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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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와 현대차가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상에 잠정합의했다.
문재인 정부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국무총리 이낙연은 “노사 상생의 새 모델”이라고 치켜세우며 차질 없는 정부 지원을 약속했다. 언론들도 지방 정부 주도의 노사민정 대타협이 일군 “첫 일자리 정책 성공 사례”라며 기대를 쏟아 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특히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보다 더 나쁜 일자리를 강요하고 있다”고 옳게 비판하며 ‘광주형 일자리 폐기’ 투쟁을 선언했다.
최저임금 수준인 반의 반값 임금
합의문은 주 44시간 노동에 평균 연봉 3500만 원, 경영이 안정화될 때까지 단체협약 유예, 직무급제 도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임금은 연봉 3500만 원보다 더 못하다. 매월 16시간 초과근무를 포함하기 때문에 연장근로 수당을 제하면 연봉은 2000만 원대로 떨어진다. 3500만 원은 관리자들을 포함한 평균치이므로 그 거품도 걷어 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생산직 노동자들의 연봉은 내년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두고 소득주도 성장, 임금 격차 해소를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정부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확대해 노동시장 전반의 임금·조건을 끌어내리려 한다. 경제 위기에서 기업주들의 이윤을 회복하려고 노동자들을 희생양 삼는 것이다.
또, 경영이 안정화 될 때까지 단체협약을 유예하겠다는 것은 노동권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 존중”을 표방하는 것이 순전한 위선임을 보여 준다. 저임금에, 노조할 권리마저 빼앗겠다는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기존의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이 너무 많은 임금과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초해 설계됐다. 애초부터 임금 하향평준화를 노렸다. 그러면서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 격차를 줄이고 “사회 연대”를 이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은 사회악이기는커녕 순기능을 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조건을 개선하면 중소·하청 노동자들과의 격차를 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조건도 동반 상승한다.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투쟁해 성과를 내면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싸울 자신감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노동운동 내에서는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면서도 반의 반값 임금 문제를 부각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는 견해가 상당히 퍼져 있기 때문이다. 연대임금론을 펴 온 현대차지부 하부영 집행부도 그런 경우다. 울산지역의 정의당·민중당·노동당 등도 광주형 일자리 반대에 임금 문제를 내세우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방어를 부차시한다면 효과적으로 투쟁을 조직하기 어렵다. 임금 삭감에 단호히 반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노동자 모두에 해로운
정부와 언론들은 광주형 일자리가 고용난에 숨통을 트여 주는 새로운 일자리 모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가 실업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제시하는 일자리가 왜 고작 저임금·저질 일자리여야 하는가?
정부는 돈이 없는 게 아니다. 기업주·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도 있다. 임금·조건 하락 없는 노동시간 대폭 단축을 추진해 일자리를 크게 늘릴 수도 있다. 그런데 되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등 거꾸로만 가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 반대는 실업에 내몰린 청년들을 등지는 “귀족노조의 이기심”이 아니다. 저임금 일자리 양산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청년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노동운동은 정부가 청년들에게 저질 일자리냐 실업이냐 하는 나쁜 선택을 강요하는 데 단호히 반대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라고 요구해야 한다.
한편, 광주에 생길 신규 일자리 규모가 크게 부풀려져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신설 공장에서 직접 고용하겠다는 인원은 1000여 명 수준에 불과하다. 연관 기업들에서 간접적으로 1만 명 이상 고용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지만,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고려할 때 이를 보증하기도 어렵다.
국내 경차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를 넘어 판매가 줄어들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도 마찬가지인데다 관세 장벽도 높아지고 있어 해외에 내다 팔기도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 인건비만 줄인다고 기업들이 알아서 투자와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현대·기아차 노동자들도 “과잉 중복 투자”로 인해 일자리가 위협받지 않을까 걱정한다. 기업주들이 너도나도 생산대수를 늘리며 각축전을 벌이다가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노동자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겨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광주가 아니라 울산에 투자하라거나, 광주형 일자리가 아니라 전기차에 투자하라고 제안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는 자칫 작은 파이를 놓고 노동계급 내부에서 반목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 또, 노조가 기업의 경쟁력을 위한 투자 방식이나 산업 정책을 내놓는 데 힘을 쏟다 보면 고용을 위해 임금·조건 등을 희생해야 한다는 압력에 굴복하기 쉽다.
단호하게 투쟁을 확대해야
이번 합의문에는 노사민정 협력을 지속해 나가면서 안정적 노사관계를 추구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안 그래도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산업 평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제시해 왔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사회적 교섭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계급 협조를 끌어내고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한국노총은 노동자들을 배신하고 “대승적으로 양보·협조”하는 구실을 했다.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상이 잠정합의 됐지만, 아직 사태가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은 생산에 타격을 줘서 사측에 압박을 가하고 정부의 저임금 일자리 양산 정책에 제동을 걸 힘이 있다.
현대차·기아차지부는 12월 6일 2시간 파업을 한다. 그런데 그 이상의 계획은 결정된 게 없다. 현대차지부 확대운영위원회는 “투쟁 방침을 지부장에게 위임”하기로 했다. 시간을 끌어 투쟁의 김을 빼기보다 파업을 단호하게 확대해 효과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저임금 일자리 양산에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 만큼,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도 시급히 조직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