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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과 사회운동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상이한 정치 조류들 간의 연합체(공동전선)를 건설해야 한다. 그래서 운동은 광범한 연합과 사실상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연합체의 장점은 단일한 또는 제한된 대의를 중심으로 매우 다양한 사람들을 광범하게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이다. 반전운동은 평화운동가, 종교운동가, NGO 활동가, 좌파민족주의자, 노조원, 청년·학생, 환경운동가, 여성주의자, 이주노동자, 사회주의자 등등을 결속시키고 있다. 대안세계화운동도 비슷하다.

이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1987년 6월항쟁 등 반독재 운동과 1996년 말∼1997년 초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 등에는 광범하고 상이한 정치세력들이 단일한 요구를 내놓고 참가해 연합했다.

광범한 운동의 강점은 이러한 다양성이다. 운동의 이러한 다양성을 상징하는 사람들, 가령 평화주의자, 민족주의자, 비(非)노동자, 노무현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 등과 함께하지 못하겠다며 반전운동에 종파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대중이 그 운동의 결속을 염원하는 심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대중의 단결 염원이 강력할 때 일부 사람들이 정치조직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들은 정치조직이 운동에 대해 진정한 관심도 없으면서 운동을 지배하고는 자신의 의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가진다. 실제로 그런 단체들이 있다. 개량주의자들도 흔히 운동의 급진적 에너지를 약화시키곤 한다. 그런 사람들, 그런 정치조직들에 대해 많은 활동가들과 많은 참여자들이 건강한 의구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전술·전략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나는 것도 초기에 단결을 이룬 일만큼이나 자연스런 일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운동은 전개돼 감에 따라 특정 국면마다 고비를 맞게 된다. 더구나 운동이 권력자들의 이익에 위협이 될 만큼 발전하면 우익과 국가의 세력에 부딪히게 된다. 이런 고비 고비마다 주요 활동가들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음 스텝은 무엇일지, 가장 효과적인 투쟁 방법은 무엇일지 등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대안세계화운동과 반전운동이 그랬다. 2001년 7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 반대 시위 참가자 카를로 줄리아니가 경찰 발포로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맞선 항쟁에서 이탈리아 재건공산당(리폰다치오네)이 한 구실은 결정적이었다. 리폰다치오네의 호소에 응답해 30만 명이 제노바로 운집했고 전국적인 하루 총파업도 벌어졌다.

또한, 9·11 이후 대안세계화운동은 반전운동으로 전환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했다. 2002년 11월 유럽사회포럼 직후 대안세계화운동의 우파 베르나르 카쌍은 〈신좌파평론〉 지에서 영국인 참가자들과 이탈리아인 참가자들이 너무 반전을 강조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반전운동으로의 전환이 옳았음은 2003년 이라크 공격 반대 2·15세계행동 이후 전개된 상황이 입증했다.

그러나 대안세계화운동 안에서 좌우 양극화 현상이 전보다 훨씬 첨예하게 나타났다. 특히 프랑스 아탁(ATTAC;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이 운동 내부의 개량주의 경향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떠올랐다. 아탁의 지도자인 베르나르 카쌍 등 우파쪽 주장의 요지는 좌파가 운동보다 당(정당)을 우선시하며 당의 이익을 위해 운동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자율주의 경향은 우파를 거들고 있다.

하지만 아탁이나 디소베디엔티(대표적인 자율주의자들) 같은 단체들도 당이다. ‘당’ 하면 뭔가 거창한 것, 본격적인 의미의 현대적 정당, 즉 대의원대회나 중앙위원회 같은 선출된 기구를 갖추고 명확한 구조를 갖춘 조직을 생각하는데, 마르크스주의적 의미로는 꼭 그렇지 않다. 사회 변화에 대한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중심으로 모인 일단의 사람들이면 그게 바로 당이다.

그 규모가 매우 작다면 적어도 당의 맹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병아리가 참새나 독수리가 아니라 닭인 것처럼, 당의 맹아와 당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다.

당은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생겨나게 마련인, 운동의 결과물이다. 운동이 전개돼 감에 따라 특정 쟁점들, 특정 문제들도 함께 제기되기 마련이다. 그런 문제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놓고 상이한 분파들이 형성되고, 이러기를 여러 차례 거듭하다 보면 비슷한 고비가 닥칠 때 해결책이 무엇일지를 놓고 대강 큰 구도가 형성된다. 이렇게 해서 당이 형성된다.

