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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 행복한 기다림

나는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한국에서, 회사가 노동자를 공격할 때 경찰까지 회사 편을 들어 노동자 투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쓰디쓴 패배의 아픔을 삭이고 있을 때, 그 상황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해 준 노동자연대 활동가와 친해졌다.

그 노동자연대 활동가는 내게 맑시즘에 참가할 것을 제안했다. 너무 먼 곳에서 열리는 행사라 망설였다. 하지만 노동자연대의 이론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노동자연대 활동가와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맑시즘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래서 큰 마음 먹고 이틀을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맑시즘에서 하는 주제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평소에 접하기 힘든 동성애 문제나 낙태 문제를 다루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당연히 노동과 투쟁에 대한 주제도 큰 관심사였다. 솔직히 노동자연대 활동가와의 친분도 생각하긴 했다. 대단히 열정적으로 맑시즘을 권하는 모습에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내가 신뢰하는 활동가가 그 정도로 강조하는 것을 보며,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가기 싫다’는 생각을 조금씩 밀어내더니 이틀이라도 참가하기로 했다.

2017 맑시즘의 기억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과 ‘맑시즘이란 어떤 행사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대충 자다 새벽 3시에 눈을 떠 서울로 출발했다. 그리고 고려대학교 캠퍼스 안으로 들어왔다. 나의 의식을 바꿔 놓은 축제 속으로 내디딘 첫발이었다.

처음 참가한 토론은 동성애를 주제로 한 것이었다. 나는 성소수자 친구가 커밍아웃을 했어도 무덤덤하게 넘긴 경험이 있다. 솔직히 그 친구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잊으며 지냈다. 그만큼 나와 똑같은 삶을 사는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라고 특별히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체험해서인지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나도 모르게 생긴 것 같았다.

토론하면서, 성소수자 차별 문제의 핵심은 자본주의 체제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됐다. 또, 성소수자 공격에 맞서 항의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됐다. 맑시즘 참가 전 기독교 우파의 성소수자 공격에 동조한 조합원과 논쟁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내가 막혔던 부분을 토론에서 물어봤다. 역차별 논리였는데, 연사가 역차별이 왜 허구인지 쉽게 말해 줘 큰 도움을 받았다.

다음은 낙태권 쟁점 토론이었다. 당시 나는 ‘낙태가 살인이냐 아니냐?’로 갈등하고 있었다. 초기 낙태는 찬성이었지만 후기 낙태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여기서 ‘낙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서 합법화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놀라웠다. 태어나지 않은 태아보다 이미 살아가고 있는 여성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가 감동이었다. ‘누가 이런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기존의 우파적 통념을 확실하게 깨 버리는 논리에 노동자연대가 가진 힘이 느껴졌다.

노동 쟁점 토론도 특별했다.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인상 투쟁을 대놓고 지지하는 단체는 본 적이 없었다. 정규직 노동자를 공격하는 논리를 반박하며 자신감을 올려 주는 발제를 들으니 힘이 났다. 그곳에서 나도 자신감을 얻어 현대중공업 상황에 대해 폭로했고 사람들의 지지도 받았다.

사회주의자가 되는 첫발

그렇게 자신감을 주고, 어떻게 싸워야 할지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맑시즘을 다녀온 뒤 나의 삶은 많이 변했다. 투쟁이 잘 안 풀리는 작업장에서 무조건 노동조합만 믿고 따르던 나는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투쟁을 건설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고민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는 나로 변했다. 동료들이 성소수자나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거나 ‘낙태는 살인’이라는 등의 말을 하면 가차 없이 반박했다. 맑시즘을 다녀온 뒤 나의 논리가 강해졌다. 사회주의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맑시즘은 나의 삶을 바꾸는 계기였다. 이렇게 의미 있는 맑시즘이 다시 다가오고 있다. 매우 기다려진다.

나는 사회주의자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지난해 맑시즘으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났다. 역동적인 사회라 지난해와 다른 정치적 무장이 필요하다. 이념 전쟁의 시대라 생각한다. 우파들이 공격하는 논리에 맞서 이겨야 한다. 그래야 더욱 강한 투쟁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올해 맑시즘이 기다려진다. 지난해맑시즘에서 느낀 해방감은 잊을 수가 없다. 아주 행복했다. 올해 맑시즘을 기다리며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주변에 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