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2252명 공무원 전환’만으로는 집배원 죽음을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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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엔 외투를 서너 개씩 껴입고, 그래도 추울까 봐 마지막으로 바람막이용 비옷까지 입고 배달을 시작한다.
추운 날씨에는 그렇게 입어도 춥다.
오토바이에 올라타 속력을 올린다. 그럼 가뜩이나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운데, 누가 날카로운 얼음송곳으로 얼굴과 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 정말이지, 살이 깨지고 찢어질 것처럼 춥다.
평소 같은 걸음걸이대로 걸어다니면 배달할 물량의 3분의 1도 배달 못 한다. 배달할 때는 평소보다 두세 배 빨라야 한다. 걸음걸이, 말투, 밥 먹는 속도, 심지어 호흡까지도 평소보다 두세 배 빨라야 한다. 그 상태로 오후 4시까지 쉼 없이 돌아다녀야 한다. 우체국 들어가서도 우편물 구분 등 할 일이 많다. 오후 5시나 6시까지 우편물을 배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서두른다.
날도 춥고 시간이 지날수록 몸도 지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중력까지 잃으면 안 된다. 우편물이나 택배를 잘못 전달할 수 있다. 혹은 오토바이 사고가 날 수도 있고. 그러니 우체국 복귀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하지만 평소보다 물량이 많을 때 혹은 동료가 다쳐서 못 나올 때, 체력과 집중력은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미 한계치까지 올라온 상태여서, 그 한계치가 쉽게 넘어가는 거다. 그리고 한계치 넘어가는 상황은 자주 온다.
감기에 걸려도 걸어 다닐 수만 있으면 집배원은 대부분 출근한다. 내가 빠지면 동료 집배원들의 한계치가 넘어가니까. 하지만 이미 감기에 걸렸다는 건 내 한계치가 넘어간 거다.
이런 상황에 놓이는 건 상시계약집배원[무기계약직]이든 정규직 집배원이든 똑같다. 집배원들은 일하는 데 차이가 없다.
집배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이 늘 과로사를 비롯한 사망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줄곧 정규직 인력 증원을 요구했고, 업무가 똑같은데 왜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이 있는지 모르겠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요구했다.
집배원들 요구의 본질은 ‘정규직 인력 증원’이다. 인력 증원과 더불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한 거다. 그래야 집배원이 지금보다는 안전하니까.
하지만 정부는 이걸 이해하지 못했다. 인력 증원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만을 발표했다. 이러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집배원은 지금처럼 늘 과로사를 비롯한 사망사고 위험에 노출된다.
이런 문제를 좀더 객관적으로 진단해 보려고 2017년 8월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민간 전문가 등 열 명으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구성됐다.
기획추진단은 2018년 10월 기자회견에서 집배원들의 노동 시간, 건강 상태, 직무 스트레스 등 노동 조건 실태를 발표했다.
“집배원의 2017년 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한국 임금노동자 평균(2016년 2052시간)보다 693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16년 1763시간)보다 982시간 길다. 지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총 166명의 집배원이 사망하였다. 건강역학조사와 직무스트레스 조사, 사망 자료 분석 결과 집배원들의 심혈관계 질환, 호흡기 질환, 소화기 질환 위험이 높게 나타났다. 이 질환들은 ‘장시간 노동’과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획추진단은 이 같은 노동 조건 실태를 바탕으로 7대 정책권고안도 발표했다. 그 첫째가 중노동 탈피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인력 증원이었다. 2019년에 정규직 집배원 1000명 증원을 비롯해 향후 2000명 정규직 증원을 권고했다. 전국집배노동조합은 정규직 집배원 6000여 명 증원을 줄곧 요구해 왔다.
이제 우정사업본부의 발표를 보자.
“우정사업본부는 2019년에 2252명의 상시집배·택배원을 공무원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기획추진단의 집배원 1000명 증원 권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당 예산이 국회에서 삭감당했기 때문이다.”
사실 집배원 과로사를 비롯한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1000명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반갑다. 하지만 집배원들이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늘 과로사를 비롯한 사망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해도 인력이 증원되지 않으면 과로사를 비롯한 사망사고 위험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투쟁을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 크리스마스이브 때도 광주에서 한 집배원이 배달 도중 오토바이 사고로 숨졌다. 연말 시즌과 크리스마스이브까지 겹치면서 평소보다 20퍼센트 가까이 증가한 우편물을 배달 중이었다. 한계치를 넘어선 거다.
그리고 바로 이틀 뒤 12월 26일 춘천에서 또 한 명의 집배원이 숨졌다. 이 집배원은 8월에도 다리 골절상을 입어 한 달간 입원했지만, 본인으로 인해 팀 동료들의 근무 시간이 늘어나자 아픈 몸 이끌고 일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역시 한계치를 넘어선 거다.
‘2252명 공무원 전환’만으로는 집배원의 죽음을 멈출 수 없다. 아무리 정규직 공무원이 돼도 인원이 늘지 않으면 집배원은 계속 죽는다. 국회와 정부는 살이 깨지고 찢어질 것 같은 추위 속에서 배달하다 죽은 이들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