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될 시리아 위기 이해하기:
제국주의의 야심이 진정한 원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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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정권은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 지역 구타를 폭격해 일주일 만에 500여 명을 살해했다. 최근 유엔 안보리는 시리아에서 ‘30일 휴전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위태롭다. 합의를 발표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정부군에 의한 폭격이 재개됐고 포괄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휴전 예외’ 항목도 있다. 무엇보다 제국주의 경쟁이 초래한 참상이 제국주의자들 간 합의로 해결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2011년 혁명이 패배한 결과 위에 중동 패권을 둘러싼 갈등이 겹쳐지면서 어떻게 현재의 참상으로 발전했는지 살펴 본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에 사는 수많은 사람은 공습으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처지이다. 그들은 강대국들의 얽히고설킨 패권 다툼의 가장 최근 희생자다. 시리아는 끔찍한 반혁명의 아수라장 한가운데에 있기도 하다.
[2월 넷째 주] 시리아와 러시아는 반군의 마지막 남은 근거지 중 하나인 구타를 폭격했다. 구타에는 아직 40만 명이 살고 있다.
한편, 시리아 북부 쿠르드 자치구역에서는 민족해방 투사들이 위험한 도박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 인민수비대(YPG)는 이제 시리아 정권과 손잡고 터키(서방의 동맹이기도 하다)에 맞서 싸우고 있다.
시리아 남부에서는 각각 중동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사태가 이같이 끔찍한 방향으로 전개된 것은 시리아 혁명이 패배한 결과다.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2011년 시작된 혁명적 운동을 분쇄했다.
수백만 명이 정권의 공격을 피해 외국으로 피난을 갔고, 남은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시리아 혁명의 시작을 장식한 대중 시위는 정권의 공격 때문에 조직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초기의 대중 시위를 방어했던 무장단체들이 저항의 구심이 됐다. 이들은 통칭 자유시리아군(FSA)이라고 불렸다.
종파 갈등(시리아 정권이 의도적으로 부추기기도 한) 탓에 자유시리아군(FSA) 내부에서 갈등과 경쟁이 격화했다.
한편, 서로 경쟁하는 지역 강국들은 반혁명 이후의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넓히려고 내전에서 개입했다.
자유시리아군은 점차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부유한 걸프해 연안국들의 지원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여러 걸프해 연안국들의 지원을 받던 무장 이슬람주의자들이 자유시리아군을 제치고 부상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장 큰 경쟁자인 이란은 시리아 정권을 편들며 개입했다.
세계적 주요 열강도 각자 중동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개입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권을 지원하고 미래의 시리아 정부도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하고자 반군 토벌 작전에 참가했다.
반면, 미국은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이하 아이시스)를 몰아내기 위해 개입했다. 종파주의 집단 아이시스는 시리아 정권이 포기한 시리아 북부의 많은 지역을 장악했다.
영국은 미국을 지원하며 시리아에서 서방 동맹의 영향력을 강화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개입으로, 시리아 북부는 대부분 쿠르드인 손에 들어갔고, 남부는 시리아 정권과 그 동맹 세력들이 장악했다.
이제 경쟁 열강은 이제 좀더 직접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시리아 내전은 주요 지역 강국들 간의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 끔찍한 전망이지만, 수월한 타결책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2011년 혁명적 운동은 시리아인들이 자신의 운명을 지역 강국들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반면 지역 강국들은 시리아 민중의 처지에는 전혀 관심 없이 전쟁에만 골몰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들 모두에 맞서 저항할 수 있고,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중동 전역을 관통하는 혁명의 귀환이 이 악몽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다.
터키에 맞서 싸우는 쿠르드
시리아 북부 쿠르드인들은 억압받는 소수민족이다. 시리아 쿠르드인들은 수십 년간 시민권도 받지 못하고 기본적인 자유도 보장받지 못했다.
시리아 정권이 시리아 북부에서 철수한 후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는 그 지역에 쿠르드인들의 준국가 기구를 수립하기 시작했다.
인민수비대는 시리아민주군(SDF)의 주요 집단이다. 시리아민주군은 미국이 지원하는 연합군으로 시리아 북부 지역을 대부분 통제한다.
터키는 쿠르드인들과 오랫동안 전쟁을 벌여 왔다.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시리아 북부가 터키 내 쿠르드 전사들의 거점이 될 것을 우려해 쿠르드 인민수비대의 성장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올해 1월 터키는 같은 나토 소속국인 미국과의 긴장을 야기하면서까지 시리아 북부 아프린주를 침공해 쿠르드인들을 공격했다.
이제 시리아민주군은 터키의 침략에 함께 맞서기로 시리아 정권과 합의를 봤다.
시리아와 터키의 충돌이 거세지면, 쿠르드인들이 짓밟힐 것은 거의 확실하다.
쿠르드인들의 해방은 패권 경쟁에 이용당하는 것으로는 쟁취할 수 없다.
이란은 시리아의 주요 세력이 되고자 한다
이란군을 비롯해 이란이 지원하는 여러 집단은 시리아 정권이 시리아 남부 지역을 장악하도록 돕고 있다. 2013년 내전에 개입하면서, 이란은 중동 전역에서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내전에 개입하면서 시리아 영토 내에 영구적인 군사기지를 보유하게 됐다.
또한 이란군은 2014년 이라크 북부에서 [아이시스를 상대로] 벌어진 전쟁에 개입해, 이라크 북부의 일부 지역도 통제하고 있다.
이란은 경쟁국 사우디아라비아에 맞서 경제적 영향력도 키우려 하고 있다. 이란은 투자를 통해 이라크 경제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했다.
이란은 내전 이후 시리아에서도 경제적으로 주요한 구실을 맡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란의 세력이 커지면서, 이란은 숙적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하게 됐다.
이란은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하마스를 지원해 왔고, 2006년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의 침략을 막았던 헤즈볼라도 지원해 왔다.
최근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는 물론 심지어 이란과도 전쟁을 치를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최근 전쟁광인 이스라엘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는 소위 ‘격추된 이란 드론’을 흔들면서 “이스라엘의 결의를 시험하지 말라”며 이란을 위협했다.
시리아에서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은 아주 일부일뿐이다.
이들 집단은 대부분 2011년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무장한 단체들과 관련이 없다.
원래 반군들은 주로 시리아 정부군의 탈영병, 정권의 공격에서 자신의 마을을 지키려 한 평범한 민간인들이었다.
그러나 혁명이 내전으로 빠져들고 해외 강대국들이 무기와 돈으로 개입하면서, 더 잘 무장한 민병대와 이슬람주의 집단이 기존 반군을 대체해 버렸다.
오늘날 “[시리아] 반군”이란 영국이 지원하는 ‘남부전선’(시리아 동남부 일부를 장악한 집단)이나 이슬람주의 조직인 ‘알누스라 전선’ 등을 일컫는다.
구타에서만 많게는 5개의 반군 집단이 시리아 정권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2011년 혁명 이후 벌어진 시리아의 유혈사태는 대부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책임이다.
바샤르는 2000년 그의 아버지 대통령 하페즈 알아사드가 죽자, 시리아의 독재자 자리를 물려받았다.
아사드는 일련의 경제 ‘개혁’을 통해 시장화와 민영화를 촉진했고, 각종 보조금과 복지를 삭감했다.
시리아 국가와 결탁한 한줌의 엘리트만이 부유해졌고, 대다수 시리아인들은 가난해졌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은 시리아의 봉기에 영감을 주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자 벤 알리와 호스니 무바라크의 몰락을 보며, 아사드는 무력을 동원해 혁명을 잔혹하게 분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