(이 당들은 자신들이 참조할 만한 역사적 선례와 대강의 이론적 전범 같은 게 있음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준거로 하기 시작한다. 가령 일찍이 1980년대 후반에 친북 공산당이라 할 만한 조류와 친소 공산당이라 할 만한 조류로 남한 좌파 운동은 양분됐다. 후자는 오늘날 세분화해, 자율주의를 포함한 매우 다기한 경향을 띠고 있다.)

당이 운동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당 조직 문제와 운동의 발전 문제를 서로 대립시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운동이 내부 위기를 극복하고 진전을 이룩하고자 하는 결정적 순간에는 당이 필요하다.

운동 탄생기에는 단결이 자생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계속해서 단결이 자생적일 수는 없다. 단결은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고, 투쟁해서 얻는 것이다. 단결을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단결은 운동으로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모종의 당이, 모종의 정치적 입장이 운동의 주요 쟁점들과 대결해 해결책을 내놓음으로써 운동의 미래 결속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은 불일치와 실패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사회 변혁을 이루고자 하는 당이라면 운동을 찬탈하거나 운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이 사회 변혁을 향해 나아가도록 운동과 연계를 갖고 끊임없이 접촉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과 운동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당이라면 말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당을 건설하는 것과 운동을 건설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둘 다 필요하다.

그러므로 단지 광범한 운동들의 건설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운동 건설에만 매몰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세 가지 있다.

첫째 사례는 ‘노동자의 힘’(이하 노힘으로 줄임)이다. 전에 말했듯이, 박성인 등 이 단체의 창립자들은 노동조합 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탁월한 활동가들이다. 그들이 거의 20년에 걸쳐 내린 노동조합 뿌리 더하기 친(親)노힘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의 존재는 노힘이 노동계급 내에서 민주노동당 다음으로 중요한 정치세력이 되게 해주었다.

노힘 회원 가운데 민주노총 조합원의 수는 다함께의 민주노총 조합원 수의 갑절은 좋이 넘을 것이다. 더구나 그 노조원들의 활동가로서 의 비중을 비교하면 노힘이 다함께보다 노동계급 운동 안에서 더 중요한 세력임은 명백하다.

그러나, 사회변혁적 선전·선동에서 시작해 노동조합 속으로 뿌리를 내려간다는 전략을 추구하는 다함께와 달리, 노힘은 노동조합으로부터 당을 건설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덕분에 노힘은 사회적 기반이 비교적 안정돼 있지만, 그 기반의 정치적 소극성과 회피성의 영향을 받아 이데올로기가 모호하다.(다함께는 이데올로기가 예각을 이루고 있지만, 아직 사회적 기반은 조직노동자보다 청년·학생과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더 많아 불안정하고 들뜬 상태라 할 수 있다.)

노힘의 범좌파 전략이 지닌 문제점도 있다. 범좌파 결집을 통한 좌파 노조 지도부 세우기가 핵심인 이 전략은 1997년까지는 그런대로 효과가 있었다. 1998년 이후 주로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때문에 노조 상근간부층의 일부인 좌파 집행부도 운신의 폭이 좁아지자 이 전략은 개량주의의 진정한 대안이 되지 못함이 드러나고 있다.

노힘이 노조 운동과 노조 내 좌파 네트워크 건설에 주력해 오는 동안 노힘의 이데올로기는 온갖 정치적 전통들의 무정형의 합성물이 돼 있다. 그 전통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노힘에게 가해진 다양한 압력들을 반영하는 것들이다.

둘째 사례는 프랑스의 LCR(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이다. LCR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전반부의 운동 침체기 동안 특정 작업장이나 노조 또는 캠페인에 몸담고 있는 활동가들의 연합체로서 살아남았다. 이는 일반적 마르크스주의 정치에 기초한 선전을 일상 활동으로 삼음으로써 침체기를 살아남은 영국 SWP(사회주의노동자당)의 전략과는 매우 다른 생존 전략이었다.

LCR은 각 부문에 튼튼히 뿌리내린 활동가들을 많이 확보하게 됐다. 그 덕분에 LCR은 더 큰 활동가 네트워크들의 형성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파업 이후 운동의 고양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했다. 예컨대 LCR은 아탁의 부상에도 결정적 구실을 했다.

그러나 LCR은 연합체이기 때문에 정치적 결속력이 약하고 정치조직으로서 개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예컨대 LCR은 대선후보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프랑스 청년들의 반자본주의 정서를 훌륭하게 대변함으로써 2002년 대통령 선거운동을 매우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당시 사회당 총리 조스팽이 탈락하고 2차 투표에서 주류 우파인 시라크와 파시스트인 르펜이 맞붙게 되자 LCR의 광범한 지도부는 시라크에게 투표하자고 호소함으로써 개량주의의 압력에 굴복했다.

