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수배 간부들 자진 출두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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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수배 간부들 자진 출두의 이면
[편집자] 이 글은 민주노동당 학생 그룹 소속 당원용으로 회람됐던 글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김하영
8월 2일 오후 2시경 수배중이던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을 비롯해 이홍우 사무총장, 신현훈 대외협력실장, 양경규 공공연맹 위원장, 차봉천 전공련 위원장이 자진 출두했다. 이들은 수배에 항의해 35일 동안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김대중은 명동성당 농성중이던 민주노총 수배 간부들에게 자진 출두할 것을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김승훈 신부를 통해 종용했다고 한다. 청와대측은 그 대가로 단 위원장에게 추가 혐의를 씌우지 않고 잔여 형기 2개월 4일만 채우게 하고 이홍우 사무총장 등 나머지 수배 간부들은 불구속 처리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국가 탄압의 효과
이 제안을 논의하기 위해 민주노총 지도부는 원래 8월 1일에 중앙집행위를 소집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미뤘다. "효성, 태광, 대우차 등 현장 투쟁으로 인해 발이 묶인 다수 간부들과 구속자들에 대해 이렇다 할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면서 민주노총이 쉽게 '자진출두' 쪽으로 방향을 잡기 힘들었던 것"(〈매일노동뉴스〉 8월 3일치)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바로 다음 날인 8월 2일 중앙집행위를 다시 소집해 자진 출두 결정을 내렸다. 하루 사이에 청와대로부터 획기적인 안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매일노동뉴스〉는 "민주노총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결국 민주노총은 당초 요구만큼 구체적인 확답을 받지 못한 채 농성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자진 출두 기자 회견에서 "정부가 구속·수배 노동자 문제를 비롯한 노동정책 전반에 대해 전향적인 조치를 약속[했다]"고 했다. 하지만 '전향적 조치'가 무엇인지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속시원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단병호 위원장에 따르면, "105명의 구속자와 45명의 수배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구체적인 약속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수배 간부들의 자진 출두를 결정했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중요한 과제들이 걸린 하반기 정세를 앞두고 현장의 투쟁을 더욱 힘있게 조직하기 위해서도 지도부의 활동 공간이 제약될 수밖에 없는 명동성당 농성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판단 또한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국가 탄압의 압력이 매우 컸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김대중 정부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듯 "사회주의적"이기는커녕 일관된 반노동자 정권이다. 김대중 정부는 상반기 동안 179명의 노동자들을 구속했고 45명을 수배했다. 또, 7월 22일 노동자 대회를 주도한 민주노총 간부들에게도 소환장을 발부했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자진 출두 결정을 내릴 무렵, 수배 간부들은 이미 한달 넘게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었다.
하지만 수배 민주노총 간부들이 자진 출두를 통해 이 문제들을 해소하려 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두 달만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또는 불구속 수사만 받고 나와서 하반기 투쟁을 잘 이끌면 되지 않겠냐는 실용주의적 태도다.
김대중 정부는 노정 갈등을 상징하는 명동성당 농성을 중단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반면, 민주노총 지도부는 구속·수배를 낳은 근원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수배 간부들의 자진 출두라는 투항의 방식을 취했다. 사태가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가?
양보안의 노림수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올해 상반기부터 노동운동에 대한 국가 탄압이 극심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경제 전망이 점점 어두워지는 데 따른 것이다. 경제가 하반기에 더 악화될 전망이어서 김대중 정부는 노동자들을 한층 옥죄어 왔다. 한국 경제를 먹여 살려 온 반도체 값이 폭락해(128MD램은 작년보다 80퍼센트나 떨어졌다) 생산을 줄이기 시작했고 수출이 5개월째 감소했다. 8월 초에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이 지난 2년간 거둔 회복이 '가짜 여명'이었음이 이제 분명해졌다"고 썼다.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을 국가 탄압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적 정부가 중요한 노동자 투쟁을 탄압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문제는 탄압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점이다. 국가 탄압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서는 길은 대중 투쟁이다. 노동자의 투쟁이 대규모로 벌어질 때 정부는 그 투쟁의 지도자를 잡아넣을 엄두를 감히 내지 못한다. 1997년 1월 파업 기간 동안 김영삼 정부는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 검거령을 내렸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못했다.
