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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미 통상 협정과 개성공단

오는 6월 1일부터 3일까지 제주도에서 아펙 통상장관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 WTO 도하개발아젠다와 각종 통상 관련 협정들이 논의될 듯하다.

지난 달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은 워싱턴으로 달려가 미국 고위 관료들한테 “오는 11월 아펙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양국간 FTA(자유무역협정)와 BIT(투자협정) 협상을 마무리하자”고 제안했다. 6월 통상장관회의를 거쳐 11월에는 아예 구체적인 양해각서까지 만들자는 것이었다.

또, 지난 3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다시 요구하고 나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2003년 12월 미국 전역을 강타한 광우병 파동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개성공단 상품을 한국산이 아니라 북한산으로 표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 되면 북한을 소위 ‘깡패국가’로 여기는 나라들은 북한 상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려 할 것이고, 개성공단 제품의 미국과 일본 시장 상륙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될 것이다.

이미 한국 관세청은 개성공단의 완제품을 한국산으로 표시하는 시행령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미국 무역대표부는 여전히 개성공단 제품을 북한산으로 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사실은 미국 무역대표부가 개성공단 제품 한국산 표시를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진척 상황과 연계하고 한국 정부한테서 통상과 관련한 ‘커다란’ 양보를 얻어내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가능성을 한국 정부는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다. “한국 정부 내에서는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나 스크린 쿼터 감축 등과 연계해 협상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서울신문〉 5월 2일치).

그 동안 스크린쿼터를 한미 BIT에 포함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미국 정부와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던 노무현 정부가 ‘민족공조의 일환’인 개성공단 제품 한국산 표기를 ‘경제적 소파’라는 한미 BIT 추진과 맞바꾸겠다는 것이다.

교활하게도 노무현 정부는 일부 민족주의 좌파가 개성공단을 “민족협력의 전면화”로 여긴다는 점을 이용해 한미 BIT 등에 반대하는 여론이 분열되기를 바란다.

물론 남북간 교류 활성화는 눈살 찌푸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남북경협을 칭송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은 월 57.5달러로 국내 법정 최저임금 56만 7천 원의 약 9분의 1 수준이며 중국의 최저임금보다도 적다.

2003년 9월 18일 채택된 ‘개성공업지구 로동규정’ 25조는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종업원 월 최저노임은 전년도 종업원 월 최저 노임의 5퍼센트를 초과하여 높일 수 없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들도 남한 노동자들과 동일한 임금 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 남한의 노동자 운동과 좌파들은 남북한 노동자들의 단결이라는 관점에서 위와 같은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http://www.615.or.kr) 민족경제연구모임(이하 연구모임)이 낸 소책자 《민족경제의 희망 개성공단》은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당 노동생산성이 “가장 근면하기로 소문난 남한 노동자들의 12배에 달”한다며 칭송하고 있다. 임금당 노동생산성은 바로 착취율의 다른 표현 아닌가.

심지어 연구모임은 한국 기업의 소득세 면제 기간이 중국의 칭다오 개발구보다 두 배나 더 길고 5년 후 감면 세율도 높다는 사실을 개성공단의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물론 연구모임은 이스라엘에는 핵무기 기술을 전수해 온 미국 정부가 군사 기술 활용 가능성 운운하며 개성공단에는 공작기계나 검사장비, 전자·광학·레이저 관련 장비조차 반입을 금지하는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이런 반대는 일관돼야 한다. 제국주의의 전쟁 몰이는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군사적 얼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국주의에 일관되게 반대하려면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이나 노동자들의 권리 침해 등에도 반대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 노동자들을 쥐어 짜는 규정들을 민족공조라고 여기는 관점보다는 남북한 노동자들의 동등한 처우와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계급 공조를 주장하는 관점이 기업의 초헌법적 권리장전인 BIT와 FTA에 맞서 싸우기에 훨씬 더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