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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재 동참은 한반도 평화에도 해로운 선택

이란 핵협정을 쓰레기통에 처박기로 한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결정은 중동을 비롯한 국제 정세에 큰 파급을 미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대(對)이란 제재를 복원해 이란 경제의 숨통을 죄기 시작했다. 11월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트럼프 정부의 “최대의 압박” 때문에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밖에 없었듯이 이란도 이와 비슷한 압력 앞에서는 협상 말고는 다른 선택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포린 어페어스》 11~12월 호 기고문).

대이란 봉쇄는 트럼프 정부의 제국주의적 중동 정책에서 핵심이다. 트럼프는 이라크 전쟁 이후 중동에서 위세가 커진 이란을 제압하는 것이 미국의 중동 패권 유지를 위해 사활적이라고 여긴다. 이를 위해 강공책을 펴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이란 핵협정 파기와 제재 강화는 중동 정세를 더 혼돈에 빠뜨리고, 이란을 비롯한 중동 민중에게 또 다른 재앙이 될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이란 제재 강화는 한국 정부와 주요 수출 기업들에게 곤혹스런 일이다. 지난해 한국 전체 석유 수입량의 13퍼센트가 이란산이었다. 이란산 석유 수입분 73퍼센트가 한국 석유화학산업에 중요한 원료인 초경질유(콘덴세이트)다. 석유 외에도, 한국에게 이란은 꽤 중요한 중동 교역 파트너다.

11월 5일 트럼프 정부는 2차 대이란 제재 복원 조처를 단행했다. 이란산 석유와 석유화학제품 거래 금지, 이란 금융기관과의 거래 금지를 핵심으로 하는 제재 조처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 제재 조처의 “예외”로 인정받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트럼프 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8개국을 한시적 제재 예외 국가로 인정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이 제재 “예외”로 인정받은 것은 “한미동맹의 정신에 기초해” 미국이 “최대의 유연성”을 발휘한 덕분이라고 했다.

최대의 유연성?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다른 이유에서 8개국을 한시적 제재 예외로 인정한 것 같다. 트럼프 정부는 대이란 제재를 감행하는 한편, 이로 말미암은 국제 유가의 폭등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그것이 미국 보수 유권자들의 불만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 4일 미국 주간지 《타임》도 이렇게 지적했다. “미국 정부의 전략은 이란을 매우 혹독하게 제재해서 이란으로 하여금 핵 개발 야망을 영구적으로 폐기할 협상에 나오도록, 미국이 중동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라고 부르는 것을 중단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몇몇 나라는 제재 대상에서 면제해 줌으로써 국제 유가가 폭등하지 않도록, 특히 미국 선거철에 그러지 않도록 하려고 애쓴다.”

이것이 중국·인도·일본·한국처럼 세계에서 석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들이 “8개국”에 포함된 이유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한테 “예외” 조처를 받아냈지만, 공짜는 아니다. “이란산 원유 수입의 상당한 감축”이 예외 조처의 전제 조건이다. 한국은 미국에게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 수준을 구체적으로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약속을 이행한다는 전제로 6개월마다 예외 인정 연장을 신청해야 한다.

이는 이란 핵합의 이전에 견줘 한국이 대이란 제재 협조 수위를 명백히 높인 것이다.

또한 예외 조처에도 불구하고, 자동차·가전·건설 등 여러 부문의 대이란 교역에 차질을 빚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한국과 이란이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려고 물물교환 방식을 궁여지책으로 검토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중동 정세 변화 등에 따라, 한국 등에 대한 예외 조처는 진짜 “한시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권력자들에게 중동 패권은 단기적 유가 인상이나 지지율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최근의 무역 전쟁에서 보듯 한국, 유럽 등 동맹국 자본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그보다도 부차적인 문제다.

이란 제재 문제는 한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미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상충하는 사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제재 협조 압력에 문재인 정부가 타협한 점은 한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에 얽히고설켜 있음을 반영한다.

불량 정권

트럼프의 대이란 제재와 한국의 타협은 북한에게 나름의 교훈을 줄 수 있다. 미국 권력층, 특히 공화당 우익이 이란·북한 등을 “불량 정권(국가)”로 한데 묶어서 두들겨 왔기 때문이다. 공식 이데올로기나 정권의 기원 등에서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데도 말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 핵협정을 파기하며 북한과의 새로운 핵 합의는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일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폼페이오도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북한과의 새 합의는 이란 핵협정보다 비핵화 수준과 검증 기준 면에서 훨씬 더 강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가 앞으로도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계속 들이밀 공산이 큰 것이다.

북한 권력층은 이란의 경험을 눈여겨 볼 것이다. 미국과의 거래는 언제든 파기될 수 있고 제재가 다시 작동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타협은 중동 평화에도, 한반도 평화에도 나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