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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난민의 연설:
모국의 박해에서 한국 난민으로 살기까지

8월 10일 대학 마르크스주의 포럼 ‘난민·이주민 차별과 저항’에서 이집트 출신 난민인 이브라가 연설한 내용이다.

저는 원래 다른 이름이 있는데, 오늘은 ‘이브라’라는 별칭으로 소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집트 탄타대학교라는 데서 공학을 전공했던 공대생이고요. 이집트에서는 여러가지 온라인 언론, 신문사에서 반정부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통역 봉사 활동도 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고 있고 나이는 26살입니다.

저는 오늘 네 가지 주제에 대해서 얘기를 드리고자 하는데요. 첫째로는 제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난민이 됐고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에 대해서도 얘기를 드릴 것이고요. 둘째로는 한국에 있는 난민들이 전반적으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얘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중동, 특히 이집트에서 왜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 원인도 이야기를 하고 싶고요. 맨 마지막으로는 중동에서 지금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이렇게 난민이 많이 발생하고 전쟁과 내전을 겪고 불안정한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난민이 된 이유를 먼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2009년부터 5~6년 동안 정치 활동, 정당 활동을 해 왔었고 활동가로서 여러가지 노동자 문제나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여러분들이 하는 것처럼 저도 이집트에서 그런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에 일어난 이집트 혁명은 당시 이집트 최대의 정치적 사건이었고 저는 그 혁명, 중동 전역을 휩쓸었던 ‘아랍의 봄’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이집트에서 혼자서 활동을 할 때든 아니면 정당에 속해서 활동을 할 때든, 굉장히 많은 탄압에 노출이 돼 있었습니다. 체포도 여러 번 당했고 구타당하고 고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일들입니다. 3년 동안 체포를 20번 이상 당했는데 전단지를 나눠준 것, 시위에 참여한 것 등등 굉장히 다양한 이유로 체포됐습니다.

체포 경험 중에 제일 오랫동안 구금됐던 기간이 6개월이었는데 그때 체계적인 고문을 받았습니다. 폭력은 예사였고, 전기 고문에 심지어는 성고문까지 받았습니다. 이집트에서 활동하는 다른 많은 정치 활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이런 경찰 폭력을 수시로 당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왜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한 탄압이 강해졌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2013년 이래로 공안 탄압과 그에 수반되는 폭력이 극단적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국가 폭력은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특히 2013년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에 정점에 달했다고 저는 봅니다. 쿠데타 이후 이집트에서 경제적·정치적·사회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그 중에서도 정치 활동 억압은 특히 최고조에 달했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국 사례를 언급하자면, 38년 전에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현재 이집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광주에서 수백 명이 사망했는데, 지금 이집트에서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구금

그래서 저는 난민 신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에 도착했는데, 한국에 오는 대부분의 난민들이 그렇듯이 언어와 문화 차이가 장벽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프랑스어를 조금 하고 아랍어도 당연히 합니다. 그런데 이런 언어 능력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이랑 소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출입국·외국인청은 인터뷰를 할 때 아랍어 통역사를 고용하지만 통역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실수와 오류가 발생합니다. 저도 인터뷰가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아서 공항 내 구금 시설에 한 달 동안 붙잡혀 있었습니다.

난민 신청자들이 공항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구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이는 1년에서 2년까지도 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구금돼 있습니다. 저는 변호사들과 한국인 난민 지원 단체들과 연락을 취하려고 그 안에서 많은 노력을 했었습니다.

언어와 문화 상 차이점 외에도 난민들이 한국에 도착했을 때 좀더 근본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이집트는 경제력에서 한국과 격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한국에서 제가 하루 동안 쓰는 돈이 이집트에서 한두 달가량 동안 쓸 돈에 맞먹습니다. 옆에 앉아 계신 [통역사] 박이랑 씨는 이집트에 가 보셔서 제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아마 아실 겁니다.

제가 한국에 왔을 때 겪었던 또 다른 문제는 머물 곳을 찾고 매일 먹을 양식을 구하는 문제였습니다. 공항에서 간신히 나왔을 때 겪었던 일입니다. 특히 저는 겨울에 도착했는데 겨울 옷이 너무 비싸서 굉장히 춥게 지냈습니다. 이런 난민을 위해서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지원을 얻으려면, 많은 경우 그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오래 걸립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것들을 혼자서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난민들은 공항을 빠져 나오더라도 길거리에서 자거나 사우나나 찜질방 같은 데서 수개월씩 살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립니다. 자신들의 선택이 아닙니다.

