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된 ‘장자연 사건’ 진상 규명 염원
—
정권이 바뀌어도 밝혀내지 못한 진실
〈노동자 연대〉 구독
고 장자연 씨에 대한 성접대 강요 및 성폭력 관련 검찰 과거사위 조사가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버렸다. 과거사위는 고 장자연 씨의 핵심 피해 사실에 대해선 재수사 권고도, 처벌도 못 한다는 허무한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말만 요란할 뿐 유야무야된 문재인 정부의 흔한 적폐 청산 좌절 목록에 또 하나가 추가됐다.
검찰 과거사위는 10년 전 검경의 총체적 부실 수사, 조선일보사 측의 수사 중단 외압, 이른바 ‘장자연 문건’ 내용의 상당한 신빙성 등을 인정해 놓고도 이런 결론을 내렸다.
특히 과거사위는 2009년 당시 수사를 총괄한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청장 집무실에서 이동한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현 조선뉴스프레스 대표)에게서 수사 외압을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이동한이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퇴출시킬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 조선일보하고 한 번 붙자는 거냐’고 협박했다는 점이 사실로 인정됐다.
실제로 당시 검경 수사는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채 매우 부실하게 진행된 정황이 여러 군데 드러났다. 그런데도 ‘재수사 권고 없다’는 검찰 과거사위 발표는 납득하기 어렵다.
묵살
결국 힘 없는 신인 여배우가 연예기획사의 압박에 의해 성접대와 폭력으로 유린당했다는 고발은 또 다시 어둠 속에 묻힐 위기에 처했다.
검찰 과거사위는 핵심 피해 사실에 대해 공소시효가 끝났거나 증거가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재수사 권고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증거 부족은 철저한 재수사가 필요한 이유가 된다. 과거사위는 수사권이 없으므로 증거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혐의자들을 조사하고 싶어도 그들이 조사를 거부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처럼 권력층의 은폐 시도 의혹이 짙어 증거 확보가 어려운 사건일수록 오히려 수사권을 발동해 증거 확보에 힘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국 검찰은 같은 검찰 식구의 과거 부실수사 의혹 파헤치기를 회피한 듯하다. 무엇보다, ‘조선일보 방씨’ 일가 등 우리 사회 특권층은 검찰의 수사망을 또다시 빠져나갔다.
“성역 없는 조사”?
조선일보는 이번 과거사위 발표에 기가 산 듯하다. 그러나 ‘장자연 문건’에는 소속 연예기획사 사장에 의해 술접대·성접대를 강요당했다는 내용과 그 접대 대상으로 ‘조선일보 방사장’ 등 사회 유력 인사들이 거론된 것으로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알려졌다. 이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 죄가 없다면 조선일보사가 왜 10년 전에 “정권 퇴출” 협박까지 하며 수사 방해에 회사 차원의 총력 대응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올해 3월 7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사기한 연장과 재수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가해 10년 전 묻힌 진실과 정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현 정부 하에서도 이런 염원이 배반당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실망하며 가슴 아파하고 있다.
집권 초 ‘검찰 개혁’을 한다며 과거사위가 출범했지만, 장자연 사건을 재수사 검토 대상에 올리고도 1년 가량을 별다른 성과 없이 흘려 보냈다. 올해 3월로 끝날 예정이었던 조사기한을 두 달 연장한 것도 수십만 명의 요구 덕분이었지, 정권의 의지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 등에 대한 공분이 일자 문재인은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하지만 구 여권 압박용으로 이 사건을 이용하는 게 더 큰 관심사로 보였다. 안타깝게도 그 의심은 현실이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