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명, 진정한 변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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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발의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 2월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듯하다. 이 개정안은 국정원의 명칭을 안보정보원으로 바꾸고 직무 범위를 “국외·북한정보 및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 및 형법상 내란·외환죄 등과 관련되고 북한과 연계된 안보침해행위 등”으로 한정하고, “국내 보안정보, 대공·대정부전복 개념을 삭제”한다는 내용이다. 1월 14일 정부가 발표한 ‘권력기관 구조개혁안’도 국정원의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것을 핵심 골자로 삼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온 국정원은 그 자체로 적폐다. 국정원이 선거 개입, 세월호 여론조작 시도, 비리자금 전달 등 이명박근혜의 부패·비리의 큰 일부였음이 훤히 드러나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국정원을 그냥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여기에는 태생부터 독재 정권을 비호하며 공작 정치를 일삼고 노동자와 피억압 대중을 공격하고 때때로 개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국정원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도 당연히 한몫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우익은 문재인 정부의 조처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간첩수사 공백 운운하며 말이다. 국정원이 저지른 숱한 간첩 조작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뻔뻔하게 국정원에 손도 대지 말라는 듯 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정의당과 참여연대 등은 대체로 정부의 입장을 반기는 분위기인 듯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개혁’안은 이미 ‘보안사범’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경찰에 안보수사처를 신설해 국정원 기능을 이전한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수행해 온 기능과 임무는 살려두되, 간판만 바꿔 달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지지하지 않을 뿐더러(최근 문재인 정부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서도 국정원이 형법상 내란죄 등을 이용할 수 있게 해 뒀다. 국정원을 비판해 온 이들은 정부와 민주당의 안을 날카롭게 비판해야 한다.
본연의 기능
한편, 문재인 정부가 근본적 대안을 내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도 이 체제를 수호하는 지배자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체제를 수호하고, 지배자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과 운동을 감시·탄압하는 구실은 자본주의 국가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와 자본은 상호 의존적 관계다. 국가는 기업의 경제 활동을 돕고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법률을 만들고 집행한다. 노동계급의 저항으로부터 자본을 보호하는 일도 한다. 그래서 체제에 도전하거나 정부 비판적 언행으로 저항을 북돋거나 조직하는 세력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은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적 업무다.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은 이 업무를 전담하는 대표적 억압기구다. 예컨대 보안경찰은 심리전(흑색선전도 여기에 포함된다)과 비밀공작 등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 있다. 보안경찰의 존재 자체가 노동계급 대중의 민주적 권리와 충돌한다.
체제를 수호하고 국가 운영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도 ‘정보기관’이 해 온 이런 일들을 필요로 한다. 당장에 문재인은 트럼프 방한 반대 시위나 사드 배치 저지 운동에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했다. 민주당의 입장이 국가보안법 폐지로 결코 나아가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끊임없이 ‘간첩’ 사건과 노동자 운동에 대한 공격이 벌어졌다.
그래서 단지 한국만이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안경찰은 자국의 제국주의 정책을 위해 일하거나 국내 저항 세력에 대한 감시와 사찰을 벌여 왔다. 조작과 공작은 이런 일을 위한 흔한 수단이 된다.
조작과 감시
미국의 중앙정보부 CIA는 음모와 공작으로 악명 높다. CIA 핵심 간부였던 리처드 비셀은 1968년 미국 외교위원회에서 CIA 비밀활동의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친미 인사에 자금 지원, 친미 조직과 친미 노조 등 지원, 비밀 선전, 경제 교란 등의 작전, 정권 전복 내지 방어를 위한 준군사 행동 등. 실제로 니카라과에서 1979년 친미 독재 소모사 정권이 무너지고 산디니스타 정부가 집권하자 CIA는 이 정부를 무너뜨리려 우익인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다. 당시 미국 의회는 법까지 만들어 가며 정권 전복을 위한 콘트라 지원을 금지했지만 CIA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또한 CIA는 과테말라 아르벤스 정권을 무너뜨리려 심리전을 벌였고, 쿠바 카스트로 제거 작전, 베트남전에서 민간인 대량 학살 등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 세기가 바뀌고도 CIA가 이라크에서 포로를 학대했다는 의혹과 세계 곳곳에 불법 구금 시설을 운영 중이라는 정황이 끊임없이 밝혀지고 있다.
CIA 활동은 국외로 한정되지 않았다. 1947년 국가안보법은 CIA의 국내 문제 개입을 금했지만, CIA의 실제 활동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1970년대 CIA가 민간인 1만 명을 사찰해 왔음이 폭로됐다.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활동가들과 단체들을 사찰하고, 내부 분열을 획책했을 뿐 아니라 활동가들에 대한 온갖 악의적 소문을 퍼뜨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유명한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에도 CIA가 연루됐다.
CIA의 국내 활동에 대한 비난이 들끓은 후에는? 연방수사국 FBI가 이런 일을 이어 갔다. FBI는 1953년 로젠버그 부부가 소련에 핵폭탄 정보를 넘겼다는 ‘핵폭탄 간첩’ 혐의를 씌웠다. 매카시즘 마녀사냥꾼들은 제대로 된 증거를 대지 못했지만 법원은 로젠버그 부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수십 년이 흘렀지만 이런 행태는 사라지지 않았다. 국가안보국 NSA와 FBI가 손잡고 국내외에서 광범한 감시와 사찰을 벌였다는 것이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드러났다. 경쟁하는 다른 국가의 리더들, 예컨대 독일의 메르켈도 감시 대상이었다. 2006년 부시 정부 시절 통과시킨 애국자법을 이용해 CIA와 FBI는 무슬림과 이주민을 탄압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2006년 연방정보국 BND가 자국 언론인을 광범위하게 사찰하고 심지어 정보원으로 고용했음이 발각됐다. 2013년에는 프랑스의 해외 담당 정보기관인 대외안보총국 DGSE가 국내와 국외 통신 정보를 감시해 왔다고 〈르몽드〉가 폭로했다. 영국도 국내는 MI5, 해외는 MI6로 분리돼 있지만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MI5가 저명한 좌파 역사가인 에릭 홉스봄을 비롯한 반전 운동가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수십년 동안 사찰해 왔음이 2014년에 폭로됐다. 이런 일들은 기밀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감춰지기 일쑤다.
이런 일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보안경찰이 어떤 형태를 갖추든 내부로 향하는 칼끝을 감출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지금 국정원이 자체 개혁 운운하며 눈치를 보는 것은 박근혜 퇴진 운동의 여파 때문이고 그런 억압 기구들이 제멋대로 날뛰지 못하게 하려면 계급 세력 균형이 중요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특히 노동계급의 투쟁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노동계급은 지배자들이 보호하려는 이윤과 체제를 공격할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도 노동자들의 구실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