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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명문대 반도체학과 신설 계획 :
재벌에겐 특혜 몰아주기, 학생에겐 ‘희망 고문’

3월 말 문재인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톱 클래스 대학’들에 반도체학과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카이스트 등에 계약학과 방식으로 신설될 듯하다.

계약학과는 대학이 정부나 기업과 계약을 맺고 개설·운영하는 학과이다. 그만큼 정부와 기업의 지원과 관여가 강력하다. 정부는 일부 명문대에 반도체학과를 만들어, 반도체 부문에 ‘고급’ 인력을 안정적으로 수급하고 심각해지고 있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공개된 계획에 따르면, 반도체학과들은 ‘상위권’ 대학 일부에 설치되고 대학마다 50~100명 정도 선발한다. 입학생 전원은 4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졸업 직후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100퍼센트 채용된다.

2006년 삼성이 성균관대에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설치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정부가 적극 나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의 본질은 노골적인 재벌 특혜이다. 기업이 응당 지불해야 할 노동력 육성 비용을 정부가 떠맡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소수 유명 대학에 대한 편파적 지원 사업이기도 하다.

밀어주고 끌어주고 정부의 반도체학과 신설은 노골적인 재벌 특혜 ⓒ출처 청와대

대중국 경쟁

현재 한국의 반도체 기술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정보 저장 목적의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은 국제시장 점유율이 70퍼센트에 달하고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수출액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7퍼센트로 꽤 높은 편이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업황이 둔화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이 맹추격을 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시장 발전 속도가 너무도 빨라 업계에서는 ‘퀀텀 점프’(압축 성장, 대약진)라고 부른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10퍼센트에서 70퍼센트까지 끌어 올리려 약 176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 국립대인 칭화대는 캠퍼스 안에 각종 IT기업을 창업하고 있다. 칭화대는 칭화홀딩스라는 모회사를 차려서 그 기업들을 경영하며 기술자와 연구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이 계획이 효과를 내면, 반도체 수출의 40퍼센트를 중국에 의존해 온 한국 기업들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또, 정보 처리 기능의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은 국제시장 점유율이 3~4퍼센트밖에 안 되는 데다가 중국보다도 뒤처져 있다. 반도체 시장의 1위 삼성전자와 2위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중국과의 경쟁에 꽤나 큰 압박을 느낄 것이다. 이미 지난해 7월부터 반도체 부문 전문가들이 정부 지원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올해 1월 15일 문재인은 ‘기업인과의 만남’에서 삼성 이재용과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불안하다는 대화를 나눴다.

문재인은 3월 19일 국무회의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비메모리 반도체 인재 육성책’을 언급했다. 그 뒤 반도체학과 설치 계획이 나왔다.

이렇듯, 정부가 일부 유명 대학에 반도체학과를 만드는 이유는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우위와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 계획은 재벌과 소수 유명 대학에 대한 특혜이다.

그러나 반도체 시장 사정을 볼 때, 이 계획이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희망 고문

문재인 정부는 이 계획을 청년 일자리 대책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전국의 대학생 중 고작 300~600명에게만 4년 장학금과 대기업 채용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수험생은 51만 명이나 되는데 말이다. 희망 고문도 이런 희망 고문이 없다.

반도체학과가 신설되는 대학의 학생들에게도 딱히 좋을 게 없을 것이다. 취업난 해소에 큰 도움은 안 되 면서 학생들 사이에 경쟁을 심화시킬 것이다. 또, 계약학과 증가는 대학과 기업의 연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압력을 키운다. 그러면 교육의 목적이 곧 취업이라는 생각을 강화해 교육 전반이 더 편협해지고 소위 ‘돈 안 되는’ 순수 학문에 대한 투자 공격도 뒤따를 수 있다. 이렇게 학문이 협소해지는 것은 대학의 발전에도 해롭다.

정말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정부는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대폭 늘려야 한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는 재벌 퍼주기와 선별적 대학 지원책을 펼쳐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게 아니라, 교육 재정을 대폭 확충해서 모든 대학생들의 교육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그 재원은 등록금이 아니라 대졸 인력 공급에서 큰 혜택을 보는 대기업들에 대한 세금을 크게 늘려서 충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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