대우차 문제 등에서 보듯이 김대중 정부는 올해 초부터 강경하게 나왔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우차 노조 지도자 등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대응은 수세적이었다. 대우차 공기업화 요구 같은 대안을 내세우며 공장 점거 투쟁을 신속히 전개하지 않았고, 경찰이 투입된 뒤에도 연대 투쟁 계획을 계속 지연시켰다. 메이 데이에 발표된 민주노총 투쟁 일정은 멀찍이 5월 말∼6월 초로 잡혔다. 메이 데이에 맞춰 "정리해고 반대와 대우차 공기업화"를 요구하며 총력 파업에 들어가도 시원치 않았을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5월 말∼6월 초 투쟁은 다시 6월 중순으로 연기된 데다 참가 규모도 축소됐다. 어두운 경제 전망은 탄압을 강화하는 요인인 동시에 노조 지도자들이 주춤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7월 초로 잡힌 민주노총 2차 파업에 현대차 노조 같은 대형 노조는 참가하지 않았다.(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현대차는 상반기 동안 보너스를 두 차례 지급해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도 이런 부문주의는 노조 지도자들 사이에서 전혀 공개적으로 비판받지 않았다. 7월 초 이래로 노조 지도자 검거령 철회를 요구하는 투쟁은 제대로 조직되지 않았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투쟁도 없는데 농성을 계속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부의 선처에 기대를 거는 게 낫지.' 하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상반기 동안의 '투쟁 회피·지연·축소'가 낳은 누적적 결과라는 점에서 그들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반기 투쟁이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한 것은 아니다. 투쟁 사업장별로 매우 불균등하지만 성과를 얻은 곳도 분명 있다. 또, 민주노총이 정치적 요구를 내세웠던 것도 높이 살 만하다. 〈조선일보〉는 특히 이 점에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파업 주도의 '대장'격인 민주노총이 '미사일방어(MD)체제 반대'를 요구하는 등 정상적 노조의 요구를 훨씬 벗어난 정치적 주장을 펴고 있"다고 비난했다(〈조선일보〉, 6월 13일치). 이밖에도 〈조선일보〉가 "노사와 무관한" "느닷없는 정치적 구호"라고 비난한 것은 개혁 입법 국회 통과 요구와 정부 퇴진 구호 등이었다.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은 지배계급 전체에게 압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하물며 김대중 자신에게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상반기 투쟁은 적어도 김대중이 노동자 투쟁을 탄압만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성과를 남긴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김대중이 주5일 근무, 공무원 노조 인정 등의 양보안을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7월 말에 김대중이 던져 놓은 일련의 양보안들 ― 주5일 근무, 공무원 노조 인정, 세제 개편, 최저 임금 현실화 등 ― 에는 여러 복잡한 노림수가 숨어 있다. 김대중은 보통 사람들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정쟁'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것을 '개혁'으로 보고 지지하게끔 도와 줄 일련의 다른 조처들이 필요했다. 왼쪽의 지지를 얻어 오른쪽을 치고, 오른쪽을 핑계삼아 왼쪽을 치는 지금까지의 패턴대로 말이다.
또, 8월 15일 행사도 고려했을 것이다. 북측 인사들이 남측 행사에 내려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한내 운동 세력마저 온전히 끌어안지 못한다면 정치적 효과는 별볼일없어질 것이다. 게다가 반정부 기치를 세운 농성이 계속된다면 모양새는 더욱 나빠질 것이다.
또 다른 노림수는 하반기 탄압을 위한 준비다. 하반기에 경제가 더한층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김대중은 민영화, 정리해고 등을 밀어붙이려 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삶은 한층 어려워질 것이다. 이미 실질임금도 줄어들었다. 올해 2/4분기 실질임금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9퍼센트였다. 경제가 위기로 치달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정권 퇴진 같은 주장이 결합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김대중이 노리는 것은 민주노총 지도자들을 투쟁에 나서지 못하도록 묶어 두는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노동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으므로 투쟁을 통제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속빈 강정이나 다름 없는 주5일 근무, 공무원노조 인정 등 일련의 양보안을 미끼로 던지고, 이런 조처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공식 기구 안으로 들어오라고 민주노총 지도자들에게 손짓을 한 것이다. 노사정 위원회든 노동시간 단축 기획단이든 일단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공식 기구 안에 들어오면 김대중은 협상을 질질 끌면서 시간을 벌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과 공무원 노조 인정은 벌써 4년째 시간을 끌고 있는 쟁점인데 몇 개월 더 끌기가 어렵겠는가. 그러는 동안 민영화와 노동조건 악화 등을 추진해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이 치르게 하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민주노총이 1999년 2월 노사정 위원회를 뛰쳐나오기까지 1년 넘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일련의 양보안들이 나오자 개혁 지상주의자들은 "유연하고도 대국적인 자세"를 취하라고 노동계에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김대환 교수는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이제 양보는 필요없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 상책이라는 유혹을 스스로 떨쳐 버리"라고 주문했다. 그는 "만약에 여기까지 와서 노사정 합의에 실패한다면 노동계는 어느 때보다 많은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은근한 협박까지 곁들였다.(〈한겨레〉 7월 30일치.)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자진 출두 결정은 이런 압력에 굴복하는 것을 뜻했다. 자진 출두 자체가 '구속·수배까지 감수하고 싸웠는데 얻은 게 뭐가 있느냐'는 패배주의가 옳았다고 시인하는 셈이었다. 앞뒤 안 따지고 '투쟁 일변도'로 나가서는 안 되고 정부와의 원활한 '대화 창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이홍우 사무총장은 자진 출두했다가 풀려 나온 뒤 "투쟁만으로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수배 간부들의 자진 출두가 상반기 투쟁의 결과라면, 그것은 '투쟁 일변도'가 낳은 문제이기는커녕 '투쟁 회피·지연·축소'가 낳은 결과다. 김대중 정권이 그 동안 민주노총을 '개 밥의 도토리' 취급해 온 것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이렇게 지적했다고 한다. "민주노총이 투쟁력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상황으로까지 오진 않았다." 상반기 투쟁이 남긴 아쉬움은 투쟁을 너무 밀어붙였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좋은 조건일 때 투쟁하기를 회피·지연시켰다는 사실이다.
