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사회적 대화 회의론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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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김명환 지도부가 취임하고 처음으로 열리는 대의원대회였다. 700명 넘는 대의원들이 참석했다. 조합원 수 증가로 대의원 수도 늘어난 데(총원 1127명) 따른 것이다.
내빈도 많았다. 그중 천영세 지도위원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천 지도위원은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노총 개혁파로 노동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전노협 시절부터 지도위원을 도맡았다. 그는 “[자신의] 오랜 경험 덕에 분위기를 잘 읽을 수 있는데, 지금 현장이 꿈틀거리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노동자 연대〉 신문도 비슷한 계급 세력 관계 인식을 갖고 있다.)
이번 대의원대회는 신임 지도부 취임 후 첫 대의원대회이니만큼 사업 계획(특히 사회적 대화 참가) 안건이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대회였다. 김명환 새 위원장과 백석근 새 사무총장은 취임 후 시간 부족으로 안건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으므로, 3월 초에 있을 중앙위원회에서 보완하도록 위임해 달라고 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토론을 되도록 자제해야 지도부를 존중하는 것인 듯한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형성됐다. 그래서 토론을 하면서도, 해서는 안 될 것을 하는 불편한 분위기가 흘렀고, 수정안 발의는 되도록 자제돼야 하는 듯했다.
예를 들어, 한 대의원은 직선제에 대한 평가에 포함된, “변경·지속 여부를 포함한다”는 구절을 삭제하는 수정동의안을 발의하고자 했다. 선관위는 직선제에서 나타난 난점을 개선하려 해야 하지만 직선제 지속 여부까지 열어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행부는 ‘직선제는 규약 규정에 있기 때문에 그런 우려를 할 필요 없다’, ‘직선제 지속 여부까지 열어 두겠다고 보는 건 오해다’ 하며 수정안 발의를 만류했다. 다른 대의원은 오히려 자신이 그 구절을 ‘직선제 지속 여부까지 열어 두는 것으로 이해하며, 그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밝히기까지 했다. 결국 애초에 삭제 수정안을 내려던 대의원은 수정안 발의를 포기했다.
사회적 대화 필요성 논란
2018년 사업계획 논의는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그럼에도 한 전교조 조합원인 대의원(여성)이 첫 질의를 당차게 했다. 그는 노사정 대표자 회의 참가가 새 지도부의 ‘신8자회의’ 공약 위반이라며 노동조합 민주주의와 신뢰 문제를 제기했다.
의장은 유쾌하지 않은 듯한 인상이었고, 장내에는 난처한 기색이 흘렀다. 그러나 이는 분위기 냉각을 뜻하지 않았다. 그 뒤 사회적 대화 문제를 제기한 대의원들 가운데 두어 명이 첫 발언자 전교조 소속 대의원의 질의를 환기시키며 말을 이어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교조 소속 대의원의 발언은 사회적 대화 문제 제기의 포문을 열었던 것이다.
이어서 좌파적 대의원 여러 명이 사회적 대화의 이러저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질의들을 이어갔다.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합의가 뭐가 그렇게 다르냐?”(김명환 지도부는 사회적 대화 기구 재편이지 사회적 합의 기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조합원들은 TV로 대통령-김명환 면담을 봤을 뿐이니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말해 달라.” “사회적 대화의 의제로 정부 측은 최저임금 제도 등을 언급하던데 민주노총이 제시한 의제는 무엇인가?”
김명환 새 위원장은 공약 위반 여부 질의에 대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는 옹색한 답변을 했다. 대략 이랬다. ‘노사정위 복귀 불가 입장은 지금도 분명하다. 선거 기간에 대통령과 국회의장 포함해 (신8자회의) 제안했던 것 맞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많이 든다. 그래서 대통령 면담 먼저 했다. 국회의장 면담은 이후 잡혀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은 따로 만나는 것으로 하고 6자회의를 수용했다는 취지인데, 노사정위원장 포함 문제를 회피한 셈이다. 선거 운동 때 김명환 위원장 후보는 노사정위 위원장이 사회적 대화기구 재편 논의에 포함되면 죽어가는 노사정위에 영양제를 주는 격이라고 반대했었다.
사회적 대화와 관련된 다른 질의들에 대한 새 위원장의 답변은 지나치게 일반적이었다(그래서 어렴풋했다). ‘노사정 대표자 회의는 딱 30분 했다. 보도자료 이상도 이하도 더 한 얘기는 없다. 본인은 사회적 대화만으로 사회적 악을 제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들 교섭해 봐서 알겠지만, 교섭에서 쟁점을 분명히 하고 결렬되면 절차 밟아 투쟁하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가 양보 교섭을 전제로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회적 총파업을 했지만 사회적 교섭이 없었던 것은 문제다.’
위원장 답변 후 사회적 대화 부분을 삭제하자는 수정안이 발의됐다. 뒤이은 찬성 발언자(금속노조 소속)는 노사정 대표자 회의 참가가 중집 결정으로 정해질 일이 아니라는 것, 지난 노사정위 결과들을 알기 때문에 우려한다는 것, 현재 학교비정규직 부문에서 벌어지는 일(정규직 전환 제외)이나 한상균·이영주 수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와 다를 바 없음을 보여 준다는 것, 투쟁으로 돌파하자 등을 주장했다.
수정안은 재석 인원 618명 중 192명의 찬성을 받아 부결됐다. 하지만 찬성률 31.1퍼센트는 만만찮은 비중이다. 30퍼센트가 넘는 대의원들이 대화보다는 투쟁에 분명한 우위를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임 지도부가 취임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30퍼센트의 의미는 상당한 것이다.
비정규직의 부상
그 밖에도 의미 있는 질의 또는 주장들이 있었다. 특히 비정규직 투쟁과 관련된 주장들이 그랬다. 교육공무직 대의원은 비정규직 투쟁의 기조를 ‘양극화 해소’라는 점에서 다루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밥그릇을 문제 삼은 바 없다며, ‘양극화 해소’가 아니라 ‘정규직화’ 투쟁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는 취지의 질의를 했다.
또한 그는 최근 학교 비정규직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서 제외되고 있는 문제를 심각하게 봐야 하는데, 이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정규직이 조직되려면 희망이 보여야 한다”며 “[비정규직 제로]약속 이행 촉구” 투쟁 계획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중공업 소속 대의원은 투쟁 계획 안에 구조조정에 대해 한마디도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사람(전교조 소속)은 민주노조가 경영참가나 공동결정제도 확대 등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냐고 비판했고, 상시업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비정규직의 폐지를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상시업무만 정규직화 대상으로 보는 것을 비판하는 취지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