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미·중 무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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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5월 초 미·중 무역협상이 성과 없이 끝나자 미국은 5월 10일 중국 수출품 2000억 달러에 대한 관세를 10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올렸다. 중국도 6월 1일부로 미국산 제품 600억 달러어치에 관세를 최대 25퍼센트로 올리며 맞받았다.
이어서 미국 상무부는 중국 통신 네트워크 업체인 화웨이를 ‘거래 제한 기업 리스트’에 올렸다. 이후 구글은 화웨이 휴대폰에 운영체계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고, 인텔이나 퀄컴, 영국 반도체기업 ARM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도 화웨이에 반도체 부품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도 온라인 몰에서 화웨이 노트북을 제거하며 화웨이 제재 대열에 동참했다.
미국 정부는 세계 각국에 화웨이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말도록 압력을 넣고 있고, 영국, 독일, 일본 등이 이에 화답하며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각국의 기밀을 빼돌려 중국 정부에 제공한다는 것이 화웨이 제재의 이유지만, 진정한 목적은 화웨이의 글로벌 5G 시장 선점을 막기 위해서다.
화웨이 사례는 이번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중국이 첨단기술 육성 계획인 ‘중국제조2025’를 추진하자 미국은 이 계획을 (국가의 지원에 따른) 불공정 거래, 기술 도적질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중국제조2025는 미국이 무역 합의를 파기하는 이유가 됐다.
이처럼 세계 패권을 두고 패권국인 미국과 그 최대 경쟁자인 중국이 정치·경제·군사 분야에서 갈등과 대립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미·중 무역전쟁은 두 제국주의 국가들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의 단면인 것이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가 17퍼센트를 점유해 2위를 차지했는데 미국의 전방위적 제재로 그 성장세가 꺾일 듯하다. 5G 통신장비 분야에서도 화웨이의 독주(獨走)는 저지당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웨이는 이전의 중싱통신(ZTE)과는 다르다. 미국의 제재로 파산 위기에 처했던 ZTE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야 했다. 규모나 기술력, 부품 조달 창구의 다양화 덕분에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로 사업이 크게 위축될 수는 있어도 파산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도 미국에 반격하고자 여러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듯하다. 5월 20일 시진핑은 장시성 남부의 희토류 공장을 시찰해 희토류를 무역전쟁의 보복 카드로 사용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몇 년 전 일본에게 사용해 성공했던 방법이다. 또 중국은 애플 같은 미국 기술회사의 중국 진입을 막고자 새로운 사이버보안법을 만들었다. 미국산 페놀 제품에는 반덤핑조처를 내렸다.
그러자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철도차량 제조업체인 중궈중처(중국중차)가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며 워싱턴 지하철 철도차량 입찰을 막는 법안을 제출했다. 미국은 중국제조2025에 담긴 10대 산업 전체로 무역전쟁을 확전할 태세다.
경제적 효과
일본 방문 도중 트럼프는 중국에 부과한 관세로 돈이 많이 들어온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는 미·중이 상대방에게 무자비하게 때린 관세 폭탄의 피해를 서로 입고 있음을 보여 줬다.
트럼프가 화웨이와 그 계열사 70여 곳을 제재하자 미국 시골 지역 이동통신업체들이 갑자기 위기에 처했다. 미국 소도시와 시골 지역 무선통신 사업자들이 저렴한 화웨이 통신장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상원은 7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것으로 화웨이 장비를 교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미국 시골 지역에서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안 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경제학자 기타 고피나트는 ‘미·중 무역전쟁의 충격’이라는 공동 보고서에서 미국이 중국업체에 부과한 관세 수입은 미국 소비자들이 전적으로 부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탁기 등과 같이 대중국 관세 가운데 일부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돼 왔고, 나머지는 미국 수입업체들이 이익 마진을 낮추면서 관세 충격을 흡수해 왔다.”
