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구금 난민 루렌도 가족 첫 재판:
난민 심사 받을 권리 보장은 최소한의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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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인천공항에 장기 구금돼 있는 루렌도·보베테 씨 가족의 입국 허가와 난민 신청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루렌도 씨 가족은 앙골라 정부의 박해를 피해 지난 12월 28일 인천공항에 왔지만, 아직까지 공항 터미널에 갇혀 있는 상태다. 한국 정부는 루렌도 씨 가족에 대한 난민인정회부 심사에서 불회부 판정을 내려 난민 심사를 받을 권리 자체를 박탈하고 입국을 불허했다. 이에 루렌도 씨 가족은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에 대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70일이 지난 3월 7일에서야 마침내 첫 재판이 열린 것이다.
재판 전에 열린 이번 기자회견은 난민과함께공동행동이 주최하고, 나눔문화, 난민과손잡고, 노동자연대, 민주노총 인천본부, 수원이주민센터, 순천이주민센터, 이주공동행동,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한국디아코니아가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난민 심사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최소한의 요구”라며 재판부가 “신속히 루렌도 씨 가족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렌도 씨 가족의 공동법률대리인인 최초록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이 루렌도 씨 가족에게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특히 이 가족이 앙골라로 돌아간다면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폭행, 생명의 위협, 죽음”일지도 모르는데도 “앙골라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조사하지 않고 이들의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했다”고 비판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영수 국제위원회 간사도 발언했다. 김영수 간사는 70일 넘는 공항 생활로 말미암아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의 건강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적어도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는 국적 여부나 빈부격차를 떠나 모두에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입국 당시부터 복통을 호소하던 보베테 씨 말고도, 루렌도 씨는 얼마 전부터 음식을 먹으면 구토를 하고, 어린 아이들도 계속 기침을 하고 가려움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순천이주민센터 솔리나 수녀는 “인권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며 “살기 위해, 목숨이라도 부지하기 위해 온 루렌도 가족의 아픔을 제대로 된 심사를 통해 보듬어 달라”고 호소했다.
난민과손잡고 사마 활동가는 “문재인 정부 평화를 말한다. 그런데 그 평화는 도대체 인천공항 담벼락도 넘지 못하는 평화인가?” 하며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집트 난민 낸시는 짧지만 진심어린 메시지를 보내 루렌도 씨 가족에게 연대를 표했다. “난민은 선택이 아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다. 여러분 곁에 많은 이들이 있다. 루렌도 가족을 위해 함께하겠다.”
사회를 본 수원이주민센터 정지윤 활동가는 루렌도 씨 가족의 긴급 생활비 지원을 위한 모금과 서명운동 등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한편,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난민법 개악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정부는 최근 난민법 개악안을 3월 중 입법예고하고 6월에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가짜 난민을 빠르게 걸러내겠다’며 난민의 권리를 더욱 축소하고 난민 유입을 억제하는 방향이다. 그러나 루렌도 씨 가족을 보면, 정부가 제대로 된 심사도 하지 않고 난민신청자들을 ‘가짜 난민’으로 낙인찍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난민법 개악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
이날 기자회견을 열기에 앞서 난민 혐오 단체인 ‘난민대책국민행동’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각에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버티며 루렌도 씨 가족 연대 기자회견을 방해하려 했다. 그러나 규모로 보나 기세로 보나 이들은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주장 면에서도 이들은 비약과 과장이 심했다. 이들은 루렌도 씨 가족의 입국이 허가되면 난민 수백만 명이 한국으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올 것인양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평생을 함께 살아 온 터전과 사람들을 떠나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위험한 여정에 몸을 싣는 결정을 쉽게 내리는 사람은 없음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의 압도 다수는 자국의 인접국에 머물고, 전 세계 난민의 오직 소수만이 남한에 온다. 무엇보다 누구도 난민이 되고 싶어서 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쩌다’ 난민이 됐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용감하게 지구 반대편의 낯선 땅을 찾은 이들이 왜 비난받아야 하는가.
직인도 없는
기자회견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함께 첫 재판을 방청했다. 방청에도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루렌도 씨 가족의 공동법률대리인인 이상현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이번 불회부 결정이 부당함을 여러 측면에서 지적했다. 이상현 변호사는 불회부 처분을 통보하는 서류에 직인 도장조차 찍혀 있지 않아 이 서류를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 ‘명백히 이유 없는 난민 신청’이라 판단돼 불회부 처분을 받은 이들 중에도 나중에 정식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는 점 등을 들며 과연 루렌도 씨 가족에 대한 처분이 정당한 것인지를 물었다. 변호사의 지적에 인천공항 출입국 측은 이렇다할 반론도 펴지 못했다.
그간 수많은 난민들이 한국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한 채 공항에서 강제송환돼 왔다. 루렌도 씨 가족의 사례는 공항에서의 난민인정회부심사가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에는 재판 당사자인 루렌도 씨 가족이 직접 법정에 나와 진술을 할 수 있게끔 보장해 달라는 변호사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3월 21일 열리는 다음번 재판에는 루렌도 씨 가족이 모두 법정에 출석할 예정이다.
법원은 신속히 불회부 처분에 대한 취소 결정을 내려 루렌도 씨 가족에게 안정적인 체류를 보장하고 어린 아이들과 그 보호자들이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루렌도 씨 가족을 비롯한 많은 난민들이 겪고 있는 끔찍한 상황이 더는 용인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