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조선 잔혹사》:
끊임없는 재해·사망사고에 노출된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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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에서 하청 노동자로 일하는 삼촌이 있었다. 10년 전쯤 폐암으로 피를 토하며 돌아가셨다. 용접공이었던 삼촌은 철가루가 가득하고 석면 더미가 그대로 노출된 환경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렸지만, 사측은 산재 처리를 막고 개인 책임으로 돌렸다. 지금 생각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현대조선 잔혹사》는 바로 그런 삶을 살아 가야 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다. 조선소 노동자들의 현실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프레시안〉 기자인 저자는 조선소 하청업체에 취업해 직접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 환경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윤 때문에 희생되는 노동자들
이 책은 조선소에서 벌어지는 재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다. 담배 한 대 태우러 나간 사이에 LNG 탱크에서 일하던 동료가 폭발 사고로 죽은 이야기, 안전 장비 없이 작업하다 익사한 노동자가 바닷 속 족장(비계)에 끼인 채 발견된 이야기, 위험한 ‘혼재 작업’으로 인한 폭발 사고로 죽고, 비가 오는데도 일하다 추락해 죽고, 안전 장비 없이 방사능에 장시간 노출돼 죽은 노동자의 이야기 등등. 조선소에는 이런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20년 전에도 오늘날에도 달라진 게 없다. 저자는 이런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조선소에서 이 같은 끔찍한 산재가 계속 벌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용자들이 이윤 추구에 눈이 멀어서,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은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무리한 공정 기일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안전 규정을 밥 먹듯 무시한다. 그런데도 사고가 나면, 그 책임을 노동자 개인의 탓이라고 떠넘기기 일쑤다.
당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하창민 지회장은 말한다. “외나무 다리 위를 뛰어가라면서 넘어지지 말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일하다 다치면 절대 안 된다’고 하면서도 열흘 안에 끝날 일을 닷새 만에 끝내라고 지시한다. 이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저자는 특히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한다. 조선업 사용자들은 1990년대 이후로 ‘노동 유연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늘려 왔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3.5배가 될 정도로 급격히 늘었다. 당연히 비정규직의 재해 발생 건수도 급격히 늘었다(2016년 3월 기준). 원청은 자신이 직접 사용자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사고 은폐 시도도 체계적으로 자행된다. 사용자들은 다친 노동자들에게 공상 처리해 줄 테니 산재 신청을 하지 말라고 회유한다. 산재를 신청하면 다시는 일할 수 없다고 협박을 하기 일쑤다.
사고가 나도 119에 신고하지 않는다. 최대한 외부에 알리지 않고 은폐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병원으로 빨리 옮겼더라면 살 수도 있는 노동자가 죽기도 한다. 사망 사고가 자살로 둔갑하고, 은폐를 위해 병원들이 공조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온갖 비리와 부패가 벌어진다. 노동자가 추락해 반신불수가 되는 사고가 난 다음날에도 공장 정문 앞에는 “무재해 무사망” 표지판이 버젓이 붙어 있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뻔히 알고도 묵인·방조해 왔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조선소 노동자들의 사고·사망이 계속됐고, 제대로 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최근 고 김용균 동지의 비참한 죽음에서 드러난 발전소의 열악한 환경은 조선소와 다를 바가 없다.
노동자들의 저항과 연대
저자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잠재력도 있다고 지적한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가 상당해, 이들이 일손을 놓는다면 조선소가 제대로 가동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용자들이 하청 노조를 잔인하게 탄압해 온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사측은 노조 결성 선언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다음날 전부 해고하는가 하면, 블랙리스트 명단을 작성해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탄압했다. 그럼에도 일부 노동자들은 굴하지 않고 노조를 조직하고 저항해 왔다.
저자는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가 만만치는 않지만, 적잖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정규직 노조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비정규직과의 단결이 필요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로 가족·친척·이웃으로 묶여 있는 등 연대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다.
그런데 저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대립한다는 주장에 좀더 주목하는 듯하다. 하청 노동자들이 차별과 고용 불안정 등의 책임이 사측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있다는 주장을 우호적으로 소개한다. 정규직이 자신의 조건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안전판으로 삼는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열악한 조건의 하청 노동자를 늘려 이득을 얻는 이는 오직 사측이다. 일부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을 ‘안전판’으로 삼으려 할 수도 있지만, 실질적 이득을 얻을 순 없다. 지난 수년의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부 정규직 노조 지도자들이 비정규직 해고에 눈 감았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오히려 정규직의 고용과 조건도 더 끌어내리는 하향 압박의 증대만 낳았다.
반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단결할 때 투쟁력을 키울 수 있고, 모두의 조건을 지키고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대안 문제를 다루는 대목에서 아쉬움이 있지만, 장점이 훨씬 더 크다.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과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