조직 보존
경제 위기 시기에 노조 지도자들은 흔히 "자기 패배적 전략"을 취한다. 어떻게 스스로 패배의 길을 택할 수 있을까? 어떻게 "물러나라!"고 외쳤던 자에게 투항하고 스스로 감옥에 걸어 들어갈 수 있을까? 이것이 과연 60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노조 지도자들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인지 의심스럽지만, 이 일이 우리 눈 앞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왜 이런 길을 선택했을까?
첫째, 로자 룩셈부르크가 강조했듯이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조 기구의 보존을 중시한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총연맹 상근 기구가 불안정에 빠질 것을 걱정해 상근 간부들의 수배가 해제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정부는 파업이 벌어지면 지도자들을 구속·수배해 조직을 불안정에 빠뜨리거나 노조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함으로써 노조의 재정에 타격을 가하려 한다. 이런 조치는 투쟁을 신속히 마무리하게끔 노조 지도자들을 자극하는 구실을 하며 동시에 투쟁을 통제하는 노도 지도자들의 능력을 증대시킨다.
조직이 불안정에 빠질 정도로 투쟁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우리는 노조 지도자들로부터 수없이 듣는다. 노조 간부 구속·수배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투쟁을 이 쯤에서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얘기할 좋은 명분이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돼, 투쟁보다 조직이 더 우선시되는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지적했듯이, 노조 지도자들은 노조 기구(조합 조직과 재정 등)를 "그 자체로서 목적인, 투쟁의 이익이 거기에 종속되어야 하는 중요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기구 보존을 앞세우다 보면 현장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충돌할 수도 있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총연맹 상근 기구의 보존을 위해 105명의 구속 노동자와 45명의 수배자 문제 해결을 약속받지 못한 채,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여러 현안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자진 출두했다.
노동운동 내 포퓰리즘과 노동자주의
둘째, 역시 로자 룩셈부르크가 강조했듯이 노조 지도자들은 집단 책임감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좌파 지도자든 우파 지도자든 서로 한 배를 탔다는 생각에서 배를 뒤흔들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수배 민주노총 간부들은 노조 상근 간부층 내에서 득세하는 포퓰리스트 경향과 충돌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 총연맹 지도권을 쥐고 있는 단병호 지도부는 "중앙파" 또는 "중간파"로 불린다. 단병호 위원장은 지난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1차 투표에서 1위를 놓치고 2차 투표에서 가까스로 위원장에 당선됐다.
1차 투표에서 단병호 위원장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던 사람은 강승규 민주택시노조연맹 위원장이었다. 그가 대표하는 "국민파" ― 즉 포퓰리스트들 ― 가 현재 민주노총 상근 간부층 내 최대 세력임을 보여 준 것이다.(이 선거에서 3위는 유덕상 씨가 했는데 그는 민주노총 2기 이갑용 지도부를 잇는 "현장파" ― 즉 노동자주의자들 ― 로 불린다. 단병호 위원장은 "국민파"와 "현장파"의 "중간"인 것이다.)