아탁은 원래 1988년에 창립했는데, 아탁에서 활동하고 있는 LCR 멤버들은 2002년 가을이 돼서야 처음으로 총회를 열었다. 이토록 결속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LCR은 아탁 내 우파가 점점 더 크게 영향력을 발휘할 때마다 그에 대응할 힘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LCR은 시라크의 우파 정부가 무슬림 여학생들의 히잡(머리 스카프) 착용을 금지했을 때도 개량주의자들의 압력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길을 택했다.

셋째 사례는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이다. 재건공산당은 1990년대 초반에 이탈리아 공산당에서 분리해 나온 당으로서 처음에는 약간 스탈린주의적 경향을 띠었었다. 공식적인 당 강령만 놓고 본다면 재건공산당은 소규모 좌파개량주의 정당이다. 이탈리아 전국에서 당의 득표율은 5퍼센트 정도이다.

하지만 1998년부터 재건공산당은 명백히 좌경해 왔다. 특히, 앞에서 언급했듯이 제노바에서 재건공산당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또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재건공산당의 입장은 매우 단호했고 반전 시위에도 많은 사람을 참가시켰다.

재건공산당 지도자 파우스토 베르티노티는 당을 운동에 개방해야 하고 당이 운동과 하나가 돼야 한다는 등의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게다가 그는 매우 급진적으로 말한다. 그는 체 게바라와 레닌을 인용하곤 하는데, 이는 결코 오늘날 서유럽의 중도좌파 정치인들이 통상 쓰는 언어가 아니다.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베르티노티 당 개념의 결정적 문제점은 당과 운동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이 곧 운동이며 운동이 곧 당인 것이다.

이것은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당 개념인 동시에, 자율주의의 당 개념이기도 하다. 카우츠키와 스탈린,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모두 당과 계급을 동일시했다. 그들에게 “당은 계급을 대표한다.”(1903년 레닌이 멘셰비키의 당 개념을 비판적으로 요약한 말)

베르티노티의 경우 스탈린주의적 가정에 따라, 즉 당이 운동을 지배해야 한다는 뜻에서 당과 운동을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다.(그는 공산당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당과 운동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재건공산당은 운동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전략이 없다. 자율주의도 당과 운동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전략이 없다.

이렇게 전략이 없다 보니 올해 초 리폰다치오네는 DS(민주좌파당 또는 좌파민주당) 주도의 ‘올리브나무 연립’ 정부에 들어간다는 전략을 새로 세웠다. 로마노 프로디가 이끄는 DS는 옛 공산당의 후신으로, 지난 10년 동안 ‘제3의 길’을 추구해 왔다.

리폰다치오네의 유턴이 최종 결정되던 지난 3월 초 당대회에는 자율주의 그룹 디소베디엔티의 리더인 프란체스코 카루조도 참석했다. 전날 그는 리폰다치오네의 중도좌파 정부 입각 계획에 동의한다고 발표했다.

전략적으로 사고하려면 먼저 당과 운동을 구별해야 한다.

당과 운동의 구별이 당과 운동의 분리를 뜻하는 건 아니다. 둘의 관계는 명령이 아닌 대화이다. 비유하자면, 공장 직반장과 노동자의 관계가 아니라 파업위원회 동지들 간의 관계와 비슷하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말하기를, 군사 전략·전술은 전선에서 직접 전투를 수행하는 사병들이 처음 창안한 것으로, 훌륭한 지휘관은 그것을 채택해 전 부대로, 전군으로 보편화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당이 없다면 이렇게 운동 속에서 상호 학습과 상호 교육을 포함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선진 소수가 다수를 설득해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는 것, 사람들에게 확신과 자신감을 심어 주고 투쟁성을 고양하는 것은 중요하다.

운동과 공동전선들을 건설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운동 내부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여야 한다. 추상적이고 종파적인 방식으로 투쟁해서는 안 된다. 투쟁 과정에서 유기적으로 제기되는 핵심 쟁점들을 수렴해야 한다.

당을 건설하는 것과 운동을 건설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을 뿐 아니라 긴밀히 연관돼 있다. 당을 건설하려면 운동에 무조건 뛰어들어야 하며, 운동 안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자신 있게 주장하기 위해 우리 대열을 정비해야 한다.

요컨대 노동계급의 해방은 그 자신의 일이라는 것, 당이 계급을 대행하지 않는다는 것, 당은 그것을 돕는 일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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