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좌파는 민주노동당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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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좌파는 원칙의 훼손을 수반하지 않으면서도, 변화한 외부 세계에 전술 면에서 적응해야 새롭게 등장한 운동과 관련 맺을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출현과 성장도 그런 변화한 환경들 중 하나다.
그러나, 일부 ‘노동자의 힘’ 회원들은 민주노동당을 “노동자·민중의 운동 세력”이라고 보지 않는 듯하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시각이다.
민주노동당의 지도부 중 다수가 자본주의 체제를 본질적으로 신성불가침한 영역으로 인정하고 애써 자본주의의 경계 안에 머무르려 할지라도, 노동계급(다수의 계급의식적 노동자들을 포함해)의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체 민주노동당원 중 노동자가 60퍼센트 안팎이다. 이들 노동자 당원들의 압도 다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평당원을 구별해야 한다. 서유럽에서도 사회 민주주주의 정당의 지지자들은 사장들뿐 아니라 사회 민주주의 정부들에도 맞서 노동조합과 계급 이익을 지키기 위해 거듭거듭 투쟁했다. 이것이 사회 민주주의 정당들이 겪는 항구적인 모순이다.
이렇게 조직 노동자들과 연결돼 있는 민주노동당은 조직된 자본가들과 연결돼 있는 보수 정당들보다 낫다. “대중적으로 민노당의 정체성은 열린우리당의 그것과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원영수, 〈노동자의 힘〉 68호)는 주장은 민주노동당의 노동계급 지지자들이 보수 정당들의 지지자들과 매우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다수 노동자들에게 핵심적인 정치 초점 구실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급진좌파는 민주노동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하고, “협력”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레닌)
이런 일을 거부하는 급진좌파는 우파에 반대하는 대중의 광범한 정서로부터 고립될 수밖에 없다.
원영수 씨는 민주노동당의 성장이 “노동자-민중운동의 성장과 강화보다는 제도화의 고착과 더욱 노골적인 우경화”로 귀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노동자의 힘〉 68호).
그러나 노동계급이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성장은 역사적 진보이다.
원영수 씨는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을 체제 내로 흡수하는 구실만 한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민주노동당이 다른 한편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노동계급의 저항을 표현하기도 한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더구나 “자주 계열”이 당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당의 “제도화와 우경화 과정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노동자의 힘〉 69호).
현실은 그의 주장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지난 해 하반기에 “자주 계열”이 다수파였던 최고위원회는 투쟁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도 인정했듯이, 12월 민주노동당 총진군대회는 “대중 정당이면서도 여타 대중 조직에 비해 동원력에 자신이 없었던 민노당에 상당한 자신감을 부여”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이 무엇보다 열우당의 배신 ―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당 지도부의 열우당과의 ‘개혁공조’ ― 때문에 좌절하자, 요 몇 달 동안 우선회를 하고 있다.
이런 우선회가, 원영수 씨가 암시하듯이 단선적인 과정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계급 세력관계의 변동에 따라 당 지도부는 좌선회와 우선회를 거듭하며 장기적으로 우경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원영수 씨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우경화가 당원들 사이에서 양극화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현실을 보지 않으려 한다.
비록 부결되긴 했지만, 3월 26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절반에 가까운 중앙위원들이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결의안에 찬성했다(최고위원회와 의원단은 모두 그 결의안에 찬성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민주노동당 안에는 정치적으로 건강한 간부들과 평당원들이 많다. 한 예로, 지난해 7월 민주노동당 중앙위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강행하면 정치적 파산을 선고할 것이라는 결의안과 서울대병원지부 파업을 지지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급진 좌파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만약, 대다수 당원들이 우경화하는 상황이라면 급진 좌파가 당 안에 남아 있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힘’의 주도적 활동가들은 민주노동당과 체계적인 협력 관계를 맺기보다는 경쟁 심리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우경화와 실패가 곧 ‘노동자의 힘’의 계급 정당 건설에 추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김태현, 〈노동자의 힘〉 제60/61호).
그래서인지 ‘노동자의 힘’은 불필요하게 민주노동당에 대해 초좌익적인 태도를 취한다.(‘노동자의 힘’은 2004년 총선에서 자기 후보를 내지 않았음에도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라고 호소하지도 않았다. ‘노동자의 힘’의 일부 회원들이 개인들로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했음에도 하나의 단체로서 ‘노동자의 힘’은 선거에 불참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밖에서 지지하지는 않고 비판만 한다면 ‘노동자의 힘’의 주장에 귀기울일 민주노동당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 대중의 계급의식 상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다. 오늘날 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커다란 유동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급진좌파가 낡은 편견을 버리고 변화하고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급진화하는 새 세대와 접촉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 대중의 환상과 편견에 순응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한 걸음 앞에 서 있을 때 새 세대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