"국민파"의 현장 써클인 "민주노동자전국회의"는 포퓰리스트들답게 민족 통일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고 있다. 이들은 8월 15일 민화협과의 공동 행사가 잘 치러지기를 바랄 것이다. 또, 김정일 답방 전에 김대중 정부와의 갈등을 해결하고, 한나라당과 냉전주의 세력에 맞서 '김대중과 함께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마당에 "중앙파"가 명동성당 농성을 계속한다면 8월 15일 행사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일련의 사업에 먹칠을 하는 처사로 여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파"는 김대중 퇴진 투쟁을 그 동안 마땅치 않게 여겨 왔다.
포퓰리스트들은 6·15 공동선언의 기치 아래 "계급과 사상, 정견,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정치적 조직적 역량으로 결집시키는 것", 이른바 민족통일전선 구축을 당면 목표로 여기고 있다. 범민련 민경우 사무처장은 민화협 김창수 정책실장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밝혔다. "정부 당국과 함께하겠다는 것은 사심 없이 내거는 근본적이고 전략적인 방침[이다]."
포퓰리스트들은 김대중 퇴진 투쟁을 민족통일전선 구축을 방해하는 일로 여겨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노동자 투쟁보다 민족 통일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김대중 퇴진 투쟁이 남북 화해와 민족대단결을 흐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중앙파"는 명동성당 농성을 정리함으로써 민화협 행사로 가려는 민주노총 안팎 포퓰리스트들의 마음의 부담을 제거해 준 셈이다. "중앙파"는 산별노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순수 노동조합주의의 입장을 고수해, 결정적인 순간에 정치적 문제를 회피함으로써, 결국은 정치적으로 포퓰리스트들("국민파")의 뒤를 좇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의 대결 회피
셋째,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진정한 개혁을 원하고 반개혁적인 김대중 정부를 싫어하지만, 동시에 김대중 정부와 거래를 청산하기도 두려워한다. 김대중이 천주교 사제를 매개로 거래를 제안하자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시간을 끌면 그마저 놓칠까 봐 그 끈을 덥석 붙잡았다.
사실, 정부와의 '대화 채널' 없이 이렇게 나가서는 안 된다는 불만이 그 동안 노조 지도자들 내에서 제기돼 왔다. '국민파' 강승규 위원장은 《말》과의 인터뷰(2001년 3월호)에서 "현장에서 치고박고 무책임하게 감옥에나 가는 방식으로 운동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중앙파"를 비판했다. 그는 "왜 우리는 정부 쪽에서 뭘 던져 주면 그걸 신문 보고 알아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의 얘기인 즉슨 "노정이든 노사든 계속 만나야 하는 거고 ... [노사정위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9년 이래 노사정위 참가를 거부해 온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자진 출두와 함께 이 입장을 바꾼 듯하다. 허영구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정부의 요청이 온다면 노동부 안에 설치된 근로시간단축 제도개선 기획단에 참여해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진 출두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올해 상반기부터 주장한 김대중 정부 퇴진을 일관되게 밀어붙일 진지한 의사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 김대중 정권 퇴진이 소리 높여 외쳐질 때조차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진지하고 책임 있게 다루지 않았다. 문성현 금속연맹 위원장은 "솔직히 말해 퇴진을 외치지만 우리가 그 정도로 힘이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며 "퇴진 후의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없다"고 솔직히 털어놓은 바 있다.(《말》 2001년 4월호)
노조 지도자들은 이처럼 국가 권력 문제에 관해 회피하려 하기 때문에 결국 국가와 대결하려 하기보다는 타협을 모색한다. 노조 지도자들이 국가와 대결하기를 꺼리는 것은 정치(정치 투쟁)와 경제(경제 투쟁)를 분리시켜 투쟁이 체제 내에 머물기를 바라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건설하기
노조 지도자들의 역할 때문에 노동자 투쟁의 전망은 암울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노조 지도자들의 역할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노동 계급과 지배 계급 사이의 투쟁이다.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에 맞서 거대한 투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 아르헨티나의 1천3백만 노동자들이 최근에 총파업을 벌인 것처럼 말이다.
노조 지도자들의 역할은 노동자 투쟁의 수위 조절을 위해 필요할 때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그러나 힘이 센 차를 보통의 브레이크로는 멈출 수 없듯이, 노동자들의 힘이 셀 때는 브레이크가 먹히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일시적으로 노조 지도자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투쟁이 발전할 수도 있다.
이럴 때 기회를 잡으려면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꾸준히 참을성 있게 확대해야 한다. 이것은 몇 해 안에 이룩되는 손쉬운 일이 아니다.
또, 정치의 중요성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국가 권력 문제를 회피하는 노동조합주의는 자진 출두 문제에서 드러났듯이 정치적으로 무능력하다. 민화협과의 공동 행사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