐이다. 1980년대 미국의 사모펀드들은 세금을 내면서도, 대량해고와 비정규직을 양산해, 노동자에게 대가를 떠넘기고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또한, ‘국부유출’을 막을 수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몫을 가로채서 소수 펀드의 투자자가 독차지하는 구조가 문제다. 현재 국내 부동자금이 3백조 원이 넘는다. 자산가들이 쌓아놓은 재산은 양극화와 빈곤 심화, 비정규직 증대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 부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정부와 재벌의 입장과 구분되지 않는 국내 사모펀드 활용론은 우리 운동의 대안이 아니다.
20억 원 이상 개인, 50억 원 이상 기관투자가 30명 이하로 구성되는 국내 사모펀드는, 펀드구성원의 단기차익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에게 혹독한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투기자본의 국적이 아니라, 투기자본의 이윤추구 방식 자체가 문제다. 투기자본 감시운동은 국외든 국내든 투기적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공격하는 사모펀드 자체에 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