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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줬다 빼앗기’ 개악 — 문재인 ‘노동존중’의 위선
2시간 파업으로 부족. 민주노총 지도부 실질적 파업 명령해야

25일 새벽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는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하는 최저임금법 개악안을 강행 처리했다. 고용노동소위에서 정의당 이정미 의원 등이 반대하자 표결로 밀어붙이고, 곧바로 환노위 전체회의를 열어 처리했다.

개악안에 따르면, 상여금뿐 아니라 식대, 숙박비, 교통비 등 복리후생비도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된다. 내년부터 월 최저임금의 25퍼센트를 초과하는 상여금, 7퍼센트를 초과하는 복리후생 수당이 최저임금으로 포함되고, 산입 범위를 매년 늘려 나가 2024년에는 모든 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이 최저임금에 포함되도록 했다.

2018년 최저임금(월 157만 3770원)을 기준으로 하면, 당장 내년부터 월 상여금 중 39만 원, 복리후생비 중 11만 원을 뺀 나머지를 최저임금에 산입할 수 있다.

기본급은 최대한 적게 주고 그 대신 상여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연장근로수당 등을 삭감해 온 대기업들은 앞으로 몇 년간 최저임금이 올라도 기본급을 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환노위는 연소득 2500만 원 안팎의 저임금 노동자는 보호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예컨대, 월 기본급 157만 원, 상여금 50만 원, 복리후생비 20만 원으로 월 227만 원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상여금 11만 원, 복리후생비 9만 원이 최저임금에 산입돼, 기본급 20만 원이 깎이더라도 최저임금법 위반이 아니게 된다.

실제로 현재 매월 급식비 13만 원, 교통비 6만 원을 받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매월 8만 원, 연간 96만 원 상당의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빼앗기게 됐다.

2017년 말 한국노동연구원이 작성한 ‘최저임금 제도개선 논의를 위한 기초연구’를 보면,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10인 미만 고용 사업체 1630여만 곳 중 72퍼센가 상여금을, 87퍼센트가 복리후생비를 지급하고 있다. 이들 사업체에 고용된 노동자 상당수가 2024년까지 산입 범위 확대로 인해 손해를 볼 것이다.

또, 고용주가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지급하던 상여금을 1개월 단위로 나눠서 지급하려 할 때, 노조나 과반수 노동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부칙도 덧붙였다.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과반수 노조 내지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의 원칙조차 무력화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상여금 쪼개기’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기에 더해 임금을 삭감하려는 온갖 불법과 편법이 난무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비상한 상황

문재인 정부는 “노동 존중”, “소득 주도 성장” 등을 표방하면서, 최소한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지는 개선해 줄 것처럼 주장해 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주요 노동정책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노동시간 주 52시간 단축 등을 누더기로 만들더니, 최저임금 제도마저 개악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완전히 무력화해 버렸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개악을 밀어붙이는 것은 지방선거에서 중소 상공인을 비롯한 사용주들의 표를 얻기 위한 의도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기존 지지층은 달리 갈 데가 없을 거라고 계산하면서 말이다.

더 근본에서는 2017년에 회복되는 듯했던 한국 경제가 최근 다시 ‘침체 논란’이 벌이질 정도로 악화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 갈등, 중동에서 지정학적 갈등 등으로 한국의 수출 확대 전망이 점점 불확실해지고, 석유값 상승, 신흥국 통화 위기 등으로 전 세계 경제가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커지자 더 확실하게 사용주들의 편을 들고 그들의 이윤을 보호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저임금·비정규직의 조건 개선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해 왔다. 김명환 위원장은 올해 민주노총의 핵심 의제로 비정규직과 최저임금을 꼽았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개혁 염원을 배신한 지금, 그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실질적인 투쟁을 조직해 수백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해야 한다. 그것은 촛불운동 이후 민주노총의 문을 두드리는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길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개악을 저지하는 투쟁은 상대적으로 처지가 나은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는 것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저임금·비정규직의 열악한 조건을 빌미로 대기업·정규직의 임금을 억제하려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 임금”, 직무급제 등이 노리는 바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최저임금 개악 추진에 반발해 ‘노사정 사회적 대화 참가 중단’을 선언하고, “총파업·총력 투쟁” 방침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 구체적 내용을 보면, 5월 28일 국회 본회의에 해당 법안이 상정되는 것을 확인한 후에 2시간 파업을 하겠다는 수준에 그쳤다. 사실상 경고성 파업 선언과 집회 계획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여야 합의로 국회 환노위에서 관련 법안이 날치기 통과돼 5월 28일 강행 처리가 확실한 상황이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주장대로 “최저임금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법안 상정 이후 2시간 파업 집회로는 어림도 없다. 사용자와 정부 여당을 물러나게 만들려면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비상한 상황에 걸맞게 정부와의 대화를 전면 중단하고 조직력을 진지하게 동원하는 실질적인 파업을 명령해야 한다.

2018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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