중국이 아이폰 사용을 제한하면 전 세계 아이폰 사용자의 3분의 1인 2억 4000만 명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또 아이폰 부품업체 팍스콘에 고용돼 있는 노동자 100만 명 이상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승리가 임박한 것처럼 트윗을 날리는 트럼프나 대장정 출발 기념관을 찾아 헌화하는 시진핑이나 황당하고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세계 패권을 두고 벌이는 최근의 미·중 무역전쟁을 중국 공산당이 1934년 국민당을 피해 산간벽지로 도망갔던 대장정과 비교하는 것은 전형적인 피해자 코스프레다.
IMF는 미·중 무역갈등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0.2~0.8퍼센트포인트 하락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리고 올해 세계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네 요인 중 하나로 미·중 무역전쟁을 지목했다. 6월 말 일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 때 트럼프와 시진핑이 협상을 타진하겠지만 그것으로 미·중 무역전쟁이 끝날 것 같지 않다.
무역전쟁으로 심화된 군사적 갈등: 남중국해·대만해협
화웨이 제재 사태로 미·중 무역전쟁이 첨예한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남중국해에서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5월 17일 미국 구축함 프레블함이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 부근을 통과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쳤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미군 군함의 이런 행위는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관계 해역의 평화와 안전, 질서를 깨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군의 남중국해 항해는 올해 들어 적어도 다섯 번째다. 5월 6일에도 미국 군함 2척이 게이븐 암초(중국명 난쉰자오)와 존슨 남 암초(중국명 츠과자오) 인근 해역에 진입한 바 있다. 반면 중국은 남해9단선을 근거로 남중국해 대부분의 해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인공섬과 암초 등에서 군사시설을 건설해 왔다.
미국은 대만과 관계 강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 하원은 5월 7일 ‘2019 대만 보증법’과 ‘미국의 대만공약과 대만 관계법 이행을 재확인하는 결의안’을 잇따라 통과시켰다. 미국이 대만에 첨단 무기를 판매하고 군사적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중국은 미국의 이런 조처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발했다.
미·중 대립이 심각해지면서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 5일 중국군은 대만 인근인 저장성 해역에서 실사격을 포함한 군사훈련을 대규모로 벌였다. 대만도 중국의 침공을 가정한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4월 30일 대만 전투기가 중국 전투기를 향해 플레어를 쐈다. 대만은 “플레어 발사는 방어적 행위여서 교전으로 확대되진 않았다”고 밝혔지만 충분히 군사적 충돌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중국 폭격기는 대만 방공식별구역을 빈번하게 침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긴장이 내년 1월에 열릴 대만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조처라는 분석이 있지만 이는 협소한 얘기다.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긴장 고조나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미국의 대립 등은 무역전쟁처럼 제국주의 국가들의 세계적 패권 경쟁의 단면이다.
남중국해의 군사적 긴장을 이해하려면 제국주의적 세계체제에서 경제적 경쟁이 지정학적 경쟁으로 치닫게 되는 논리를 설명한 부하린과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필요하다.
곤혹스런 처지의 한국
미국이 한국에 화웨이 제재 동참을 요청하면서 곤혹스런 처지에 빠진 쪽은 LG유플러스다. LG유플러스는 통신장비의 30퍼센트를 화웨이 제품으로 사용하고 있고, 5G 망도 화웨이 제품으로 구축할 계획이었다.
화웨이 제재로 삼성전자가 수혜를 볼 것이라고들 하지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삼성전자가 휴대폰에서는 득을 보겠지만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할 경우 손실도 생겨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화웨이 제재가 제2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2017년 한국 정부가 사드를 배치하자 중국이 한국에 압박을 강화했고, 결국 롯데가 중국 시장에서 철수해야 했다.
미국의 압박으로 한국 정부가 화웨이 제재에 동참하게 된다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중국에 생산 기반을 둔 많은 기업들이 중국의 온갖 압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경쟁에서 장기판의 졸 같은 신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