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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딛고 싸우기: 케이블방송 설치수리 노동자에 대한 기록》: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투쟁 잠재력을 생동감 있게 그리다

《땅딛고 싸우기: 케이블방송 설치수리 노동자에 대한 기록》 | 박장준, 차재민 지음 | 북콤마 | 2015년 | 16,000원

맨몸으로 전신주에 올라 케이블을 수리하는 노동자. 그 아슬아슬한 모습은 방송·통신 설치수리 노동자들의 삶을 압축해 놓은 듯하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고용 등등. 노동자들은 언제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전신주에 매달린 상황을 자신의 처지에 비유하곤 했다. 《땅딛고 싸우기》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에 나선 케이블방송 설치수리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의 1부는 2014년 씨앤앰(현 딜라이브) 케이블방송 설치수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생생하게 다룬다. 노동자들의 분노와 굴곡진 투쟁 과정을 엿볼 수 있다. 2부는 2013년 노조 건설 직후 노동자 13명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자신감, 동료애, 힘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씨앤앰 비정규직 중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회사의 정규직으로 근무한 이들도 있었다. 당시에 이들은 “노조는 먼 나라 이야기”, “절대 내 삶에 그런 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낮은 임금과 부당한 업무 지시 등 열악한 조건에 내몰리자, 더는 참지 않고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비정규직지부를 결성했다. 2010년 먼저 노동조합을 만든 정규직 노동자들이 도움을 줬다.

한 노동자는 노조 결성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노조가 처음 결성되는 장소에 가게 됐어요.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 다 같이 모여서 거대 기업이나 회사를 상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노동조합이 생긴 다음에야 알게 됐죠.”

2013년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인정받고 단체협약도 쟁취했다. 그런데 1년 뒤 사측이 반격에 나섰다.

당시 씨앤앰은 가입자 240만 명을 보유한 케이블방송 업계 3위 사업자였다. 그러나 IPTV(인터넷 TV) 등장으로 케이블TV가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씨앤앰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맥쿼리가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짜기 시작한 것이다.

“월급이 한 푼도 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깎이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수리기사나 설치기사에게 가입자를 늘려 오라는 영업 압박도 가해졌다. 노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가족과 지인 이름을 빌려서 자기 돈으로 가입하는 이른바 ‘자뻑’까지 해야 했다.

씨앤앰 설치수리 비정규직 중에는 사측의 작업 지시와 통제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임에도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로 고용돼 있는 이들도 있다. 사측은 이런 꼼수를 통해 유류비, 재료비, 심지어 유니폼 비용까지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4대 보험 등 기초적 복지도 제공하지 않았다. 직접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비용 부담을 줄이려 한 것이다.

케이블TV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맥쿼리는 틈만 나면 씨앤앰을 매각하려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 이윤 손실을 만회하려 했다.

기회만 보던 이들은 2014년 여름에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씨앤앰의 일부 하도급 업체들은 2013년 맺은 노사 합의를 파기하고 노동자 수십 명을 해고했다. 그리고 노동조합과의 교섭에서 하청업체들은 임금과 단협 개악을 받아들이라고 을러댔다. 씨앤앰 원청과 사모펀드 대주주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과 투쟁에 나섰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노동자들은 파업 기간 노숙 농성을 이어 가며 씨앤앰과 MBK, 맥쿼리에 책임을 물었다. 집에 가스가 끊긴 이도 있고, 차비가 없어 어려움을 겪은 이도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투쟁을 끈질기게 이어 나갔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노동자 두 명이 MBK 본사가 있는 파이낸스빌딩 앞 전광판에서 고공 농성을 했다.

한 노동자는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며칠 만에 끝난다 생각하고 시작한 싸움인데, 이제 모두 간부가 됐고 투사가 됐습니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사측은 직장폐쇄라는 강수를 뒀다. 일당 20만 원의 대체인력 8000명을 동원하며 파업을 파괴하는 데 혈안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런 탄압에 맞서는 데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큰 힘이 됐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연대 파업에 나섰다. MBK와 맥쿼리가 구조조정을 계획하자 정규직 노동자들도 불안함을 느꼈다. 한 정규직 노동자는 말했다. “구조조정을 앞둔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다를 바가 없다.”

압력을 받은 씨앤앰과 MBK파트너스는 연대 파업 이틀만에 노동조합을 만나겠다며 태도를 전환했다.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해 투쟁하자, 많은 이들의 지지와 응원이 이어졌다. 씨앤앰 원청과 사모펀드 MBK, 맥쿼리에 대한 폭로도 터져 나왔다. MBK와 맥쿼리가 최대 주주가 되려 할 때, 정부는 이들의 재무건전성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 외국법인 MBK가 최대 주주가 된 것이 방송법에 저촉되는데도 눈감아 줬다.

노동자들의 단결이 강해지고 씨앤앰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거세지자 결국 씨앤앰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 해고자 전원이 고용 승계됐다. 임금도 인상됐다(정규직 4퍼센트/ 비정규직 12만원). 파업 205일, 노숙 농성 177일, 고공 농성 50일 만의 결과였다.

2013~2014년에 방송·통신 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인상적 투쟁을 벌이며 간접고용 문제를 사회적 화두로 던지고 의미 있는 조직적 전진을 이뤘다. 2013년 10월에는 티브로드 노동자들이 단호한 본사 점거와 연대로 통쾌한 승리를 거뒀다. 이듬해 5월에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본사 앞에 집결해 41일간 진을 치고 노숙 농성을 했다. 이에 씨앤앰과 티브로드 등 케이블 방송 노동자들이 공동 파업에 나섰다. 그리고 그 투쟁은 다시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이어졌다.

저임금, 낮은 처우, 고용 불안정 등 열악한 조건에서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땅 위에서 좌절하지 않고 투쟁했다. 책의 제목이 “땅딛고 싸우기”인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 책은 2014년 투쟁에 대한 상세한 평가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상세하게 기록함으로써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 잠재력을 보여 준다는 큰 장점이 있다.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을 알 수 있는 2부를 먼저 읽은 다음에 2014년 투쟁을 다룬 1부를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