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케이트 에번스, 푸른지식):
난민 캠프에서 “요새 유럽”의 실상을 보다
〈노동자 연대〉 구독
지정학적 갈등과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개입으로 인한 전쟁이 여럿 벌어지면서, 전 세계 난민이 폭증하고 있다. 2016년 전 세계 난민의 수는 6560만 명으로,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대치였다. 신간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에서 저자 케이트 에번스는 프랑스 항구도시 칼레의 난민촌에서 자원봉사하며 경험한 일을 그림으로 그렸다. 칼레는 난민들이 영국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난민을 한 명 한 명의 인간들로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들이 난민촌에서 하루하루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는지, 왜 영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지, 고향에서 어떤 고초를 겪다 탈출했는지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사연들을 보고 있자면, 난민을 6560만 명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삶으로서 볼 수 있게 된다. 칼레 난민촌은 2016년 철거됐는데, 책 후반부에 나오는 철거 장면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번스는 유럽 각국 정부들의 위선도 폭로한다. 1997년 발효된 더블린조약에 따라 난민은 최초로 발을 밟은 유럽 국가에서 망명 신청을 해야 한다. 다른 국가에 중복 신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칼레의 많은 미등록 난민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경찰에게 잡혀 사진을 찍히는 일이다. 그 사진이 증거가 돼 영국의 난민이 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인정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프랑스의 난민 인정률은 26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에번스는 자신이 만난 난민들의 사진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경찰이 이용할까 봐 걱정해서다.
칼레 난민촌의 많은 난민이 영국에 친척이 있지만, 영국으로 건너갈 수 없다. 영국에서 조카를 데리러 온 삼촌은 영국 집에 조카 방까지 마련해 놨지만, 조카를 데려가지 못한다. 이런 것을 보면 유럽연합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다는 선전은 순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새 유럽’이라는 말로 상징되듯, 유럽연합은 바깥의 난민들에게는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다. 많은 난민이 유럽연합 국가들이 연루된 제국주의적 전쟁 개입으로 정든 고향을 떠났는데도 말이다.
난민촌 환경도 매우 열악하다. 5000명이 화장실 24개를 나눠 써야 한다. 하수구도 없어 오염이 심한데, 아기에게 분유를 먹일 젖병을 위생적으로 소독하기조차 쉽지 않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프랑스 정부를 고소했지만, 프랑스 법원은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제공하고 주거지를 마련하는 일을 아주 잘하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당국이 굳이 나설 필요는 없다”고 판결했다! 난민을 외면하는 데서는 지배자들끼리 손발이 척척 잘 맞는다.
에번스는 유럽연합 국가들이 벌이는 전쟁 탓에 난민이 생긴다는 것, 난민들이 유럽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도 설득력 있게 잘 보여 준다. 자신의 휴대전화로 온 우익들의 난민 비난 메시지를 만화 사이에 중간중간 넣어서 보여 주는데, 독자들은 난민들의 실제 모습을 보며 우익들의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유럽연합 지배자들이 왜 그토록 난민을 배척하는지에 관한 분석적 설명은 부족하다. 많은 지배자들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호황기에는 이주민들을 대거 받아들였으면서(물론 그러면서도 인종차별을 부추겼다), 지금은 이주민을 배척하고 난민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붓고 있다. 경기 침체에서 10년째 벗어지 못하고 있는 지금, 각국 정부들은 사람들의 불만을 달래고자 국경을 통제하며 자신들이 ‘국익’을 지키는 양 하려 한다. 저들에게 이주민은 사람들의 불만을 엉뚱하게 뒤집어씌울 좋은 희생양이다(더 자세한 내용은 ‘국경은 배척을 부추길 뿐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사를 보라).
게다가 난민에 연대하는 움직임은 만화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에번스는 영국인인데, 영국은 올해 인종차별 반대 집회에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일 정도로 이주민에 대한 연대의 전통이 있는 나라다. 특히 앞서 언급한 칼레 난민촌 철거 때는 영국의 인종차별 반대 연합체 ‘인종차별에 맞서 일어서자’(Stand Up to Racism)가 칼레까지 찾아가 철거 저지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이들은 만화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책은 난민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입문용으로 읽어 보기에 좋은 책이다. 난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린 이 책을 보며 난민 문제에 충분히 공감하게 되고, 유럽연합을 비롯한 각국 지배자들의 인종차별적 난민 정책에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