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균형자론과 동북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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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동북아균형자론’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동북아균형자론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우파는 “한미 동맹을 위태롭게 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동북아균형자론은 ‘자주외교’의 발로라고 해서 진보 진영 내 일부의 지지를 얻고 있다. 얼마 전에 열린 한국사회포럼에서 이철기 동국대 교수는 “한미동맹에 우리의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미국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던 기존 안보정책의 대변화를 시사”한다며 동북아균형자론을 지지했다.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한 비슷한 견해는 동북아균형자론이 “냉전 이후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동북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동북아균형자론을 둘러싼 지배계급내 논쟁을 볼 때 그것이 전통적인 한미동맹 관계에서 일정한 변화를 뜻하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라든가 ‘작전계획 5029-05’ 등을 둘러싼 한미 간의 갈등에서 볼 수 있듯 군사외교 정책에서 한미 간에는 여러 이견이 존재한다.
한미관계에서 한국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자주외교’ 논쟁은 지난 대선 때부터 주요한 쟁점이 돼 왔다.
그러나, 노무현이 집권 초에 자신의 외교노선을 “친미적 자주”로 밝힌 것과 마찬가지로 동북아균형자론이 한미동맹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의 동북아균형자 개념은 어디까지나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해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는 것이다.
균형자론이 한미동맹을 깨자는 것이 아니라는 정부의 설명이 단지 우파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둘러대는 말은 아니다. 최근 노무현은 “미국인보다 더 친미적인 한국인들”을 공격했지만 그 동안 보여 온 실제 행동은 미국을 추종해 왔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세계 3위 규모의 군대를 파병하고 계속 주둔시키고 있는 것이나 주한미군의 아시아·태평양 신속기동군화 방침에 협력하는 등 친미노선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노무현이 동북아 긴장 고조의 주된 요인인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동북아 평화를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러한 모순이야 어떻든 균형자론이 한미동맹에서 벗어나 다자안보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은 높이 사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한국이 설사 한미동맹에서 벗어나 다자안보체제를 지향한다고 해도 그것이 동북아의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만이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은 아니다. 일본·중국·러시아 등은 모두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고, 경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군사력 사용을 마다하지 않아 왔다.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군비 경쟁은 동북아를 더욱 불안정에 빠뜨리고 있다.
이런 열강의 각축전에서 상대적 약소국인 한국이 살아남아 독자적 목소리를 내는 길은 한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길뿐이라는 가정에 근거해 동북아균형자론은 한국의 “강력한 군대”, “강력한 힘”을 강조한다.
이것은 평화는커녕 동북아 불안정 고조에 한국도 한몫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노무현이 말한 ‘협력적 자주국방’ 계획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2008년까지 국방비를 단계적으로 증액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3.2퍼센트까지 확대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2005년 국방 예산은 GDP 대비 2.85퍼센트 수준).
그러므로 동북아균형자론은 어떤 의미에서든 전혀 진보가 아니다. 그것은 냉전 종식 이후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동아시아에서 살아남아, 한 역할 하려는 한국 지배계급 일부의 전략을 보여 줄 뿐이다.
동북아 평화는 계속해서 군비 경쟁의 일부이고자 하는 균형자론이 보장할 수 없다. 소수의 열강이 정점에 있으면서 서로 군사적·경제적 경쟁을 벌이는 제국주의 체제 하에서는 어떤 평화도 영구적이지 않다.
진정한 평화는 군사 경쟁에서 아무런 이득을 볼 게 없는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에 달려 있다. 이라크 점령에 반대하는 전 세계 반전 운동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