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대상 대학 폐쇄 말고 국공립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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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지난 23일 ‘2018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가결과를 발표했다. 이의신청 기간을 거쳐 8월 말 확정할 계획이다.
이름을 바꾸고 일부 수정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계획했던 2주기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그대로 이어 가는 내용이다.
교육부가 이번에 발표한 2주기 구조조정안은 상위 64퍼센트(자율개선대학)에게는 인원 감축에 자율권을 주지만, 하위 36퍼센트(역량강화대학, 진단제외대학, 재정지원제한대학1·2)에게는 7~35퍼센트에 달하는 정원 감축을 요구했다. 최하위 등급의 경우 1주기 구조조정 때는 정원의 15퍼센트를 감축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그 폭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한국처럼 정부의 대학 지원이 미비하고 사립대학의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35퍼센트 정원 감축은 사실상 학교 문을 닫으라는 압박과 같다. 이미 1주기 평가 때 최하위 등급을 받은 4년제 대학의 60퍼센트가 폐교했다. 이번에는 그 압력이 더 강해질 것이다.
최하위 대학이 아니더라도 많은 대학이 재정난에 빠질 수 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대입자 수가 급격하게 감소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 때문에 2021학년도 대입자 수가 올해 정원인 48만 3000명에 비해 5만 6000명 부족해질 것이고, 38개 대학이 폐교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가 곧장 대학의 존폐 위기로 이어져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이제까지 정부가 대학 교육을 책임지지 않고 시장주의적으로 운영해 온 탓이 크다.
한국은 고등교육에서 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9877달러로 OECD 평균(1만 5028달러)에 한참 못 미친다. 국립대 비율이 OECD 최하위 수준이라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 비율이 75퍼센트에 이른다.
게다가 정부의 재정 지원은 그나마도 절반가량이 상위 20개 대학에 집중돼 있다. 전체 대학의 3분의 1가량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대학 지원을 늘리기는커녕 퇴출을 유도하는 것은 교육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고 대학 구성원들에게 큰 고통을 줄 것이다. 이제까지 교육을 무계획적으로 시장에 맡겨서 생긴 정부 정책 실패의 책임을 대학 구성원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폐교 대학
폐교되는 학교의 학생, 교·직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하기 힘들다. 폐교 대학의 교·직원들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해고자가 된다. 2000년부터 올해 초까지 대학 16곳이 강제 폐쇄되거나 자진 폐쇄했는데(문재인 정부 들어 벌써 4곳), 이런 대학의 교직원들이 소리 없이 잘려 나간 것이다.
등록금 내고 학교 다닌 죄밖에 없는 학생들은 ‘부실’ 대학의 ‘부실’ 학생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편입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여러 어려운 조건들 때문에 실제 편입율은 44퍼센트에 불과하다.(2014년 김태년 민주당 의원 발표)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고, 지방 학생들의 교육 기회가 더욱 제한되는 것도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부의 불평등이 교육의 불평등이 되는 상황에서 주로 가난한 노동계급의 자녀들이 이런 고통을 겪을 것이다.
게다가 대학 퇴출 문제는 단지 일부 대학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다른 대학들에서도 퇴출을 피하려면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질 것이다. 대학 전반에 시장주의적 운영 방식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미 지난 20여 년간 대학 구성원들은 시장주의 교육 정책 때문에 몸살을 앓아 왔다. 기업 맞춤형 인재 육성이 강조되면서 지난 10년간 인문, 사회계열 입학 정원은 1만 명가량 줄어들었다. 반면 공대 정원은 1만 명가량 늘었고 의약 계열은 2배로 늘었다. 인문·사회·자연·예술 계열의 학생들에게는 학과 통폐합 때문에 자신의 학과가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일상이 돼 버렸다. 학생 선별 기준의 엄정화를 요구하는 기업들의 필요에 맞춰 상대평가가 강화되고, 재수강 기준 등도 강화됐다.
교·직원들에 대한 평가도 강화돼 성과연봉제가 도입되고, 각종 비정규직 교수와 직원이 늘어났다. 대학이 수익성을 좇다 보니 열악한 비정규직 교원들의 임금은 더욱 낮아졌다. 기업의 이름을 딴 화려한 건물들은 늘어났지만 청소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휴게실 하나 없다. 학생들의 자치 공간도 줄어 간다.
대학 당국들은 대학 순위에서 더 높은 위치에 오르려고 끊임없이 경쟁하며 기업처럼 행동해 왔다. 구성원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학내 민주주의는 더욱 후퇴해 왔다.
이 과정에서 대학 서열화, 지역 불평등, 교육에서 계급 격차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정부는 청년실업이 높다며 대학 구조조정을 강요했다. 그러나 대학 구조조정이 진행된 지난 수년간 청년 실업은 오히려 악화했다. 4년제 대졸자의 고용률은 2006년 76.6퍼센트에서 2015년 72퍼센트로 감소했고, 정규직 취업률도 2006년 63.1퍼센트에서 2015년 52.5퍼센트로 감소했다.
진정한 문제는 심각한 경제 위기를 낳는 자본주의 체제와, 노동자들을 공격하며 안정적 일자리를 줄여 온 기업주와 정부에게 있다.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은 이런 진정한 문제를 가리는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낸다.
교육 받을 권리
대학 구조조정 추진 요인에 단지 학령인구 감소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도 봐야 한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정부는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에는 인력이 부족한데 대졸 청년들은 ‘눈높이’가 너무 높다며 대학 진학률을 낮추는 정책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선취업, 후진학’을 강조하고 고졸 취업률을 높이려 했는데, 여기에는 ‘청년 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낭비이므로 대학에 가지 않고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할 청년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돼 있다. 실제로 2009년 77.8퍼센트이던 대학진학률은 2017년 68.9퍼센트로 떨어졌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이다. 대학은 자본주의적 기업 경쟁력,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력 양성소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 발달을 이룰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전임 교원 1인당 학생수가 OECD 평균의 두 배나 되는 현실에서 양질의 교육을 위해서는 대학 퇴출이 아니라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부실’ 운영의 책임이 있는 사립대학들을 국공립화하고, 교육재정을 대폭 확충해 교육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문재인은 “교육 공공성 확대”를 말했지만 뻔뻔스럽게도 공약을 파기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 지원을 대폭 강화하는 공영형 사립대학을 설립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최근 발표된 내년 예산에서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했다. 대학 지원 예산을 4500억 원가량 늘렸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한국의 고등교육 재정이 OECD 평균 수준에 이르려면 4조 원 넘게 증액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구조조정에 맞서며 대학 공공성을 강화하려면 정부와 독립적인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정부의 논리를 효과적으로 반박하며, 대학의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벌어질 공격에 대비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