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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비리 척결의 날 대행진:
학생·노동자 500명이 학교의 비리를 규탄하다

집회를 마친 학생과 노동자들이 본관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은정

오늘 6월 12일 정오,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서 학생 약 400명과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분회 소속 청소·경비 노동자 약 100명이 집회를 열고 본관까지 행진했다. 얼마 전 교육부 감사로 적발된 고려대 당국의 비리를 규탄하며 교육·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참가자들은 집회 규모가 큰 것에 고무됐다. 기말고사가 코앞이지만 요구안을 모두 쟁취하고 시험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다들 밝은 표정으로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학교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라!”, “학내 구성원의 평등한 재정 운용 권한을 보장하라!”, “강사법을 시행해 교육권 의제를 실현하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하라!”

수업을 듣던 학생들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와 집회에 결합했다. 인문계 캠퍼스와 이공계 캠퍼스(분리돼 있음)에서 각각 행진해 온 대열이 만나고, 청소·경비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만날 때 참가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회계 비리

지난 5월 7일 교육부의 회계 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학교와 재단의 비리 22건이 적발됐다. “[등록금을 동결해] 돈이 없다”며 학생과 노동자의 요구를 무시해 온 학교 당국의 핑계가 거짓이었음을 확인해 주는 일이었다.

회계 감사 결과 발표 직후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들을 중심으로 항의 집회가 매주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총학생회는 10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10대 요구안은 회계 투명성 강화, 학생 참여 예산 재정 확대, 노동권 보장 등의 내용이었다. 노동권 보장은 학내 청소 노동자와 시간강사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라는 것이었다.

5월 20일 거의 모든 단과대 학생회와 학생들 100여 명이 집회에 참가하고, 이 10대 요구안을 학교 측에 전달했다. 총학생회에 따르면, 그 뒤에 열린 면담에서 학교 측은 모든 요구를 거부했다. 심지어 “노동권 보장 요구는 회계 비리 건과 관계 없다”며 학생과 학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 했다.

그러나 6월 2일 열린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학생 대표자들은 격론 끝에 노동권 보장 요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오히려 강의실 신축 등 학습 환경 개선 요구를 추가해 12대 요구안을 결정했다.

6월 12일 집회가 학생과 학내 노동자가 함께하는 대규모 집회가 된 것은 전학대회가 학생과 학내 노동자의 단결을 유지하고 기층의 요구를 반영해 요구안을 확대하기로 결정한 덕분인 듯하다.

이 날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학교 측이 학생들의 요구에 묵묵부답인 것에 분노했다.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이 학교를 바꾸자고 주장했다.

“학교가 부끄러운 짓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더위에도 모였습니다.” (생명대학 학생회장)

“추악한 짓은 학교가 했는데 고생은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언어학과 학생회장)

“고대는 우리에게 젊음을 걸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믿고 그랬는지 듣고 오겠습니다.” (한국사학과 학생회장)

“학교의 비리는 어제 밤처럼 어두웠고 우리의 분노는 오늘의 더위처럼 뜨겁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태양처럼 빛나려면 우리가 모여야 합니다.” (식품공학부 학생회장)

“학교는 오직 요구안 수용으로 답해야 합니다.” (국제학부 학생회장)

“학교는 노동자들에게 1만 원 주기도 아까워하는데, 회계 비리라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노동자와 학생이 함께 싸워 나갑시다.”(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분회 분회장)

연좌

학생 대표자들은 전학대회에서 결정된 12대 요구안을 들고 학생처장과의 면담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학생 수백 명은 면담 장소인 본관에서 연좌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면담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계속해서 자유발언을 하고 구호를 외쳤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 측과의 면담 동안 건물 안에서 연좌하며 자유발언을 하고 구호를 외쳤다 ⓒ연은정

학생처장은 면담 초반에는 “[그 무엇도] 약속하기 싫다”고 버텼지만, 학생들의 기세에 밀려 몇 가지 답변을 내놓아야 했다: 실험·실습 환경 개선 비용 40억 원 배정, 신임 총장 집행부가 구성한 회계 비리 혁신위원회의 진행 과정과 회의록을 상시 공유, 장애 학생과 학생 청원 제도 관련한 학생 참여 예산 제도 1억 원 시범 운영 등.

면담 종료 후 학생처장은 연좌하고 있는 학생들 앞에 나와 ‘환골탈태’를 약속하고 모든 과정을 공개하고 의혹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뻣뻣하게 굴던 학교 측이 이 정도 약속을 한 것은, 면담 결과를 보고한 부총학회장의 말처럼 “학생들이 이렇게 많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 대표자들과의 면담에 나온 학교 측 인사는 학생처장뿐이어서 위의 약속도 관련 부처장들과의 논의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면담 과정에서 나머지 요구들도 성취해야 한다. 12대 요구안은 전체학생총회 다음의 위상을 가진 학생 의사결정 기구인 전학대회에서 결정된 것이므로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또,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학교 측은 스스로 한 약속조차 어기기 일쑤였다.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필요할 때 바로 항의를 모아야 한다.

집회에 참가한 학내 청소·경비 노동자들 ⓒ연은정
집회를 마친 학생과 노동자들이 본관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은정
집회를 마친 학생과 노동자들이 행진해 본관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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