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개설 강의 축소 규탄 학생 기자회견:
“강사 해고 말고,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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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강사법 적용을 앞두고 전국 여러 대학들이 개설 강의 수를 줄이고 시간 강사들을 대량 해고하고 있다.
고려대학교도 마찬가지다. 2018년 11월, 고려대학교 당국의 구조조정 계획을 담은 ‘대외비’ 문건이 폭로됐다. 이 문건은 개정 강사법 적용을 앞두고 강의 수를 약 20퍼센트 감축하고 시간강사를 대량 해고해 인건비를 감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학생 연대체 ‘고려대학교 강사법 관련 구조조정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등의 강력한 항의에 직면한 고려대 당국은 구조조정 계획을 유보하겠다고 2018년 12월 초에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1학기 고려대학교 학부생 대상 강의가 200개 이상 줄어들었다. 전공 강의는 1687개에서 1613개로 전년도 대비 74개, 교양 강의는 1208개에서 1047개로 전년도 대비 161개 줄었다. 2016·2017년 1학기와 비교해도 100개 이상 적다.
교수 한 명도 총학생회에 제보했다. “[2018년 12월] 강사 구조조정 유보 선언 이후에도 강사를 채용하지 말라는 [고려대 당국의] 비공식적 지시가 있었다”
강의 수 감축은 학교 구성원인 학생과 강사 모두를 공격하는 것이다.
전공 강의와 전공 관련 교양 강의는 학생들이 졸업하려면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강의들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런 강의를 없애면 졸업을 하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하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특히 영어교육과의 경우 (졸업 필수 요건인) 교생 실습을 위해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강의들이 대폭 감축됐다.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발표해, 학교의 이 같은 감축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생히 폭로했다.
“전공 강의 19개가 사라졌고,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던 갑작스런 전공 강의 수 감축은 학생들이 계획하고 있던 졸업, 진학 등의 계획을 모두 불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더해, 강의 수가 줄어들면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콩나물시루 같은 대형 강의를 들어야 할 것이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교육을 받는 것이다.
또, 강의 수가 줄어들면 해당 강의를 담당하던 시간강사는 해고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강사 해고로 발생하는 강의 부담은 전임교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많은 대학들이 개정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강의 부담을 전임교원에게 전가하고 있다.
고려대 당국은 재정 부담을 이유로 시간강사 해고와 전임교원에 대한 강의 부담 전가를 정당화한다. 고려대학교 교무처장은 “강사법이 시행되면 연 55억 원 정도가 추가로 들어갈 것”이므로 현재 “방만하게” 개설된 강의를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려대학교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2018년 고려대의 누적 적립금은 4000억 원을 돌파했다. 전년 대비 460억 원 가량 증가한 것이다(대학알리미). 이 돈의 일부만 사용하더라도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대폭 개선하고 전임교원을 늘릴 수 있다.
반면 고려대 시간강사들에게 지급되는 인건비의 총액은 고려대 2017년 총수익 대비 1.5퍼센트에 불과하고, 개정 강사법 적용 시 추가 비용이라는 55억 원도 고려대 연간 총수입의 0.8퍼센트에 불과한 돈이다.
이에 고려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 단체들은, 강의 수 감축에 반대하고 시간강사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입장을 연이어 발표하고 팻말 시위와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1주일 만에 1000명이 넘는 대학생·시민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대학생·대학원생·졸업생 단체 13곳이 고려대 당국 규탄 입장을 발표했다.
2월 15일 오전 11시에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서 ‘고려대학교 개설과목 수 급감 사태 해결 및 강사법의 온전한 실현을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고려대 학부·대학원 학생들과 졸업생들, 최근 해고된 강사들의 모임인 ‘분노의 강사들’의 김어진 해고 강사, 전국강사노조 김영곤 해고 강사가 이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지부도 함께 고려대 당국 규탄 목소리를 보탰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이진우 부회장은 “고려대 수업의 30퍼센트 이상을 담당해 온 시간강사들이 아니었다면 대학은 온전히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4000억 원 이상의 적립금이 있는 고려대가 이 사태를 감당해야” 한다고 옳게 발언했다.
‘분노의 강사들’ 회원 김어진 해고 강사는 고려대 졸업생으로서 기자회견에 참석해 학생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대학 시간강사·전임교원들의 현실을 폭로하는 발언을 했다.
“대학은 이미 전임교수가 퇴직한 자리를 전임 트랙으로 뽑지 않는다. 현재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각종 편법을 동원해 비용을 아끼려 시간강사들을 대량 해고하고 있는데, 벌써 네 자릿수가 해고됐다. 만 단위라는 말도 있다.
“시간강사들이 해고되면 모든 강의를 전임교수들이 하게 될텐데, 이미 한국의 전임교수들은 행정에도 많이 시달리고 연구할 시간도 없다. 지방 사립대의 전임 교수들은 20학점 넘게 강의하는 게 당연시 여겨지기도 했다.”
진정한 문제는 학생들을 위한 양질의 교육이나 그런 교육을 제공하는 시간강사·전임교원의 노동조건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대학 당국의 정신 나간 우선순위이다.
여기엔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있다. 정부는 2019년 개정 강사법 시행 예산으로 288억 원을 배정했다. 강사법 시행을 위해서는 최소 2700억 원이 필요한 데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이를 빌미로 대학들은 강사를 해고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강사들을 해고하는 대학들을 규제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강사 대량 해고와 학생들의 교육 여건 악화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 대학의 시간강사 약 7만 6000명은 낮은 임금을 받으며 대학 교육의 많은 부분을 떠받쳐 왔다. 개정 강사법에 부족함이 많지만, 그래도 시간 강사들의 처우를 부분적으로 개선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각 대학들이 재정을 조금치도 더 부담하지 않겠다며 과목 수를 대폭 줄이고, 시간 강사를 대량 해고하고, 전임교원 강의 부담을 늘리고, 온라인 강의와 대형 강의를 늘려 교육의 질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정부는 하루빨리 예산을 확충하고, 학생들의 교육 여건 악화와 강사 해고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고려대 당국은 과목 수를 유지하고 시간 강사를 해고하지 말아야 한다. 고려대 당국은 이 문제를 해결할 여력이 충분히 있다. 대학은 이윤보다 양질의 교육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