저도 한국에서 인종차별 같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물론 한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 등을 겪었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 사회에서 난민이나 이주민 문제가 굉장히 생소하다는 점도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일자리를 구하는 등에서 인종차별을 겪는 이유는 제 피부색이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건을 사러 가게에 갔는데 제 얼굴색을 보더니 상품 판매를 거부하는 일들을 겪었습니다. 백인이라면 절대 겪지 않을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언어도 여러가지 구사할 수 있고 지식도 있고 신체적으로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거절당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난민 신청자들의 경우, 사용자들이 G1 비자를 보면 난민 신청자라는 걸 바로 알기 때문에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출입국·외국인청에서도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많이 경험했던 편은 아니지만 난민 심사 인터뷰를 할 때 ‘이들은 이집트인들이 오는 걸 진짜 싫어하는구나’ 하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난민으로서 생활하려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인데도 ‘일 하러 왔으면 왜 한국에 왔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한국 난민들의 상황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한 통계를 본 적이 있는데, 한국에 오는 난민 중에는 무슬림이 많았습니다. 중동에서도 오고, 우즈베키스탄·중국에서도 오고 해서 무슬림 난민의 비율이 전체의 50~60퍼센트 정도 된다고 합니다. 특히 무슬림들과 아랍인들은 언어와 문화적으로 한국과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더 어려움에 처하고 차별에 노출됩니다. 일상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무슬림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 즉 할랄[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축된 고기]을 구하는 것입니다. 또 얼마 전에 한 한국인 노인이 이집트인 청년에게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폭언하고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보인 영상이 SNS에서 돌았던 적도 있는데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아랍인 난민 그리고 무슬림들이 이렇듯 많은 차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중동의 전쟁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이집트와 중동에서 왜 이렇게 난민이 많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성격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중동 전역에서 많은 내전과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2011년 혁명 이후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정치적 활동가들은 탄압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적 활동가들은 무슬림형제단이든 좌파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이든 자유주의자이든 모두 다 탄압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동의 상황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종파 분쟁이 많이 일어나고 있고 강대국들도 자원을 차지하려고 침탈하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중동에서 벌어지는 쟁투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리아와 예멘과 리비아에서 볼 수 있듯이 강대국들이 중동의 풍부한 지하자원, 석유와 가스를 차지하려고 침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전이 벌어진다고 봅니다.

물론 그러한 내전이 항상 종파 갈등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종파 갈등으로 변질되고 악화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 시작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개입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내전을 벌이다 죽어가는 아랍인들의 시체 위에, 미국의 지원을 업은 이스라엘 같은 테러 국가가 서서 현 상태를 유지하려 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랍인들이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서로 단결한다면 종파 갈등과 강대국들의 개입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대국들이 이처럼 자원을 노리고 침탈하는 일이 중동과 아랍인들에게만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아시아에서도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고 중국을 침탈하고, 프랑스와 벨기에와 독일이 아프리카를 오랫동안 점령하고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종파주의 체제를 수립하고 전쟁을 일으켰듯이 다른 지역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제 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정리 발언

우선 청중 여러분들이 해준 질문과 발언에 대해서 제가 간단하게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가짜 난민”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언급이 있었는데요. 이 ‘가짜’ 난민이라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입니다. ‘불법’ 또는 ‘가짜’ 노동자든 이주노동자든 간에, 이 사람들이 ‘가짜’일 순 있지만 한국 또는 세계 어디에서나 굉장히 중요한 경제적 기여를 하고 있고, 특히 경제의 가장 낮은 부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라는 점이 저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축사 같은 데서 가장 더러운 일을 하고 있고, 곡물 수확처럼 육체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기도 하고 손가락이 절단되는 건 예삿일이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 방에 계신 분 누구도 그 일들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사용자들도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해서 ‘불법’ 이주민들을 가장 위험하고 저임금인 일자리에 내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이슬람에 대해서 어색해 하고 두려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은 칼 같은 존재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칼은 사과 같은 과일을 자르는 데도 사용될 수 있지만, 살인을 할 때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종교가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유대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종교가 특정 국면에서는 여성 억압 등 다양한 억압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종교마다 두 가지 측면이 있고 이를 봐야 합니다. 잘 이용하면 사람들에게 유익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목격했던 이주민·난민에 대한 공격은 바로 한국의 기독교 교회들이 한 인종차별적인 공격들이었습니다. 유대교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렇듯 종교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오셔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어 굉장히 감사합니다. 역사를 보면, 유럽 출신의 난민들이 이집트로 피난을 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한국 전쟁 때 한국인 난민들도 이집트로 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한국과 이집트의 관계에 대해서 잘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독립을 논의했던 중요한 회담 중 하나인 카이로 회담이 1943년에 이집트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1948년에 남한 정부를 가장 먼저 인정했던 나라가 바로 이집트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랍 국가들은 많은 한국인들, 유럽인들을 난민으로 받아 들이기도 했습니다. 더 가까운 과거에도 여러분들의 부모 세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등 아랍 지역에 노동을 하기 위해서 많이 오셨다는 점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예멘인들이 제주도에서 받는 대우를 당시 한국인들이 아랍에서 받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새 세대의 학생들인 여러분이 이런 문화적 차이와 갈등, 민족간의 갈등 등을 극복하고 우리가 단결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기여해 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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