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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겨울을 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최근 대학원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조사하면서 다음과 같은 가슴 아픈 사연을 들었다. “노동계급의 가장 억압받는 부문이 처한 상황은 언제나 자본주의의 가장 추악한 얼굴을 보여 준다”는 토니 클리프의 말이 고스란히 입증되고 있다.

국내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의 현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출신 사람들 중에는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 많다. 한 시리아 여성은 “시리아 국민 중 누구도 자기 친척이나 가족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많은 무슬림이 이런 트라우마를 겪기 때문에 정신과 상담이 절실하지만, 상담은커녕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한다.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문제가 터진 뒤에는 이슬람 혐오 또는 공포가 커져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일자리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급증했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을 쉽게 본다. 아이들은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예법상 무슬림은 사망하면 사원에서 장래 예배를 받는데, 최근에 짜인 관을 보면 크기가 다 작다. 실제 무슬림 묘지에 가면 아이들 묘가 대부분이다. 21세기 한국에서 돈이 없어 못 먹고 병원에 못 가 아이가 죽는 일이, 무슬림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드문 일이 아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미등록 여성 노동자

기계 자수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 미등록 여성 노동자를 만났다. 스무 살에 한국에 와 40대 중반이 됐다. 한국에 산 지 20년이 넘었으나 ‘불법체류자’로 숨어 지낸 탓에 한국말을 거의 못 했다. 그녀는 마치 챔피언 벨트처럼 복대를 차고 있었다. 젊음을 한국의 공장에 바치다 얻은 허리 부상 때문이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아주 건강했다. 그러나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면서 이중 삼중의 굴레가 그녀의 건강을 갉아먹었다. 아파서 하루라도 쉴라치면 사장은 자른다고 위협했다. 또,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병원에 가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약국에 가서 진통제를 사 먹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0년을 버티고 버틴 끝에 허리를 더는 쓸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몸을 움직일 수 없던 어느 날, 친구를 통해 겨우 자선단체와 연결돼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았다. 겨우 몸을 추스리고 공장에 돌아왔지만 기숙사 방은 잠겨 있었다. 사장은 단호하게 나가라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산재 인정은커녕 치료비 한 푼 받지 못했다. 결국 복대를 차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올해 '이주노동자 메이데이'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이윤선

40대 초반 몽골 출신 미등록 여성 노동자는 2011년 몽골에서 뇌혈관 문제 진단을 받았다. 몽골에서는 치료가 어렵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의료관광 비자를 받아 한국에 입국해 여기저기 의료기관을 알아봤다. 하지만 비싼 수술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불법체류자’가 됐다. 치료비를 벌고자 일을 시작했는데 단속을 피해 모텔에 취직했다. 쉬는 시간 없이 12시간 동안 일했다. 점점 심해지는 마비 증상과 불면증을 참으며 손님들의 방을 치웠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수술은커녕 간단한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머릿속이 어떤 상태인지 너무 불안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겨울을 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나 역시 잠시 미등록 신분이었던 적이 있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는데도 의료 혜택을 못 받는다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치아가 아파도 손가락이 삐어도 보험이 안 돼 비쌀 게 뻔한 치료비가 무서워 참아야 했다. 참다 못해 병원을 찾았을 때는 병을 키웠다며 결국 수십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최근 신문을 보면, 헌법을 개정하면 건강권이 기본권이 될 거라 하고 ‘문재인 케어’를 하면 비급여가 없어질 거라고 한다. 그렇게 될런지 의문이지만, 된다 한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고향보다 먼 얘기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해 온 활동가들은 실제로 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크게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게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들에겐 여전히 병원이란 쓰러져야 갈 수 있는 곳, 아니 쓰러져도 갈 수 없는 곳이다.

한반도에 ‘봄’이 왔다고들 하지만, 이처럼 내가 만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겨울’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