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평의회 논쟁 - 어떤 민주주의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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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민주주의의 범위와 내용이 급진적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현대 자본주의는 심각하게 비민주적인 체제이다. 금융시장과 다국적기업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전제적으로 지배한다.
홍세화 씨는
의회 등 부르주아 대의제 민주주의도 진정한 의미의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민주주의는 우리 운동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가치들 중 하나다. 실제로, 우리의 운동 조직 방식은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민주주의를 반영한다.
그러나, 운동이 다양한 만큼 민주주의의 내용과 형식을 둘러싼 불일치가 존재한다. 운동 안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합의제와 다수결 원칙 등 민주주의가 무엇을 포함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는 까닭이다.
자율주의 사상 지지자들은 학생회를 학생평의회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율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부정한다.
그들은 부르주아 대의제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우리 운동의 대의제 민주주의도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학생회를 학생평의회로 대체하려 한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평의회는 역사적으로 거대한 사회적 격변기 ―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1918년 독일, 1936년 스페인, 1956년 헝가리 등 ― 에 등장했던 평의회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런 평의회들이 압도 다수의 지지를 받았던 반면, 자율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보다 반드시 더 민주적인 것도 아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자율주의자들은 또한 합의에 의한 결정을 요구한다. 물론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모두 합의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놓고 이견이 존재할 수 있고, 그럴 때는 과반수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
한두 사람이 막후공작에 의해 나머지 모두의 결정을 되돌릴 수 있고 필리버스터 식으로 한도 끝도 없이 붙들고 늘어져 아무런 행동도 조직할 수 없도록 만들 수 있는 합의제가 더 민주적인가? 아니면, 최소한 대중을 대표하는 단체 대표들에 의한 과반수 투표가 더 민주적인가?
합의제는 노조나 다른 대중 단체들이 참가했을 때 아무런 대표성 ― 투표 등을 통해 ― 을 갖지 못하게 만든다.
이것은 운동의 전진에 해악적이다. 사실, 자율주의자들은 운동을 확대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물론 서로 배우기 위해 대화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공동의 적이 있고 우리는 비슷한 목표를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 운동 안에는 전략
대화만 나누자는 것은 우리 운동을 단순히 말의 성찬에 머물게 할 위험성이 있다.
이런 태도는 운동에 사실상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가령,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학생회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측의 의무적인 영어 시험을 거부하라고 옳게 선동했다. 80명 중 70명의 신입생이 그 호소에 호응했다.
그러나 학교측이 압박을 가하자 사회과학부 학생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