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를 강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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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의 닉 바레는 5월 29일 실시된 유럽헌법 국민투표 결과가 유럽의 엘리트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말한다
프랑스 국민투표에서 놀랍게도 유권자의 55퍼센트가 유럽연합이 제안한 유럽 헌법을 거부했다. 이것은 프랑스의 보수 정당과 블레어주의 좌파 ― 그리고 신자유주의 유럽 ― 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었다.
우리는 이것이 프랑스 노동계급, 가난한 사람, 청년, 진정한 좌파, 아래로부터의 프랑스의 승리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수치로 확인된 사실들은 놀랍다. 지난 10년 동안 급진적 대중 운동의 중심지였던 마르세유에서는 유권자의 63퍼센트가 신자유주의 헌법을 거부했다.
공장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황폐해진 북부의 파 드 깔레 지역에서는 69.5퍼센트가 반대표를 던졌다.
몽펠리에와 페르피냥 주변의 랑그도크-루시용 지역은 프랑스에서 청년 실업이 가장 많은 곳인데, 63퍼센트가 반대했다. 파리 근교의 노동계급 거주지에서는 73퍼센트가 헌법을 반대했다.
이것은 계급 투표였다. 육체 노동자의 80퍼센트 가량이, 25세 이하 청년의 60퍼센트가 반대했다. 약 90퍼센트의 경영인과 파리의 부촌에 사는 사람들은 찬성표를 던졌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좌파의 신자유주의 정책 거부가 다수표를 획득했다.
그러나 결코 처음부터 예상된 결과는 아니었다. 여덟 달 전에 찬성파 진영은 여론 조사에서 훨씬 앞서고 있었다.
그 뒤 반자본주의 운동, 금융 투기를 반대하는 아탁(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 공산당, 사회당 좌파, 혁명적 좌파가 뭉쳤다. 이것은 지배 계급의 선전에 대항하는 전례없는 공동 캠페인이었다.
모임과 토론이 끝없이 조직됐다. 헌법 공부가 국민의 취미가 됐다. 사람들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수백 건의 헌법 관련 기사들을 읽었을 것이다. 인터넷은 공식 선전에 대항하는 강력한 도구가 됐다.
찬성파 진영은 반대 캠페인이 인기에 영합하는 반유럽적인 시대착오라고 비난했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일련의 전환점들이 있었다.
로랑 파비우스는 1980년대에 시장 자본주의를 채택해 악명을 떨쳤던 사회당의 유명 인사인데, 이번에는 바람의 방향을 알아챘다. 그는 헌법을 반대하고 사회적 유럽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엄청난 압력이 있었는데도 사회당 당원 중 42퍼센트가 지난해 12월 당내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올해 프랑스의 주요 노조 연맹인 노동총동맹(CGT)의 역사적 논쟁에서는 전국위원회가 지도부의 견해를 뒤집고 반대를 호소했다. 2월과 3월에는 대규모 파업들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반대 여론이 찬성 여론을 앞질렀다.
주류 언론, 대통령 자크 시라크, 보수 정당, 사회당 다수파가 합심해 헌법 찬성 캠페인에 나섰다.
야당 중 공산당만이 TV 광고 캠페인을 할 수 있었다. 공산당은 할애받은 방송 시간을 나머지 좌파 동맹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공산당 지도자 마리-조르쥬 뷔페, 사회당 좌파인 멜랑숑과 임마뉘엘리, LCR 대변인 올리비에 브장스노, 공무원이자 급진 코페르니쿠스네트워크(Copernic network)의 창립자 이브 살레스, 급진 농민 활동가 조제 보베 등 전국적 저명 인사들이 모두 헌법 반대를 위해 연합했다.
막판에 찬성파 진영은 전 유럽에서 동맹자들을 불러들였다 ― 골수 신자유주의자이자 포르투갈 출신의 유럽위원회 의장 바로주, 독일 총리 슈뢰더, 스페인 총리 사파테로.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반대 투표가 반유럽적이라는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다.
이번 투표는 좌파적인 투표였다. 나찌 지도자 장-마리 르펜과 우파 필리페 드 빌리에를 지지하는 인종 차별주의자, 파시스트, 민족주의자 들은 논쟁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다.
이번 투표는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반대한 것이었지, 민족주의를 찬성한 것이 아니었다. 투표 결과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전체 유럽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다.
자본주의적 유럽 건설에 잠시나마 제동이 걸렸고, 사회 운동들은 전진 방법을 결정할 시간을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