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선거 결과가 보여 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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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전교조 위원장 선거에서 기호3번 권정오·김현진 후보(‘소통과 실천’ 경향)가 52.66퍼센트를 득표해 당선했다.
전교조 내 상대적 좌파 의견그룹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이하 교찾사) 경향인 기호1번 진영효·김정혜 후보는 38.41퍼센트를 얻었고, ‘페미니즘 선본’을 표방한 기호2번 김성애·양민주 후보는 8.93퍼센트를 얻었다. 이로써 지난 6년간 전교조 지도부를 운영한 교찾사는 집행권을 내주게 됐다.
교찾사와 ‘소통과 실천’ 경향 후보가 경선을 벌인 서울·충남 지부장 선거에서도 ‘소통과 실천’ 후보가 모두 당선했다. 현 서울·충남 지부장은 교찾사 경향이었다.
지난 선거와 견주면 ‘소통과 실천’ 경향은 전 지역에서 골고루 득표가 늘어 득표율이 7퍼센트포인트 올랐다. 반면 교찾사 후보는 16퍼센트포인트나 떨어졌다.
기호2번이 교찾사의 표를 잠식한 듯하지만, 교찾사가 결선 진출도 못할 정도로만 득표한 것은 명백히 좌파적 조합원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교찾사의 전통적 강세 지역인 강원, 대구, 전북, 충북 등에서 투표율이 하락한 것도 마찬가지다. 울산에서는 권정오·김현진 후보가 오랜만에 교찾사 후보보다 더 많이 득표했다.
본지가 지난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교찾사 선본이 좌파적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서 전교조 선거 지형이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이동한 게 문제였다. 교육 부문을 포함해 문재인 정부의 공약 포기와 우경화가 분명해지면서 정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가 커지고 있지만, 교찾사 선본은 이런 정서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선거 기간 동안 ‘선본 간에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
모든 선본이 ‘투쟁과 교섭의 병행’을 얘기하며 사실상 교섭에 강조점을 두자, 조합원들은 그동안 교섭에 더 강조점을 둬 온 후보조에게 표를 던졌다. 버터 맛 나는 마가린보다는 버터를 선택한 것이다.
그동안 교찾사가 전교조 지도부를 운영했지만 점차 투쟁적이고 급진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것도 교찾사의 득표율이 하락한 원인일 것이다. 예를 들어, 기간제 교사나 비정규직 강사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제기됐을 때 전교조 지도부는 정규직화를 지지하지 않았다.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정규 교사, 기간제 교사, 예비 교사들을 단결시키려 노력하기보다 현실론을 내세우며 정부와 협상 가능한 안을 만들려 했다. 이런 태도는 조합원들에게 좌파적 대안을 보여 주지 못했고, 좌파적인 조합원들을 실망시켰을 것이다.
한편, 전교조 조합원의 상당수가 여성인데도 ‘페미니즘 선본’을 표방한 기호2번은 많은 득표를 하지는 못했다. ‘학교와 전교조 내의 성차별적 문화를 바꾸겠다’는 정도로는 큰 매력을 주지 못한 것이다. 여성 교사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들에 대한 주장은 약했고, 또 다른 차별 문제인 기간제 교사 쟁점에서 원칙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게 약점이었다.
최근 터져 나온 젊은 여성들의 대규모 시위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 포기를 철저히 비판하고, 전투적이고 끈질긴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 전교조 여성 활동가들은 이런 점을 주목해야 한다.
새 집행부는 당선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가 교육 개혁을 위해 전교조와 함께 손잡고 추진해 나가고, 하루 빨리 촛불혁명의 정신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여전히 정부와의 협상으로 교육 개혁을 해 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 속도 조절, 공공부문 직무급 도입, 의료 영리화 등 친기업적 정책들을 강화하고 있다. 전교조 새 집행부의 협상 위주 노선은 곧 난관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따라서 전교조 내 좌파 활동가들의 구실이 중요하다. 기층에서 정부의 공약 포기와 우경화를 비판하면서 새 집행부에게 투쟁의 압력을 넣어야 한다.
그리고 이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그동안 집행부를 배출하고 떠받치는 데 급급해 좌파적 원칙을 저버리고 기회주의적으로 타협해 온 것에 대해 철저하게 돌아봐야 한다. 기회주의는 근시안적으로 단기적인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장기적인 노동자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이동한 이번 선거 지형은 그 후과의 일부(단지 일부일 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